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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기자 Jun 01. 2022

11. 한국에서 왔어요!

야구장의 뚝순이

2013년 12월. 휴가를 내고 친구와 오사카 여행을 떠난 나는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오사카 공항 탑승게이트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보이스톡'이 울려 보니 부장의 전화였다. 휴가 중에 날아온 부장의 연락이라니. 왜인지 쎄한 기분이었다.

 

"너 급하게 오사카 좀 가야겠는데?".

받자마자 오승환의 한신 타이거스 입단식에 가라는 지시였다. 언제냐고 물으니 "내일 아침"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저 지금 오사카인데요..?" 

"..... 거기 그냥 있어라".

 

회사에서는 나에게 그대로 하루 더 묵고 출장을 시작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탑승게이트까지 와 있었기 때문에 차마 나가지 못하고 밤에 서울 집으로 왔다가 다음날 새벽 오사카로 다시 떠나는 웃지 못할 여정을 치렀다. 오사카 세관에서 '보부상'으로 의심받아 짐 검사를 받 에피소드는 덤이었다.

 

회사가 오승환의 입단식에 사람을 보낼지 말지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미리 신청했던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거기에 회사가 전격적으로 입단식 전날 출장을 가서 현지 분위기를 취재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나의 급박한 출장이 이뤄졌다. 

 

그때 당시 생각보다 오사카 사람들이 한신, 오승환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아 (부정적인 방향으로) 놀란 기억이 난다. 중년층 중에서는 “신문에서 봤다”, “들어봤다”는 반응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특히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거나 “야구를 잘 보지 않는다”고 해서 일본 야구계도 한국과 비슷한 고민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됐든 입단식은 호텔에서 호화롭게 열렸다. 구단 직원들과 한신 담당기자 등 야구계 내부의 관심은 다행히도 컸다. 오승환이 한신에서 뛰게 되면서 회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알던 나의 일본 출장도 많아졌다. 다행히 어딜 가든 "한국에서 왔어요!"를 외치며 한국 기자임을 밝히면 일본어를 느리게, 알아듣기 쉽게 해줬다.

 

한신 담당기자들은 굉장히 야구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고 취재 욕심도 많았다. 오사카 지역 신문 대부분은 한신이 이기든 지든 매일 한두 면씩 기사로 났다. 담당기자들은 외국인 선수인 오승환을 취재하기 위해 나를 취재했다. 

 

오승환을 매일 인터뷰하기 힘들었던 탓에 나에게 오승환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한 기자는 나에게 한국 야구계에서 오승환의 외모 랭킹을 묻는 등 내용도 가지각색이었다. 그곳도 취재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인지 한 기자는 나에게 와서 오승환에 대해 묻더니 "이 내용을 다른 기자들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 번은 기자들이 나에게 우르르 몰려오더니 "오승환의 취미는 뭐냐"고 물어봤는데 나도 알 턱이 없었다. 오승환에게 나중에 따로 취미를 물어보자 "그림 보고 난(화분) 치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기자들에게 그렇게 전달하자 "역시 ぶっださん(부처님)~" "すごい(대단해)~"라며 환호했다. 보통 야구 관련 질문만 하는 한국 기자로서는 생소한 취재 내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신의 성적이었다. 개막 9연전 출장을 갔는데 한신이 개막전 이후로 계속 져서 9경기 동안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단 2번 등판했다. 당연히 나는 취재할 게 없었다. 오사카 현지 분위기 취재도 하루이틀이었다. 오승환이 나오질 못하니 분위기랄 것도 없었다. 언젠가 내가 취재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데 누가 등을 두드려서 보니 오승환이었다.

 

"쓸 게 없어서 어떡해요. 저 내일부터 응원가 바꾸는데 그거라도 쓰세요".

그날만은 오승환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일본 야구를 취재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또 있다. 한국에서는 선수와 기자가 평등하다면 일본에서는 선수, 감독이 '신' 같은 존재였다. 특히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에게는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었다. 

 

경기 전에는 더그아웃 인터뷰가 있었지만 질문하는 기자는 베테랑 몇 명으로 거의 정해져 있었고, 경기 후에도 몇 명의 대표 기자들이 질문을 정리해서 특정 공간에서 감독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모든 기자들이 그 대표 기자들을 둘러싸고 감독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걸 모르고 나는 한 차례 경기 전에 하라 감독에게 대뜸 이승엽과 추억에 대해 물어봤다. 하라 감독은 내 일본어를 못 알아들었는지 가까이 있던 취재진을 통해 다시 듣더니 통크게 웃으며 대답을 해줬다. 나중에 일본 기자들 몇 명이 나에게 “대단하다”고 말해줬는데 그뜻을 나중에야 파악했다.

 

선수 인터뷰도 남달랐다. 일본은 모든 구단에서 경기 전후 선수를 세우고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경기 전 선수를 앉혀놓고 인터뷰하기 위해서는 돈을 줘야 했다. 경기 전후 더그아웃에 가면 어떤 선수와도 인터뷰할 수 있는 한국과 완전히 다른 점이었다. 일본은 경기 후에도 선수를 세워놓을 수 없기 때문에, 퇴근하는 선수가 야구장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며 한 마디라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일본 전지훈련 풍경 역시 인상적이었다. 한국 구단들은 해외로 전지훈련을 가기 때문에 팬들이 전지훈련장을 찾아오기 힘들다. 일본은 오키나와가 멀긴 하지만 국내라서 그런지 팬들이 봄 휴가 삼아 하루에 몇천 명씩 전지훈련장을 찾았다. 해외 전지훈련에 1~2주씩 출장을 가는 한국 기자들과 다르게 일본 기자들은 담당팀의 전지훈련 시작부터 끝까지 한 달 넘는 시간 출장을 간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 요미우리와 한신의 전지훈련장이 유독 붐볐다. 전지훈련장 입구 주차장부터 야구장까지 가는 몇 백 미터 길이 다 음식,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이었다. 야구장에는 팬들이 몰려들어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도 한국 팀들의 훈련 풍경과는 다른 점이었다. 훈련인데도 담장을 넘기는 타구에 환호하거나 간혹 크게 훈수를 둬 웃음을 유발하는 ‘아재 팬’들도 있었다.

 

다행히 일본어를 몇 마디 할 줄 아는 덕분에 이대호, 오승환, 이대은을 묶어 일본 출장을 여러 번 다니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1년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현지 친구들에게 배 '야매' 화법이었지만, 엉망진창 일본어도 잘 알아들어주고 많이 도와준 일본 야구기자들이 아직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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