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내 아이가 잘살았으면 좋겠다.
어릴 적, 어머니와 여동생의 싸움이 시작되면 자신에게 허락된 가장 아픈 언어로 서로를 할퀴고 긁으며 누가 더 많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지 경쟁을 하는 듯했다. 그 얻을 것 없는 싸움의 클라이맥스에는 약속한 듯이 이 대사가 나온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 대사를 기점으로 점차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들의 싸움은 승자도 없었고, 양보도 없었으며, 사과도 없었다. 어린 나는 그 감정의 피투성이 싸움을 보며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논리도 없고 이성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이런 싸움을 뭐 하러 하는 거야.
최근 크게 히트 친 넥플릭스 '폭삭 속았수다'에서 애순은 딸 금명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그래,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
애순을 연기한 문소리 배우님의 별것 아닌 듯 툭 던지는 그 한마디에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숨죽여 울고 말았다. 그때는 몰랐고, 아니 상상할 수도 없었고, 부모가 된 지금은 사무치게 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우리는 그렇게도 부모의 인생을 부정하고 살았다. 잘못 살았다고. 당신의 삶은 틀렸다고. 나는 당신처럼 옳지 않은 삶은 살지 않을 거라며 많이도 외쳐댔다.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
우리들의 유년 시절. 1980년대에 한국의 엄마들은 팍팍한 삶 속에서 돈을 벌러 나갔으며 경제활동과 동시에 가사까지 돌봐야 하는 슈퍼맘이 되어야 했다. 나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로 힘들게 돈을 버는 와중에 아들과 딸을 돌보느라 하루하루를 견디어내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다짐받듯이 얘기했다.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
아버지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 일평생을 목공소와 공사현장에 계셨다. 그런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신처럼 살지 말라는 말씀을 하진 않았어도 행동에서 알아챌 수 있었다. 경기도에 소재한 작은 4년제 대학교에 합격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으며, 졸업 후 깨끗한 정장을 입고 출퇴근하는 아들을 남들에게 보여주곤 하셨다. 망치, 삽, 톱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콤퓨타'로 일하는 아들을 좋아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이 당신처럼 살지 않길 바랐다. 그런 나도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내 딸아이가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면......
상상만으로 심폐가 오작동을 일으킨다. 땀구멍에서 부끄러움이 피어오른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배신감에 오한이 온다. 내가 잘못된 삶을 살았구나 후회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결국......
"그래 너는 아빠처럼 살지 마."
이게 결론일 거다. 다 내 마음과 똑같지 않을까?
표현이 강하긴 하지만, 내 추억과 삶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너는 아빠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한다.
반지하, 바퀴벌레, 괴롭힘, 외로움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가난을 모르고, 미움받지 않으며, 결핍으로 마음이 좁아지는 그런 삶은 살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아빠가 어릴 적 숱하게 겪어봤으니 충분하다. 그다지 좋은 게 아냐. 세상에 구김살 없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나도 알아. 구김살 없이 빳빳한 사람은 판타지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그냥,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딸을 가진 아빠의 비현실적인 넋두리다.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만날 웃었으면 좋겠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