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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기자 Jun 01. 2022

14. 성희롱 대처도 '일'이다

야구장의 뚝순이

지금까지 우당탕탕 뚝딱뚝딱 나의 좌충우돌 기자 생활 에피소드를 전했다면 한 번은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가야 할 필요가 있다.


2011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 수많은 선수, 직원,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물론 즐거운 일도 매우 많았지만, 힘겹고 기분 나쁜 일도 많았다. 기사를 쓰면서 오타를 내거나 지각, 건망증 등 나의 실수로 인해 일어진 일들은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 하에 바뀔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의 의지, 의도와 다르게 일어나는 나쁜 일들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성희롱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이라도 성희롱을 당하면 참지 않고 잘못을 따져야 정의로운 기자겠지만, 현실적으로 기자가, 그것도 여기자가 선수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같은 기자들조차 "앞으로 계속 기자 생활하고 선수들을 만나 취재하기 위해서는 선수들과 섣불리 적을 만들지 마라. 기분 나쁘겠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선수들 중 잘못인 것을 깨닫는 사람들은 바로 사과를 하거나, 옆에서 선배들이 사과를 시켰다. 하지만 일부는 잘못임을 알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나는 그 모습에 따지기도 싸우기도 해보고 그냥 속으로 삭히며 아픔을 홀로 달래기도 했다.


여기자들끼리는 자주 누군가의 성희롱, 성추행 사이를 이야기하며 하소연을 나누기도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겪은 일, 그중에서도 공개했을 때 현재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일들만 골랐다.


지금 이 이야기를 내가 쓰는 것은 그들이 잘못했다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에 바로 잘못을 사과하라고 말하지 못한 나도 잘한 게 아니니까. 다만 앞으로 선수들은 성희롱을 하지 말고, 여기자들은 가만히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몇 년 전 한 선수가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당시 "없다"고 하자 그 선수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니 한 마디를 던졌다.


"그렇게 하고 다니니까 인기가 없지. 남자 만들려면 페로몬 향수라도 뿌려야겠네. 남자 꼬이는 거 있잖아요". 묘한 성희롱 발언에 화를 내야 하나 싶었지만 그 선수는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며 더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 사라졌다.


그 선수의 '망언'은 또 있었다. 하루는 활발한 성격의 여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나에게 오더니 "여기자면 저렇게 더그아웃 분위기도 밝게 띄워야지, 망부석처럼 매일 서 있기만 하면 뭐하냐"는 것 아닌가. 나는 이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해 홍보팀을 통해 공식 사과를 받았다. 사과를 받으니 조금 풀렸지만 앞으로 이 팀의 선수들이 "홍보팀에 다 이르는 기자"라고 흉보면 어쩌나. 사실 조금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선수들을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받쳐주는 어떤 조직이 없는 이상, 나라는 개인과 선수들이라는 조직 간의 대결 구도가 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외국인 선수가 어느 날 '카톡' 아이디를 물어보더니 그 다음날부터 때때로 밤에 "놀러 나오라"고 연락한 경우도 있었다. 뉘앙스만으로도 이건 ‘기자 대 선수’가 아니라 여자로 봐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실제로 다른 남자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그 선수가 그런 걸 물어본 적도 없다고 해서 바로 차단해버렸다.


성희롱은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입단한지 얼마 안된 어린 선수가 나를 보더니 "기자님, 선수들은 기자님 같은 얼굴 안 좋아하는 거 알죠? 예쁜 여자 좋아해요"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행이네요. 저도 당신 같은 성격 안 좋아합니다"라고 받아쳤다.


당시 잘 받아친 것일까. 더 나은 말은 없었을까. 아직도 가끔 자기 전 생각한다. 이외에도 많은 성희롱 사례가 있었다. "살 좀 빼라"는 말은 애교이고 "곱슬머리 좀 어떻게 하라"는 참견까지 있었다. 일부 선수들이 여기자들을 구분할 때 '신체적 특징'으로 따진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을 때도 매우 불쾌했다.


나 말고 다른 여기자들 역시 어려운 일을 겪는다. 서로를 위로할 사람들은 우리들 뿐이다. 그래서 여기자들의 모임은 가끔 ‘성희롱 성토’의 장이 되긴 한다. 성희롱만이 아니더라도 매번 선수들의 짓궂은 말을 받아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것이 남기자들과 다른 여기자들이 해야 하는 추가적인 일 중 하나다.

 

야구계에서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성인지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는 매우 반갑지만 이론에 중점을 둔 그 교육이 얼마나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기자 뿐 아니라 프런트까지 여성의 비율이 늘면서 이제는 함부로 농담처럼 성희롱을 건네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은 맞다. 그래서 갓 10년을 넘긴, 아직은 중간 정도의 기자지만 “세월 좋아졌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선수들 뿐 아니라 때때로 여성들을 무시하는 남기자들도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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