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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너머 (3)]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Exultet 부활 찬송

by 고미사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엑술뗏(Exultet)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엑술뗏.


이름 자체만으로는 어떤 노래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엑술뗏은 '기뻐 뛰어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라틴어로, 부활 전날 밤 미사 때 신부님 또는 부제님이 제대에 서서 신자들 앞에서 부르는 성가(聖歌)를 말한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이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던 사건을 기념하며 기쁨에 넘쳐 노래하기 때문에 '기뻐 뛰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엑술뗏, 이 성가의 묘미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성가의 묘미는 성당의 분위기에서 나온다. 부활 전날 밤 미사는 해가 다 진 깜깜한 야외에서 시작하는데, 이때 '어둠'은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신자분들이 모이고, 신자분들이 모인 곳 가까이에 불을 지핀다. 미사를 시작하면 이 불빛을 축복하고, 크고 기다란 부활초에 이 축복된 불빛을 옮긴다. 이 부활초의 불빛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겨내고 다시 돌아오신 부활'을 의미한다. 부활초의 이 불빛은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신자분들에게 나누어진다. 미사에 참석한 신자분들은 각자 가진 초에 이 불빛을 옮겨 받고 간직한 채, 행렬에 맞추어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성당 안 분위기도 어둡다. 성당은 모든 조명을 꺼놓은 채 어둠 속에서 부활의 불빛을 든 신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부님들, 부제님들은 제대에 오르고, 신자분들은 어둠 속에서 각자의 불빛으로 자리를 찾는다. 자리를 찾는 어수선한 소리가 지나고 나면, 침묵과 함께 '부활 찬송가(엑술뗏)'을 부른다. 성당 내부는 어둠 속이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작은 불빛에 의하여 성당이 아름다운 노란빛으로 가득 찬다. 엑술뗏을 부르는 신부님도 이 작은 불빛 덕분에 악보를 보며 성가를 부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희망)에 의지하는 모습. 이 모습이 우리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닐까. 나는 매년 부활 전날 밤 미사 때마다 어둠과 작은 불빛이 드리운 성당을 보며,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곤 한다.


언어가 다르다

한국에 있을 때, 엑술뗏을 배운 적이 있었다. 신학교 시절, 한 학기만 배웠던 교회음악 시간에 선율이 아름다워서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던 라틴어 성가였다. 또한 사제서품을 받고 나면 매년 불러야 하는 성가이기에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2023년의 나는 상황이 달랐다. 나는 프랑스에서 서품을 받고, 사목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의 엑술뗏은 우리나라의 엑술뗏과 멜로디가 달랐고, 가사는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다.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흥미롭기도 했다. 노래 연습은 약 한 달 전부터 했다. 매주 서너 시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했지만, 연습 전 후로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우선시하며 연습했던 부분은 바로 '발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프랑스어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발음들이 몇몇 있다(r, œ, u...). 이 발음들이 멜로디 때문에 뭉개지지 않도록 발음 연습을 중점적으로 했다. 그러고 나서는 노래의 가사를 천천히 꼭꼭 씹어 되새겨 보았다. 가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마음과 기분으로 불러야 하는지를 상상했다.


부활 성야 미사 당일, 노래를 부르다

2023년 4월, 부활 성야 미사 당일이 되었다.

"준비 됐지?"

함께 사목 하던 동료 신부님들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며 걱정 말라고 대답했다. 미사 준비를 마치고, 어둠이 깔린 야외에서 불을 지피며 신자분들을 기다렸다. 신자분들이 모이고, 미사는 제시간에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피어난 작은 불빛들은 아름답게 행렬을 하며 성당 안에 자리를 잡았다. 침묵 속에서 나는 크게 한숨을 몰아쉬고, 마이크 앞에 섰다. 잠시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노란 불빛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순간 '나'를 떠올렸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되어 있었다. 긴장된 내 마음이 어둠과 같아도 여기 작은 불빛들처럼 한줄기 작은 희망이 있다면, 그건 내가 한 번 열심히 불러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엑술뗏을 불렀다.


옅은 떨림을 안고 내 목소리는 선율에 몸을 맡겼다. 부르다 보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 들어서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멜로디의 디테일 보다, 성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보여주자 라는 생각이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바뀌는...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기쁨을 떠올리며 성가를 불렀다. 7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엑술뗏은 마무리되었다.


미사를 마치고 신자분들은 엑술뗏이 좋다고 하셨다. 나도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동시에 노래를 부른다는 건 스스로의 긴장과 싸우는 것이고, 노래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부활 성야 미사에 참석했던 신자분들을 기억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함께 기억하고 싶다.


vigile-pascale.jpg 부활 성야 미사 중 엑술뗏(Exltet) 성가를 부를 때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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