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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너머 (5)]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다르다는 것

by 고미사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느낌을 받는다. 같은 사람과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눠도, 청자에 따라서 대화의 해석이 달라진다. 사람은 각자 개인의 역사가 있다. 개인이 겪은 주변의 인물, 사건, 환경의 영향으로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지고 주변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었다

나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처한 상황 안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반드시 타인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에서 수도회 공동체 생활을 했다. 네 명이서 공동체를 이루어 본당의 일을 함께 분담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함께 사는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가는 구조였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한다는 명목 아래 각자의 시간을 내어가며 성심성의 껏 서로를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은 보완되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성격 차이와 삶의 스타일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었다. 이러한 상태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변화되지 않는 상대방의 모습에 자연스레 불편한 마음이 싹텄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하다고 여겨졌던 사소한 일로 인한 다툼이 종종 일어나기 시작했다. 티격태격하는 사춘기 모습 같은 분위기를 겪고 나자,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우리 공동체는 '하느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나마 큰 불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정말 제어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찾아올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마음의 큰 기둥이 바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다름'으로부터 오는 작은 생각의 균열은 일상생활을 하는데 극복해내야 할 커다란 숙제였다.


함께 산다는 건 기적이 아닐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와 잘 맞고 친절해 보이는 사람도 가끔은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한 사람을 믿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 점에서 수도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수도회 생활을 마치고 환속하여 가정을 이룬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수도원 안과 밖의 삶은 크게 달라 보이지만, '공동체 생활'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혼자 자취를 해도 인간관계의 커뮤니티는 늘 곁에 존재한다. 친구들, 학교 선생님들, 직장 동료들 등. 아무리 혼자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모든 공간과 시간에서 혼자가 될 수는 없다. '공동체'는 좋고 싫음을 떠나서 필수불가결한 삶의 요소임이 틀림없다. 내가 수도원 안에서 겪었던 관계의 불편함은 수도원 밖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단순히 나의 문제라고 단정 짓는 것이 옳은가? 나와 생각이 다른 내 옆 사람을 특이하다고 단정 짓는 것이 옳은가? 물론 둘 다 아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다름 안에서 서로 살려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이 노력의 힘은 매 순간 주어지지 않는다. 당일 업무가 많다거나, 개인적으로 피곤한 날에 노력해야 한다면, 프라이팬 위에서 녹아 없어지는 버터조각처럼 인내심은 사라지고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갈등의 해답은 없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것이 답이다. 인간은 결코 강하고 튼튼한 존재가 아니다. 쉽게 무너지고 쉽게 마음 상하는 존재다. 서로의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늘 부드럽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가끔 사랑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어떤 부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는 불편한 장면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사랑은 곧 당신과 잘 살아보겠다는 '용기'이기도 하다. 즉, 사람의 마음은 각자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묘사할 수 없는 신비로 되돌아와 정의된다. 그래서 지금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모든 수도원 공동체, 가정 공동체를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인간 윤리에 어긋난 범죄를 저지르거나 가정폭력, 성 문제,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반적인 사람들의 카테고리 안에 묶을 수는 없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의 갈등은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에서부터 갈등을 빚는다.


작은 바람

사람의 마음은 각자 너무 다르지만,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고 본다. 나는 이기적인 마음보다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내 옆의 사람들과 살아가고자 한다(비록 이미 이런 마음가짐을 끊임없이 유지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걸 알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이타적인 마음을 안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 역사에서 전쟁과 빈부격차는 늘 존재해 왔다. 사랑의 적은 욕심이다. 이기심이다. 결국 사람은 마음에 이끌려 산다. 하나뿐인 내 마음. 소중하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의 마음을 안고 사는 이 한 번의 세상. 이기심보다 이타심으로 기울여 생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걸 안다. 내 옆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기적이자 신비로움이다. 이 기적 같은 삶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되뇐다.


"그래... 다른 사람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나의 마음도 누군가에겐 아주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을 테니까. 살고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할 따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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