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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an 19. 2023

중간에 낀 세대로서의 숙명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오전 열 시를 살짝 넘긴 시각, 예년 같으면 한창 명절 차례를 지내고 있을 시각이었지만 부엌에서 뒷정리까지 마친 와이프가 조수석에 올랐다. 명절날 성묘 가는 이들의 준비물치고는 번잡스럽지가 않다. 준비물은 따듯한 원두커피를 담은 보온물통 하나와 달랑 사과 몇 개가 전부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이동 중에 차 안에서 먹게 될 테지만…


영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어설픈 물리주의자로서도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조상님의 은덕에 감사하고픈 마음만큼은 한 치의 차이도 없음이다. 단지 존재하지도 않는 영혼을 굳이 ‘있다고 치자’는 비과학적인 관습에 반기를 들었을 뿐 조상님과 관련된 전통을 존중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는 결코 그 어떤 차이도 있을 수 없다.


몇 년 전 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서 때마침 김해시 소재의 낙원공원묘지에서는 기존의 한 평짜리 묘지를 가족납골묘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고 이때 기꺼이 동참했다. 한 평짜리의 기존 묘지를 대리석으로 단장하여 모두 여섯 개의 항아리를 보관하는 멋진  야외 납골당으로 변신시켰다. 덕분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가족의 묘를 한 군데로 합사 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항아리의 재질도 향나무로 되어있어 세월과 함께 유골들이 흙속으로 스며드는 자연 친화적인 구조였다. 향후 육십 년의 계약기간 동안 관리사무소에서 시설의 관리를 책임지는 형태였으므로 매년 벌초를 해야 하는 부담도 사라졌다. 다만 명절을 전후하여 한번 다녀가기만 하면 되었고 비어있는 두 자리는 훗날 우리 부부의 자리로 예정되었다.


그런데 육신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종결된다는 깔끔한 인식의 관점에서는 굳이 유골을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있다.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갈 육신이라면 애당초 시신의 소각 단계에서부터 깔끔하게 사라지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마지막 단계에서 시간을 좀 더 소요한다면 그다지 불가능한 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인위적인 또 다른 번잡스러움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못내 그것이 아쉽다면 최종적으로 남게 될 유골의 잔량을  더 줄이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가령 현재보다도 1/5로 줄일 수 있다면 모두 30기를 보존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비좁은 우리나라의 국토 사정을 고려한다면 기존의 한 평짜리 묘에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의 수가 고작 여섯 개란 사실에서 작은 아쉬움이 남으니 말이다.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이 모두가 우리 후손들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작 자연으로 돌아가신 분은 이미 자아가 사라져 버린 상태로서 그 어떤 것도 인식할 수가 없다. 따라서 돌아가신 분으로서는 아무런 이익도 손해도 발생하지 않음이다. 그렇다면 죽음과 관련된 모든 행위들은 어차피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덕분에 우리 인류는 생명의 존엄을 되새기며 보다 차원 높은 정신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겠지만…


비록 '있다고 치자'는 기존의 관습에 반기를 들기는 했지만 가급적 후손 된 자로서의 몸가짐을 바로 하고자 조심하면서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오랜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에서 죽음의 문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잘 알기에 혹여 예의범절이 결여된 무례한으로 지목될까 봐 적잖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중간에 끼인 세대로서 감당해야 할 숙명 같은 것이라면 다소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아무리 오래된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은 계승되기가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래서 차례의식을 개혁하고 여러 곳에 흩어져있던 산소를 한 군데로 모으는 조치를 단행했던 거다.


이제는 여러 산소를 돌아다니며 벌초를 해야 되는 부담감도 사라졌고 한 분 한 분 개별적으로 모시던 제사행위 대신 명절 때 한꺼번에 인사하는 시스템으로 개선되었다. 그리고 비록 돌아가셨지만 삶의 기억이 남아있는 가족에 대하여는 생존 시와 똑같이 그분의 생일을 축하하는 문화를 새로이 정립했다.  


이 정도에 대해서는 향후 우리 아이들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제각기 일정들이 있다고 하면서 4일간의 추석 연휴 동안 어느 누구도 성묫길에 따라나서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와이프와 단 둘이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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