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실행계획 1
삼 일간의 5월 연휴가 시작되는 어린이날이다.
예년 같았으면 어린이들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의례적인 행사라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위기상황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 정도의 여유조차 사라지게 했다.
청와대 신청사의 3층에 위치한 대통령집무실에서 안보실장이 보고한 에이포용지 석장분량의 보고서를 읽고 있던 대통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피트차교수의 분석은 백악관을 현미경처럼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피터차교수는 제 친구입니다만 그의 관찰력은 두렵기까지 합니다!”
피터차교수는 최 실장의 미국 유학시절부터 막연하게 지내던 절친으로서 평창올림픽 직전에는 주한미대사로 내정되어 우리 정부의 아그레망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평양 선제공격으로 알려진 코피작전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최종단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피터차교수의 몸속에도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최 실장과 피터차교수는 최근까지도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조야의 분위기와 한국정부의 대응방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 정부는 피터차교수를 신뢰할 수 있는 친한파인사로 인식하면서 그의 조언을 아낌없이 받아들였는데 그의 전망은 한마디로 비관적이었다.
독도전쟁의 대미를 장식했던 북한의 수소폭탄 발사는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강대국이 패배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호의 퇴각으로 백악관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났다고 판단하고 있어 이번 사건을 없었던 일처럼 지나칠 수는 없다고 했다.
북한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이고도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을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보일 수 없는 행동이라 했다.
이것은 호시탐탐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몇몇 불량국가들이 향후 미국의 뒷덜미를 잡는 자신감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어 반드시 그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초강대국의 위용으로서 불량국가를 굴복시키는 방식은 언제나처럼 치킨게임 방식이라 한다.
곧 가속페달에 잔뜩 힘을 주겠지만 미국이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미국의 차는 대형트럭 나비스타이고 불량국가의 차는 미니승용차인 서브콤팩트라는 인식이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응하여 설령 북한이 반격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 전쟁터는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의 근거라고 했다.
단 한 발이라도 미 본토를 향해서 핵탄두를 발사하는 순간 미국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보복을 받게 될지 잘 아는 북한으로서는 차라리 한국과 일본으로 분풀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폭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서브콤팩트가 나비스타를 향해서 정면으로 돌진할 수 없듯이 북한정권이 생존을 바라면서 미 본토에 선제적인 핵 공격을 단행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대통령이 최 실장을 또렷이 응시하면서 말했다.
“결론은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재래식에 의해서든, 핵무기에 의해서든, 처참한 지옥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군요!
이 시점에서 우리의 대응전략은…
최 실장의 견해를 듣고 싶군요?”
대통령이 안보실장에게 의견을 구하는 지극히 당연한 절차였지만 최 실장은 난감하다는 듯 잠시 뜸을 들이면서 대답했다.
“현재까지도 미국이 대북선제공격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애기하기도 그렇고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중한 최 실장조차 선제공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 대통령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그럼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최근 백악관에서는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이미 결정은 내려졌고 은밀하게 실행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최 실장의 비관적인 전망을 듣고 있던 대통령이 안경을 벗어 벌겋게 충혈된 양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은 후 다시 안경을 썼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다는 의미였다.
“그렇지요! 폭풍전야에는 조용한 법이니까,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했다는 가정 하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해야겠지요,
이 지구상에서 한반도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가장 치열하게 몸부림쳐야 할 국가는 대한민국밖에 더 있겠습니까?
북한도 우리가 나서 주기를 바랄 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을 것 같고요,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사태가 일본의 독도침략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일본은 결단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독도전쟁의 명분이 되었던 독도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삼월 일일 이후 대통령은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잠잘 수 없었다.
뒤척이며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충혈된 눈가를 비벼가면서 홀로 숙고를 거듭했다.
이번 독도전쟁으로 북한은 많은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평창올림픽 직전 트럼프 대통령 때 촉발된 북핵위기 국면은 이후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안정기를 구가했다.
특히 2년 전, 북미 간의 스몰딜이 성사된 이후로는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까지 인정받으며 국제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일으킨 독도전쟁으로 북미 간의 스몰딜은 공식적으로 파기되었고, 또다시 십이 년 전 평창올림픽 직전의 한반도 위기상황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이미 워싱턴과 평양의 연락사무소는 폐쇄되었다.
그리고 미 재무부가 주도하는 대북 봉쇄정책은 바짝 독이 올라있어 웬만한 나라들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북경협사업들은 미국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뚝심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초강대국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얼마나 더 압박을 버텨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북한은 한반도의 막둥이 영토 독도를 지켜주기 위하여 단 한 치의 좌고우면도 없이 엄청난 손실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우린 이 정도의 대미 압박도 이겨내지 못하고 굴복한다면 북한이 받게 될 배신감은 말로써는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암 그럴 수는 없지, 단연코 그럴 수는 없음이야!’
어느덧 대통령은 생각을 단순화시켜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이 레이건호를 퇴각시키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은 미국과 북한이 싸웠을 것이고 곧바로 일본이 가세하여 미국과 한편으로 싸웠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린 동맹이라는 이유로 독도를 침략한 일본과 편을 먹은 미일연합국 편에 섰을까?
아니면 우리 땅 독도를 지키기 위하여 미국과 싸움을 벌이는 북한과 한편이 되었을까?
미국에게는 그 어떤 이익도 명분도 없는 이상한 전쟁이 분명했겠지만 그렇잖아도 독도문제로 어러렁거리던 한반도와 일본의 상황은 달랐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칫 미국이 선제공격을 감행한다면 남북한의 어느 누구도 원하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전쟁에 이끌려 들어가는 엄청난 비극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미국의 평양 선제공격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