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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내 몸속의 세포들은 신이 났다

26.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작은 기대라도 할 처지가 못되었지만 그래도 긴장된 마음으로 공모전의 결과를 살펴봤다. 예상했던 대로 현대 판타지물이 판을 쳤고 우리 같은 일반 소설은 스물다섯 편이나 뽑는 특선에도 들지 못했다.

총 참여 작품만 6,500여 편에 나 같은 신인들만 4,400명이나 몰렸다고 한다. 단편소설도 아니고 장편소설 작가 지망생이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에 난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베란다 카페에 앉아서 와이프에게 공모전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그래서 서운하냐는 것이다.

말이야 기대도 안 한다고 했지만 씁쓸한 생각이 든 것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만인에게 공개된 것에 만족해하라는 살짝 자존심 상하는 위로의 말에 피씩 쓴웃음이 지어졌다.


오늘도 와이프는 여러 일정들을 소개하면서 신이 났다.

오전부터는 농협의 부녀회원들이 모여서 불우이웃 돕기 농산물 판촉행사를 한다고 했고 저녁에는 주부대학 모임이 있다며 저녁을 나 혼자 먹어라고 한다.

어쨌든 훌쩍 십 년도 넘게 반복되던 갱년기 타령을 멈춘 것만 하더라도 감지덕지였으므로 와이프의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일체의 군말이 없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오늘의 중요 과제를 실행하기 위한 필요 서류들을 한 장 한 장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 후 익숙한 듯 국세청 홈텍스에 들어갔고 지난달 신 사장에게 매도했던 강변 땅의 양도소득세 예정신고를 하기 위하여 양도세 전자신고를 클릭했다.


작년 이맘때 5년을 자경한 150평 농장을 매도하면서 어마 무시한 농협 대출금을 보태서 새로운 농지 450평을 매입했다. 새로운 농지에서 향후 3년 이상 열심히 자경 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양도소득세의 농지대토(기존 4년 이상+향후α년) 감면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새로운 농지는 매도 농지면적의 2/3에 해당하는 100평이면 충분했지만 매입농지는 이 보다도 큰 450평이었으므로 아직 350평의 여분이 남아있었다.


새로운 농지를 구입하고 11개월 만인 지난달 6년을 자경한 강변 농장 100평을 신 사장에게 매도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국세청에 사전질의까지 했었다.

이미 작년에 새로운 농지로 신고하여 양도신고가 끝난 농지의 잔여 면적을 또다시 새로운 농지로 신고할 수 있느냐는 것이 질의의 핵심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법령에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없는 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으므로 가능하다는 쿨한 답변을 받아둔 상태였다.


농지원부, 농업경영체 등록확인서, 면세유류 공급대상 농기계 보유 내역 신고서, 구청에서 발급한 농가주 현황 확인서, 기본 직접직불금 지급대상자 등록증, 작년 양도세 신고 이후 1년 동안 새롭게 추가된 농자재 매입 내역서 여러 장 등등.

첨부된 증빙서류만 삼십 장에 육박할 정도로 자경을 입증할 서류는 차고도 넘쳤다. 이 정도면 서류만 가지고서는 시빗거리를 찾을 수 없을 테니 국세 담당자는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하여 날 들여다볼 것이다.


첫째는 실제로 6년 전부터 강변의 왕대추농장을 내가 직접 자경 했는지?

둘째는 실제로 새로운 농지를 내가 직접 3년 이상 자경 하는지?

셋째는 실제로 6년 전부터는 물론이고 향후 2년 동안 나의 농업 외 소득이 3700만 원을 넘지 않을 것인지?


첫째의 문제는 논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간단한 문제다.

농지를 취득한 이후 특허 품종이라서 비싸다는 천황대추라는 신품종을 한 주당 만 이천 원에 매입하여 내가 직접 심었고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이것은 이웃 농민들의 중언뿐만 아니라 봄가을의 항공촬영으로도 확인이 되니 시빗거리가 없을 것이다.


둘째의 문제는 나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던 450평의 새로운 농지에서 실제로 내가 자경한 사실을 과세당국에 입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농작업의 장면들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매년 벼농사를 지을 계획이기 때문에 이 문제 역시도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셋째의 문제는 지난 6년 동안 단 한차레도 3700만 원을 넘는 소득을 올려본 사실이 없었다.

앞으로 2년 동안도 당연히 37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의외의 상황은 만들어질 것 같지가 않은데 그만큼 내가 사무실 운영에는 도통 관심도 없고 엄청 게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세 담당자는 슬슬 열불이 나서 다른 방안을 강구해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현행법상으로는 불가능하다.

몇 년 전으로 기억이 되는데 정부에서 조특법에 규정된 자경의 정의를 강화하는 시행령 개정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 소유농지에서 농작업의 2분의 1 이상을 자기의 노동력에 의하여 경작 또는 재배하는 것’에 단서를 다는 것이었다. (단, 자기 노동시간의 2분의 1 이상을 경작 또는 재배에 투입하는 경우에 한 한다)


그런데 이후에도 시행령은 개정되지 않았고 궁금한 나머지 기재부의 담당 사무관에게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었다.

담당 사무관의 답변이 의미심장했는데 끝내 정부 내의 저항을 뜷지못했다는 자조 섞인 답변이었다.

정부 내에도 자경자를 자처하는 적지 않은 수의 농지 소유자들이 있었다는 말일 텐데 그러나 종국에는 기재부와 국세청의 열혈 공무원들에 의해서 단서조항은 추가될 것 같다.

그런데 앞날을 내다보는 겸업 농부는 이미 단서조항을 충실히 시행하고 있다.

하루 중 총 노동시간의 절반 이상을 그것도 넉넉하게 농업에 투입하고 있었으니 이 또한 문제의 소지가 없을 듯하다.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을 합산하여 연간 3700만 원 이상자는 자경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이 조특법 시행령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7월 1일부터다. 기재부와 국세청의 열혈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세의 감면제도는 상시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전업농민을 위한 제도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런데 실제에서는 농업에 상시 종사하지 않는 비전업 농이나 겸업 농민이 양도세 감면을 받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서 원래의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었다고 판단하고 자구책을 찾고 있었다.

이때 찾은 방안이 3700만 원의 소득조건이었다. 조특법 시행령 제66조의 14항을 개정할 때 그 목적에도 나와 있듯이 ‘농업에 상시 종사하지 않는 비전업 농민에 대한 양도세 감면의 배제 기준을 명확히 하여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세 감면의 본래 취지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또 그다음은 뭐가 될까? 모든 겸업자를 아웃시키는 초강력 조항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쯤 되면 겸업 농부냐? 전업 농부냐?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은 이미 나와있다. 그렇잖아도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끼워 입은 것 같아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는데 난 미련 없이 부동산 개발 컨설팅 업자라는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훌훌 벗어던질게 틀림없다.


친절하게도 오늘은 와이프가 교대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이른 시간에 출근하여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나의 오후 일정은 내 몸속의 세포들이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시간들로 꽉 짜여 있다.


파릇파릇한 벼들로 생기가 돌기 시작한 논에도 가봐야 하고 미처 끝내지 못한 왕대추농장의 도둑 가지 정리 작업도 산더미다.

떨어진 과일들이 녹아서 없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주워서 액비 통에도 담가야 하고 또 내일 새벽 스프링클러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저수조 통에 액비와 미생물도 미리미리 혼합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비가 그쳤으니 파랗게 잘 익은 고추를 위해서 탄저병 예방약도 쳐주어야겠고 호박의 넝쿨도 정리해주어야겠다.


할 일이 태산이라서 내 몸속의 세포들은 지금 엄청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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