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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기자 Jun 01. 2022

13. 찰나의 미학, 기사의 동반자 '사진'

야구장의 뚝순이

취재기자에게 사진은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다. 모든 기사에는 기사와 관련된 인물, 사건에 대한 사진이 붙어야 포털사이트에서 제대로 된 기사로 편집될 수 있다. 최근에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한 기사에 관련 사진을 여러 장 붙여서 송출하기도 한다. 오히려 사진이 너무 많고 글 양이 너무 적어 포털사이트에서 ‘화보 기사’ 취급을 받을 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장면을 포착해서 기사로 써도 그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현장감 차이가 매우 크다. 단지 한 장면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홈런을 친 선수의 기사를 쓰면서 찌푸리는 얼굴을 사용한다든지, 타격 기사를 쓰면서 수비하는 사진이라든지. 상황에 맞지 않는 사진을 쓰면 기사의 가치는 반감된다. 

 

요즘에는 팬들이 사진에 예민해서 홈 경기를 치르는 선수 사진으로 원정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사용하는 것조차 마음에 안 들어할 때가 있어 더 정성스럽게 사진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어린 선수들의 경우는 사진기자들이 ‘픽’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팬들의 사진이 더 잘나오거나 팬 사진만 있을 때가 많다. 그럴 때는 팬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 사진을 기사에 가져다 쓰기도 한다.

 

내가 사진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2012 아시아 시리즈였다. 추운 날씨에 사직야구장 외부 좌석에서 달달 떨며 앉아 있는데 같은 회사 사진기자 선배가 특이한 것을 하나 포착했다. 

 

야구장 전광판에 '콜드 게임(Called game)'이 'Cold game'으로 표기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 일본, 대만 등 여러 나라의 팀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나온 주최측의 실수였다. 회사에서는 주최측의 망신이라며 즉시 기사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바로 아시아 시리즈에서 'Cold Game'이라는 오타가 났다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해 내보냈다. 만약 사진기자가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지 않았다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혹은 내가 다른 전광판 사진을 써서 기사를 전송했다면 기사의 현장감이 뚝 떨어졌을 것이다. 당시 주최측이었던 KBO에는 미안했지만 당시 그 기사는 사진 하나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또 한 번 사진기자의 능력을 실감한 사건이 있었다. 2013년 포스트시즌 경기 중 히어로즈 베테랑 외야수 송지만이 타구를 잡기 위해 담장 앞에서 날아올랐다. 나는 당시 직감적으로 베테랑의 마지막 '더 캐치'라는 걸 느꼈다. 

 

그해 1월 스프링캠프를 떠날 때 “마지막 캠프가 될 것 같다”며 나에게 기념 사진을 찍자고 제의했던 그 선수의 모습이 번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마지막까지 날아오르는 투혼을 발휘하는 고참 선수의 호수비는, 그 뒷 배경을 알고 보았기에 눈물이 핑 돌만큼 더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기사로 쓰고 싶었지만 평범한 타격, 수비 사진으로는 기사의 '맛'이 살지 않을 거라는 걱정에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내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준 이는 바로 당시 재직하던 매체의 사진국장이었다. 베테랑을 알아본 베테랑은 송지만 당시 선수가 날아오르는 장면을 멋지게 잡아줬고 나는 마지막 추억과도 같은 호수비를 기사에 담을 수 있었다.

 

이처럼 현장감이 중요해진 요즘은 취재기자들이 직접 사진을 찍기도 한다. 회사 사진기자들은 사진기자들의 루틴대로 움직이는데 내가 눈앞에서 포착한 기삿거리를 바로바로 사진기자에게 요청하기는 어렵다. ‘일단 내가 먼저 찍어놓고 보자’는 생각이 이제는 취재기자의 사진, 영상 촬영이라는 새로운 문화로 이어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기기 전인 2019년까지는 기자들의 경기 전후 더그아웃 출입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더그아웃에서 직접 선수들의 사진을 찍어 기사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기자들의 전문 카메라처럼 화질이 좋거나 포커스가 잘 맞지는 않더라도, 최근 기사에서 계속 요구하는 현장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코로나19로 더그아웃 출입이 제한된 뒤 매체를 막론하고 기사의 소재들이 한정적으로 변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사진기자가 아닌 취재기자의 단독 사진 촬영도 있었다. 몇 해 전 군면제를 받은 선수들 몇 명이 다같이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매체들이 몰려가 취재를 시도했는데 선수들이 모두 매체 출입이 금지된 훈련소 안에서 가족들의 차를 타고 퇴소하면서 아무도 그들의 모습을 찍지 못하고 '퇴각'했다.


그리고 서울로 오는 길에 같이 차를 타고 있던 한 사진기자가 "어!"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당시 현장에 남아 있던 한 취재기자가, 훈련소 밖에서 화장실에 들리던 선수 1명을 포착해 사진을 찍은 것이 포털사이트에 기사로 올라왔다. 사진기자만 10명 가까이 몰려간 현장에서 취재기자 홀로 찍은 사진이기에 사진기자 누군가 “취재기자 1명한테 사진기자들 다 ‘물먹었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최근에는 각 구단마다 오피셜 사진을 계약해 현장에 사진기자가 오지 않은 취재기자들게 매 경기 사진을 제공한다. 사진이 빨리 올라오느냐, 중요한 장면을 잘 찍었느냐에 따라 오피셜의 평가가 갈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진을 매일 제공해주는 구단 오피셜은 기자에게는 고마운 존재다. 

 

마지막으로 우스갯소리를 붙이자면 다른 부문보다 스포츠계에서 주로 나오는 일인데, 선수들의 플레이를 찍는 것이 현장 사진기자의 의무기에 선수들의 역동적인 장면이 주로 담긴다. 그렇다보니 얼굴이 찌그러지는 경우도 많은데,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일부 선수들은 자신이 유독 못생기게 나오는 사진을 싫어한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잘나온 사진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선수들도 있다. 가끔은 기사를 다 써놓고 선수가 ‘정상적으로’ 나온 사진을 고르느라 많은 시간을 보낼 때가 있는데 선수가 그 정성을 알아줄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의 마음으로 사진 목록에서 잘 나온 사진을 파고 또 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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