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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Mar 18. 2023

인생은 마라톤이야!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현실의 여건을 정확히 분석하여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미래를 준비하자!’ 비과학적인 것을 싫어하는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사고방식은 자녀들의 교육에서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 막둥이인데 지난해 가을 무렵, 갓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취업전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구포역에서 막둥이를 떠나보내던 날 우리 부부는 모처럼만에 금정산에 올랐다. 하산 길에 들른 고적한 분위기의 식당 한켠에서 파전으로 산성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며 와이프가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또래들은 캠퍼스의 낭만이 어쩌고 할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 뭣이 급하다고!”

“무슨 소리! 인생을 막연하게 살던 시대는 진즉에 끝났어, 난 우리 막둥이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어, 두고 보라고! 우리 막둥이는 멋지게 해낼 테니까”    

나는 입에도 대지 못하는 술을 와이프는 벌컥벌컥 잘도 마시면서 우리 막둥이의 앞날을 위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응원해 주었다.      


우리 막둥이가 지역의 대표적 마이스터고인 부산기계공고로의 진학을 결정했을 때 난 쾌히 동의했다. 고교 3년 내내 주말도 없이 전국기능대회를 준비할 때는 마음 한편이 아련했지만 어깨를 두들이며 격려해 주었다. 졸업과 동시에 산업체특례의 기회도 마다하고 군기가 엄청 빡세다는 특전사에 자진 입대할 때에도 만류하지 않았다. 전역 후 잠깐의 휴식기도 마다하고 냉동공조분야의 중견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일체의 군말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 주었다.


난 우리 막둥이가  고교시절 힘들게 갈고닦은 자신의 전공을 더욱 심화 발전시킬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한 것에 크게 만족한다. 냉동 공조의 기술명장이 되고 싶다는 우리 막둥이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미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준비했던 거다.


그 당시 막연한 생각으로 비과학적인 선택을 하였다면 아마도 지금쯤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인생의 선택지를 받아 들고서 좌충우돌할 수도 있겠다. 비록 남들은 다 간다는 대학생이 아니면 어떤가? 스스로 필요성을 느꼈을 때 마이스터고 전형을 활용하여 나중에라도 진학할 수 있는 문제다. 그동안 열심히 배운 것들을 맘껏 펼치면서 한발 한발 다가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꿈인 냉동 공조의 기술명인이 되어있을 것 같다.


어느덧 육십,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인생도 웬만큼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사계절로 비유하자면 살짝 늦가을로 진입하려는 절정의 가을풍경이랄까. 하루 24시간으로는 퇴근 시각이 다가오는 오후 다섯 시가 임박한 상태일 것 같다. 좀 더 실감 나게 비유하자면 대략 85년간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의 용량 중 이제 30%가량 잔량이 남겨진 상태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쯤 되면 배터리의 잔량이 짱짱한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의 도움말 몇 마디쯤을 들려줄 자격요건은 갖춘 것 같은데.


지나온 인생을 한 문장으로 짧게 정의한다면 긴 호흡으로 달려가는 마라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백 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전력질주를 하다가는 얼마못가서 지칠 수도 있으니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설사 먼저 달려가는 친구들이 있을지라도 비교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조급증을 내기보다는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완주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으면 좋겠다. 당장은 초조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졸업식 때 그 어떤 상장보다도 가슴 뭉클하게 했던 6년 개근상 내지는 3년 개근상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미 배터리용량의 70%를 소진한 사람의 경험칙에 의하면 달성하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를 중도포기 없이 완주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아무라도 달성할 수 있는 영광이 아닌 만큼 끝까지 완주한 사람이 누리는 기쁨은 바르셀로나 몬주익에서 환호하는 황영조의 감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냉동 공조의 기술 명인이 되고자 하는 우리 막둥이의 당찬 포부는 이제 갓 스타트가 시작되었을 뿐 오랜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긴 여정임에 분명하다. 모쪼록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의 풍광도 즐겨가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달려갔으면 좋겠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짜고 맵고 달달한 자극적인 맛의 향연보다는 본래의 식감을 은근히 느낄 수 있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담백한 맛처럼 말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 말했으면 정말 좋았을법했지만 기어이 그놈의 꼰대기질이 발현되고 말았다.  


“타인을 속이지도 말고 속임을 당하지도 말지어다, 한꺼번에 이루려는 일확천금의 헛된 망상을 경계한다면 다단계나 도박 코인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일은 없을 것이고,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살고 싶다는 헛된 과욕이 없다면 골치 아픈 종교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다소간 늦을 수는 있겠지만 위험한 샛길 대신 안전한 대로를 걷는 것이 오히려 빠른 길임을 명심 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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