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 뚝순이
야구장 안에서의 이야기만 했다면 이번에는 야구장 밖의 나로 고개를 돌려보자.
이제는 과거가 됐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싱글이었다. 기자로서가 아닌 개인의 삶은 거의 없다시피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에도 자다 깨면 야구장을 가고, 다녀오면 다시 기사를 쓰고 잠드는 생활을 이어갔고 주말 출근과 지방 출장이 잦다 보니 누군가와 약속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당연히 주말에 있는 친구, 친척들의 경조사도 챙길 수 없었고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과의 인연도 끊어져갔다. 이런 상황에 내 옆에 새로 누군가를 들이는 건 그때의 나에게는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매일 피곤하다면서 오전 내내 침대에 붙어 있다가 야구장에 가서 밤에나 돌아오는 딸내미. 부모님은 지나치게 단조로운 삶을 사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누가 결혼을 하래? 연애라도 해야 삶이 재미있지"
엄마의 속쓰린 잔소리에 몇 번 소개팅을 잡기도 했지만 번번이 '까였다'. 그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말에 매번 일하는 나 때문에 소개팅은 거의 주중 저녁에 번갯불에 콩구워먹듯이 이뤄졌다. 한 번 만나고 나서도 도저히 '애프터'를 잡기가 힘든 내 일정에 대부분 상대 대신 주선자가 전화로 쓴소리를 쏟아내는 '새드 엔딩'이었다.
한 번은 소개팅을 하러 나가면서 괜히 쎄한 마음에 큰 가방에 노트북을 들고 나갔다. 소개팅을 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았다. 회사에서 당시 국제대회 타국 경기 결과를 기사로 처리하라고 전화가 왔다. 나는 쉬는 날이었지만 할 사람이 없다는 말에 짧은 한숨을 뱉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소개팅 당사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주보고 있던 예쁜 찻잔을 옆으로 치운 뒤 노트북을 열었다.
당시 소개팅 상대는 "역시 기자는 이렇게 바쁘군요"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대인배 면모를 보여줬지만 결국 애프터는 오지 않았고 그 사정을 아는 나도 애프터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소개팅에서 기사 쓴 이야기는 나중에 누군가에게 기자의 애로사항을 말할 때 주로 쓰는 레퍼토리였는데, 나는 슬펐지만 대부분 듣고는 매우 재미있어해서 난감할 때가 많았다.
또 한 번의 기가 막힌 소개팅이 있었다. 정말 귀중한 주말 휴일이 생겨 소개팅을 잡았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상대는 분명히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야구부가 있다며 야구에 대해 아는 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활을 이해하지 못했다. 근무 패턴을 설명한 나에게 "주말에 일시키는 회사가 있냐", "매일 밤마다 일을 해야 하는 거냐", "회사를 고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노'를 쏟아냈다.
나 역시 내가 일반적인 직업이 아니기에 상대의 양해를 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주중에는 밤에, 주말에는 낮에 일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혀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분도 나와는 만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소개팅 후 쌍방간에 잘 들어가시라는 연락조차 없었던, 흔치 않은 만남이었다.
소개팅 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만남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원래 알고 지내던 분은 내가 항상 주중 저녁 퇴근 후(상대 기준) 연락이 되지 않자(나는 야구장에서 그 시간이 가장 바쁘다) 하루는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야? 야구야? 선택해". 나는 그 문자에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힘들게 취업을 한 직장이 그런 환경이라면, 상대를 더 힘들게 하기 전에 끊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여러 녹록지 않은 환경에 솔로 생활이 길어지자 주위에서는 "야구 선수랑 만나는 건 어떠냐", "멀리 가지 말고 구단 직원, 기자들 같이 야구장 주변에서 찾아봐라"라는 조언이 쏟아졌다. 남자가 많은 환경이니 그런 충고가 많았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회사에서 '절대 야구장 내에서 사고치지 말아라', '여기자 뽑은 거 후회하게 하지 말아라'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박히게 들었기 때문에 야구장 내부에서는 무언가 이뤄질 기미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의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매번 '자발적 솔로'가 됐다.
언젠가는 한 선수가 "기자님은 야구 선수 안 만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선수가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우리가 좋겠냐. 볼 꼴 못 볼 꼴 다 보는데"라고 칼 같이 끊었다. 그 선수의 말에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지금까지 선수들과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갑자기 남자로 보이지도 않았고, 그 안에서 스캔들을 만들어 모두와 어색한 사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선수의 대시도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여기자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일 때 "따지고 보면 야구장에 남자만 수백 명인데 내가 정말 그렇게 여자로서 매력이 없냐"며 토로했던 '웃픈' 기억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회사 내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으니 "야구장 주변에서 찾아보라"는 조언이 통했던 셈이다. 한때 "목동의 지박령", "목동의 누나", "고척의 이모" 소리까지 들어가며 '초라한 싱글'로 남을 뻔한 나를 구제해준 남편에게 고맙다. 그리고 야구장에서 비슷한 길을 걸으며 매일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덜 외롭고 덜 심심하다.
명절에도 전지훈련 취재 가랴, 지방 출장 가랴 열일하는 며느리를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는 시어르신들께도 정말 감사드린다. 그리고 며느리로서 역할을 다 하라고 배려해주는 회사 선배 덕분에 최악의 며느리는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누구나 그렇듯 바깥일과 집안일을 둘다 잘하려는 욕심과 저질 체력의 간극 사이에서 매일 고민 중인 유부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