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022년,
프랑스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부여받은 여러 본당 업무 중 하나는 본당 구역 내의 양로원 미사를 집전하는 것이었다. 매주 두 번, 오랜 역사를 가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방문하여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께 안부인사를 드리고 미사도 봉헌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 정신적 손상을 입으신 분들도 계셨지만, 미사를 참석할 때 그분들의 모습은 진지했다. 나는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로서 양로원에 왔지만, 가장 나이가 어리고 삶에 대한 경험이 제일 적었다. 그래서 나는 삶의 수많은 고비들을 겪어오셨을 내 앞의 많은 분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오셨을까 되물으며 미사를 봉헌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이었으므로, 양로원에 입원하신 대부분의 분들이 수녀님들이셨다. 연로하신 수녀님들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단지 지금 여기에 와서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음에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매번 그렇게 말씀하셨다.
가끔은 본당 업무를 하다가 원치 않는 상황이 닥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때도 있었다. 감정적으로 힘들 때 양로원 미사를 드리러 가면, 기뻐하시는 수녀님들의 격려 인사가 나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 주기도 했다.
이별
1년 반이라는 프랑스 본당 사목 기간 동안 딱 두 번, 함께 미사를 드리던 양로원의 수녀님을 떠나보낸 일이 있었다. 수녀님의 미소는 활짝 웃는 영정사진 뒤로 사라졌다. 그분들 중 한 분은 내가 중환자실에 가서 병자성사까지 드렸던 분이었다. '하느님이 거두어 가셨구나'라고 생각하며, 몇 번이라도 함께 미사를 드렸던 일들이 그분에게 작은 추억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장례 미사도 내가 집전했다. 사람이 삶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이 땅을 떠나는 예식, 장례. 하느님께서 잘 거두어 주시길 바랐다. 삶의 끝자락에 믿는 무언가(하느님)가 있다는 것은 삶을 마무리하는데 정말 큰 힘이 된다. "내가 끝까지 함께 있겠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처럼, 나도 스스로의 한계까지 최선을 다해 나의 믿음을 지킬 것이다.
삶의 지혜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연로하신 분들을 보면, 삶의 지혜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곤 했다. 물론, 내가 봐온 사람들 모두가 삶의 지혜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소년처럼 천진난만한 하기만 한 어르신, 돈과 이익에 너무 도가 터버려 욕심에 찬 어르신, 세상에 온갖 불만만 가득한 어르신 등 다양한 어르신도 경험해 보았다. 다양한 어르신이 있기 때문에 삶의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오신 지혜로운 어르신의 모습이 더 소중해 보이는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더 중요시하고, 어려움 앞에 쓰러지지 않고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는 자세. 이런 자세로부터 진정한 삶의 지혜가 나오는 건 아닐까.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나의 마지막은 어떨까. 그건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어떻게 될 것이든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현재의 기쁨, 깨달음, 건강, 아픔 모두 내일을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될 거가 믿는다.
이 글을 빌어 양로원에서 지내는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의 삶은 소중하기에. 그 마지막 순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