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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엄마의 말씀을 기록한다.

우리 아이 육아 교리

by 붕어빵

육아로 아내를 이길 수는 없다. 이 명제는 불변의 법칙이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빠가 아무리 책으로 공부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을 육아 컨텐츠로 까맣게 칠해놔도 엄마들만이 입장 가능한 '그 커뮤니티'의 힘은 타노스의 반지와 동급이다.

그래서 나는 깊이 생각지 않기로 했다. 아니,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아내가 옳다. 애초에 나는 반대할 수 있는 근거가 빈약하다. 왜라고 묻지 않는다. 어차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핀잔만 들을 뿐이다. 그냥 나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사람이란 망각의 동물. 들은 것도 잊고 배운 것도 잊는다. '지난번에 말해줬잖아'라는 얘기를 열 번째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기록을 하기 시작했고 '엄마의 말씀'이라는 성전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그 순간의 어투가 살아나도록 구어체로, 있는 그대로 작성하려고 노력하였다. 아이 30개월에 이르러 그 수가 20개에 달했다. 몇 개만 말해보자.


장난감 뺏지 말래.

아이가 장난감을 입에 넣거나 하는 경우, 뺏지 말고 달라고 요청하라는 말씀이시다.


나시 없으면 얘기해 줘.

이런 게 힘들다. 왜 그랬는지 기억이 안 나서 힘들다. 그냥 아이 옷을 입히는데 민소매가 없었나 보다. 그게 왜 내 책임이야?라고 묻지 말기. 그래서 기록했나 보다.


아이 앞에서 빵구끼지마(아내는 부산 사람. 무의식적으로 된소리가 나온다).

네. 죄송합니다. 그러는 너는?이라고 묻지 말기.


지시 대명사를 최소화로 해줘.

이것저것 그것 요것. 말고 젓가락, 숟가락, 곰인형, 타요, 아기상어 등 정확한 명칭을 말해줘라.


목소리 힘 조금만 빼줘.

아직도 어려운 목소리 힘 빼기. 아이를 야단칠 때나 급박한 상황일 때 무의식적으로 나의 데시벨이 올라간다.


밥 먹을 땐 건드리지 마소.

은유법이 아닌, 직접적인 터치다. 밥 먹는 게 사랑스러워 자꾸 건드리니 아이가 식사에 집중을 못한다.


목욕할 때 뭐하는지 얘기해 줘. 어려우면 중계하듯이 해도 된대.

오른발 물에 닿기 직전. 풍덩 들어갔습니다~ 물 물 물이 오른쪽 어깨에서 몸으로 퍼지는 순간. 선수 비명을 지릅니다. 아~ 이거 위험한데요. 아직 비누도 못 칠했어요. 오늘 경기 어려워집니다.

정말 중계하듯이 했다가 혼났다.


이제 애기들이 습자지처럼 흡수한다고 발로 선풍기 버튼 누리지 말래.

네, 알겠습니다.


의성어, 의태어를 같이 말해주면 좋대.

우리 아기 맘마가 슈-웅, 입으로 쏘옥! 냠냠 꼭꼭.


"해도 돼?" 말고 "할게"라고 해줘.

나의 입버릇이다. 육아에 대한 나의 결정에 자신이 없으니, 일일이 확인을 받고 움직이게 되었다. 빵 먹여도 돼? 물 먹여도 돼? 안아도 돼? 양말 신겨도 돼? 도저히 "소시지 먹일게, 옷 벗길게, 산책 갔다 올게"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결국에 나는 우는 표정으로, "노력하겠으니 이해해 달라"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전 확인을 받고 있다.


"망했어"하지 말래. 표현의 다양성을 해친데. "헐, 대박" 금지.

아, 이거 어렵네.


차에서 재워야지라는 건 쪽쪽이 물리라는 뜻이야.

한창 쪽쪽이를 빼는 연습을 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차에서 재우자라고 하니 정색을 하며 돌아온 답이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는가 싶어 울컥했지만, 나는 조건 반사로 미안해라고 끝냈다. 그때는 그랬다. 하루 12번씩 미안해라고 말하며 점점 작아졌다.


잉 하고 오면 아빠하고 교정해 줘.

뭔가 일이 안 풀릴 때, 잉하고 울음소리 비슷한 것을 낸다. 그때, "아빠, 도와주세요."라고 교정해 주라는 내용.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 말고 대체 행동을 알려주래.

몇 번 들은 얘기지만, 당최 고쳐지지 않는 나다. 아이가 뭔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안된다고 하지 말고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알려주라는 내용이다.


육아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데.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말란 것.


나 말할 때는 기다려줘.

엄마가 아이에게 훈육을 하고 있을 때는 옆에서 피처링 넣지 말 것.


이렇게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엄마도 잘 모른다. 잘 모르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또는 다른 매체로 듣거나 본 내용을 나에게 전달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엄마의 말씀'의 끝은 전달체로 구성되어 있다. 한대, 주래, 말래, 좋대, 하래. 아이 엄마는 어쩌면 나에게 의견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보다 더 모르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혼나기가 싫다. 괜히 의견을 냈다가 절래 절래 가로로 젓는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도 싫다. 그러니 나는 아내의 말에 의견 없이, 논쟁 없이, 질문 없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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