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하원시키기 싫은 이유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딸아이를 어렵사리 깨워서 아침 먹이고 씻기고 옷 입힌 다음 소파에 앉힌다. 정신없을 때 티비 리모컨을 휘어잡고 베베핀 아무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베베핀에 정신을 빼앗긴 딸아이의 머리칼을 붙잡고 아내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놓는다. 여기까지 오전 7시 30분. 우리는 다 같이 현관문을 열고 어린이집으로 출발한다.
항상 1등으로 등원한다.
어린이집의 등원 시작시간은 7시 30분. 그보다 10분 지난 7시 40분에 등원한다. 한 켤레도 없는 신발장에 우리 딸아이의 신발이 제일 먼저 놓인다. 엄마 아빠의 출근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사실 제일 먼저 등원시키고 싶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동병상련이다. 나도 직장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출근의 고통을 사무치게 알고 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그 마음. 어린이집 선생님도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 이제 막 출근해서 어린이집 불 켜고 있는데 아이가 등원한다. 규정된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서 컴퓨터 켰는데, 부장님이 불러서 일을 시키는 기분이다. 혹시 더 일찍 등원하게 되면 미안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가거나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벨을 누르기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가 혼자 있다는 것. 워낙에 이른 시간이어서 다른 친구들이 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때까지 아이는 혼자 놀아야 한다. 어느 날은 등원시키고 돌아서는데, 다른 어머님과 마주친 적이 있다.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등원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먼저 온 친구가 있네." 나뿐만이 아니라 부모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마지막에 하원시키고 싶지 않다.
반대로, 하원시킬 때는 가장 늦게 하원시키고 싶지 않다. 이유는 비슷하다. 친구들이 모두 부모님과 같이 나가고 혼자 넓은 어린이집에서 장난감을 뒤적뒤적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심장이 쓰리다. 내가 어렸을 적,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녀본 적은 없다. 하지만, 친구들이 전부 떠난 어둑해진 놀이터에서 저녁 늦게까지 어머니의 귀가를 기다린 외로움은 잘 기억하고 있다.
분명 누군가는 가장 늦게 하원해야 한다. 즉, 그 누군가는 같이 놀 친구가 없는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그게 나의 아이는 아니었으면 하는 거다. 나라는 '부모의 이기심'이다. 그래서 아빠가 퇴근 후에 하원시킬 때는 버스 정류장에서 어린이집까지 전력질주를 한다.
그럼 아이를 왜 낳아?
어디서 봤지? 웹상의 짤막한 글로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던 글이다.
"아이를 12시간 넘게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잖아. 그럼 아이를 왜 낳은 거야?"라는 내용이다. 이성 100%를 담아서 뇌를 굴려보면 일리 있는 지적일 수도 있다. 덧셈 뺄셈 곱하기 나누기 사칙연산으로 계산하면 그럴 법한 질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나는 적절한 답을 해주기 어렵다고 느꼈다. 어떤 답을 해도 결괏값은 질문자의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막상 아이를 낳아보면, 너무 좋아.라는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대답도 있지만,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