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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너머(6)] 가톨릭 초등학교에 가다

프랑스 시골 초등학교

by 고미사

가톨릭 초등학교는 내가 사목 하던 본당 사제관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었다. 점심을 먹고 학교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점심시간 끝자락에 한참 뛰어놀고 있을 때였다. 나는 아이들과 천주교 교리 시간을 가지기 전에 학교 마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자그마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가 생각이 나곤 했다. 학교 쉬는 시간마다 교실 복도로 나와 친구들과 농담하고 이야기하고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던 그때의 즐거운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돋아나곤 했다.


마을마다 다르겠지만, 프랑스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는 참 작다. 내가 간 학교는 1층짜리 건물에 3개 반이 붙어있는 것이 전부다. 각 반마다 담임선생님 한분, 그리고 담임선생님을 도와주시는 도우미 선생님 한 분 더 계신다. 반은 7살 반, 8살 반, 9살 반 이렇게 세 반이 전부였고, 각 반에는 약 10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명랑하고 맑아 보였다. 쉬는 시간에 피구 하는 친구도 있고, 농구하는 친구도 있고, 탁구 치는 친구도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그룹을 형성하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생기 넘치는 초등학교 쉬는 시간에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각자 반으로 들어갔다. 나는 교장선생님을 만나 오늘은 어느 반부터 방문할지 결정했다. 2주에 한 번씩 가는 가톨릭 초등학교 교리는 매번 학교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었다. 방문하는 반 순서도 달랐고, 매번 이야기할 주제도 달랐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가톨릭이 국교라고 알려져 있지만, 법적으로 그렇지 않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하는 '정교분리'가 1905년부터 시행되어 와서, 프랑스에는 국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온 뿌리 깊은 가톨릭 문화가 있는 것이지 국교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도시나 시골 곳곳에 크고 작은 성당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성당이 많지만, 잘 보존되어 있는 성당은 흔치 않다. 왜냐하면, '정교분리'로 인해 국가에 귀속되어버린 많은 성당들이 국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파리의 문화유산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9년 화재 사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복구를 도와주었다. 파리의 모든 공무원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자체적으로 헌금하며 보수금을 마련했다. 이와 반대로, 프랑스 시골의 수많은 쓰러져가는 크고 작은 성당들은 화재에 피해 입은 노트르담 성당만큼이나 쓰러질 위기에 처해 있는대도, 해당 시장이나 공무원, 마을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성당이 관광지로 쓰이지 않고 돈벌이가 되는 건물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많은 동네(Commune)의 시장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목하고 있는 사제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배경을 안고 한 마을의 초등학교에 가톨릭 교리 교육을 하러 간다. 아이들은 보통 자기 자신의 견해를 가지기 쉽지 않다. 대다수의 초등학생들은 집안에서 보고 들은 부모님의 견해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편이 많다. 가톨릭 학교라고 가톨릭 신자들만 들어오는가? 그렇지 않다. 프랑스는 이미 2000년대 전후로, 가톨릭 초등학교에서도 구분 없이 이슬람 신자들이나 무신론자들도 입학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매번 학교에 교리를 하러 갈 때의 내 마음은 두근두근 긴장이 되었다. 나의 첫 번째 교리수업날을 잊을 수 없다. 그날은 아이들에게 성호경(머리와 가슴에 십자성호를 긋는 기도)을 알려주는 날이었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저는 이슬람 신자예요. 가톨릭교 아니니까 안 배워도 되죠? 엄마가 이런 거 배우는 거 싫어해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살짝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그래도 '이런 종교도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그냥 가볍게 듣기만 하렴"이라고 대답해 주고 교리교육을 이어갔다. 그날은 그 친구의 시선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계속 곱씹어 생각해 보니,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종교란, 교육을 통해 자라나기도 하지만, 또 교육 방식에 '강요'가 들어가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어지는 교리 교육 시간에는 내가 전달하고 싶은 핵심내용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되, 결코 강요가 되지 않도록 하게 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전래동화를 읽듯이 설명해 주게 되었고, 내가 말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퀴즈를 내는 형식으로 농담을 섞어가며 진행했다. 마지막에는 질문을 받으며 마무리했는데, 아이들의 질문은 늘 예상 밖이고 순수해서 좋았다. 오히려 나의 머릿속을 정화시키는 시간 같았고, 나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들 같았다.


"왜 신부님은 남자 밖에 없어요? 여자는 왜 될 수 없는 거예요?"

"저는 왼손잡인데 성호경 왼손으로 그으면 안돼요? 왜요?"

"지난주에 우리 고양이가 아파서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하늘나라 갔어요? 하느님이 왜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신 거예요?"

"하느님이 들어주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예요?"


아이들과 학교에서 교리 수업을 한 시간은 2주에 한 시간 정도였다.

많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나눔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도 이 교리교육 시간들을 자그마한 양분으로 삼아 건강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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