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 뚝순이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기자들의 근무 패턴에 대해 알 수도 있다. 적지 않은 기자들이 많은 경로를 통해 우리들의 근무 방식을 알려왔다. 기사로 쓰기도 하고 책을 낸 선배들도 있다. 블로그를 열심히 하는 선후배들을 통해 알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서 한 마디 보태려는 건, 다른 기자들과는 다른 나만의 패턴이 또 있을 수 있어서다.
"야구기자는 야구가 하는 날 쉬지 않는다".
이것이 예전 야구기자 선배들의 철칙이었다고 한다. 종이신문으로 발행되는 언론만 존재할 때는 금요일과 토요일이 원칙적으로 휴일(월요일 신문을 일요일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신문은 시간이 하루씩 빨리 간다)이었지만 야구는 월요일을 제외하면 매일 열리다보니 야구기자들은 쉬지 않고 야구를 보며 기사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온라인 뉴스 시대가 열리면서 포털사이트는 발행도 필요없고 휴일도 쉬지 않아 야구기자가 이제 진짜 월요일에만 쉴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나는 그때 야구기자로 입사했다.
입사 첫 3개월 동안 나는 유일하게 월요일만 쉬었다. 아침이면 회사에 출근해서 오전 근무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 수도권 야구장에 출근해 선배와 함께 야구를 보고 기사를 써서 컨펌받았다. 밤에 퇴근하면 아침에 나갈 기사를 미리 써두고 잔 뒤 아침이면 출근하는 일상이 매일 반복됐다.
쉬는 날도 제대로 없었다. 월요일 하루만 쉬었는데 일요일 저녁에 월요일용 기사를 미리 써두고 쉬었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에 나갈 기사를 월요일 밤에 써뒀으니 월요일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셈이었다. 내가 다닌 회사가 다른 회사에 비해서는 업무량이 많은 편이었다.
인턴기자 3개월이 지난 뒤 수습기자가 돼서 달라진 건 동기 기자와 번갈아 회사로 출근하게 되면서 격일 오전 재택근무가 가능해졌다는 것뿐이었다.
누군가는 너무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일상이지만 6개월을 '빡세게' 배운 덕분에 나는 하루빨리 '1인분'을 할 수 있게 됐다. 최대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유형의 기사를 써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하는 인재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후에는 주간, 혹은 월간 단위로 일정이 나왔고 대부분 3연전씩 현장에 배정됐다.
담당팀이 홈 6연전을 하면 6일 내내 현장에 나가기도 하고, 원정 6연전을 떠나면 일주일 동안 하루도 현장에 나가지 않는 날도 있다. 그리고 담당팀이 수도권이 아니라면 3연전씩 출장이 많아진다. 마지막으로 그날그날 현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돌아가며 내근 겸 메이저리그 당번을 맡아 메이저리그 주요 기사들을 몰아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 온라인 회사의 근무 방식이다. 최근에는 종이신문들도 온라인 당번을 두는 경향이 많다.
이처럼 야구 경기가 끝나고 집에 와서도 밤 11시에 다시 다음날 아침용 기사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여는 생활을 계속했다. 출장을 가면 경기 후 회식에 참석하고 새벽 2시에 끝나도 숙소로 돌아와 아침용 기사를 작성했다. 매일이 출근하고 야구 보고 기사 쓰고 퇴근하고 기사 쓰고의 반복인 셈이었다.
월요일은 근무일이든 휴일이든 야구가 없기 때문에 일단 하루 업무량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휴일이었던 월요일 소파에 누워 있다가 내 첫 담당팀 감독 해임을 알리는 보도자료 발송 문자를 받고 당황해서 펄쩍 뛴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월요일에도 바짝 긴장한 채 앉아 있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요한 것은 결국 ‘조회수’다. 기사를 써도 현실적으로 포털사이트에서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으면 대부분의 회사에서 고과를 잘 받지 못한다. 조회수가 결국 매체의 수입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사의 양도 중요하지만 요즘 기사의 질은 곧 조회수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조회수를 유도하는 자극적인 기사만큼은 지양하고 싶은 것이 기자로서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러다 보니 조회수 면에서는 실패할 때가 많다. 메모장의 흰 면만 봐도 내용은 충실하게, 하지만 최대한 잘 읽히게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어진다.
여기에 야구가 쉬는 월요일에도 감독 해임을 겪은 것처럼 구단들이 트레이드, 방출, 영입 등 어떤 발표를 할지 몰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 역시 불안의 한 증상일 수도 있다. 여기에 대부분의 야구기자들은 댓글이 있을 때는 악플러들과 싸울 때가 많았고 댓글이 사라지자 메일로 항의를 하거나 다짜고짜 욕을 보내는 팬들이 있어 마치 '공인'과도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
예전에 ‘국거박’이라는 별칭을 가진 네티즌이 활동한 적이 있다. 대부분은 한 선수를 욕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사람의 활동이 나에게도 영향은 미친 건 그 선수가 내 담당팀이었기 때문이다. 그 네티즌은 내 기사에 알람을 달아놓은 것처럼 기사 송출 몇 초 만에 찾아와 ‘이런 기사를 쓰는 네가 불쌍하다’, ‘구단에 돈 받았냐’ 등 나에게도 악담을 늘어놓았다. 대부분은 구단, 선수가 피해자라고 생각했겠지만 나와, 다른 기자들 역시 그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사를 쓰는 것 외에 마음을 쓰는 것까지. 여기까지가 야구기자들의 일이다. 내가 약 10년 간의 근무 패턴을 밝히는 또 하나 이유가 바로 혹시나 야구를 보는 것만이 야구기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서다. 어떤 직업이든 쉽지 않겠지만, 비교적 재미있는 직업처럼 보일 야구기자 역시 조금이나마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 조금이나마 알아달라는 투정이다. 이제 모든 걸 숫자로 설명해야 하는 직업. 조회수 그래프를 볼 때마다 마치 기사를, 영혼을 파는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