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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사 Sep 18. 2024

[어린 시절(10)] 로마 여행의 추억

로마 4대 성당, 바티칸, 폼페이, 나폴리

"댕~ 댕~ 댕~"


2010년 1월 1일,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시 나는 서울 명동대성당 앞에 친한 형과 함께 있었다. 종소리는 추위로 감각을 잃어버린 내 두 귀를 뚫고 강하게 들려왔다. 이 종소리를 듣기 바로 몇 시간 전, 나는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이 종소리는 나의 합격을 축하해 주는 축하의 폭죽 소리와도 같았다. 부모님께도 합격 문자를 보내드리고, 19년 인생 최고로 기쁜 순간이었다. 내가 합격한 곳은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였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마음을 알던 건지, 나와 친했던 형이 나에게 제안을 한 가지 했다. 


"로마로 여행가지 않을래?"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다. 합격하기까지 고생한 나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교황님이 계시는 바티칸에 방문해 보는 것도 큰 경험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기 때문이다. 


"와 너무 좋지! 그런데..."


그런데... 나는 수중에 돈이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이라 형에게 바로 이야기하지는 못하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다.


"엄마, 저 말씀드릴 사항이 있는데요..."    


나는 로마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뿍 담아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나의 바람을 아시고 대뜸 "갔다 와!" 하고 간결 명료하게 답해주셨다. 나는 너무 기뻤다. 그날 바로 친한 형에게 연락하여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여행 일정은 7일, 교황님이 계신 바티칸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로마의 4대 성당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라테라노 대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을 방문하고 시간이 되면 주변의 명소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던 날,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머리 쿠션과 두꺼운 안대도 챙겼다. 5년 전에 갔던 가족 여행 이후로 두 번째로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이동 중에 아주 푹 잘 수 있었다. 10시간 30분이 지나고,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내렸다. 1월 중순의 한파가 매서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다행히도 한국보다는 덜 추웠다. 저녁 무렵에 도착해서 공항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로마 시내에 있는 현지인 민박이었다. 택시를 타고 1시간 정도 이동하니 숙소에 도착했다. 로마 시내의 밤 풍경은 아름다웠다. 까만 하늘에 거의 모든 조명이 노란 가로등 불빛이었다. 노란 불빛 사이로 비치는 콜로세움,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등 말로만 듣던 명소들이 장관을 이뤘다. 명소들과는 다르게 내가 머물 숙소는 허름한 2층집이었다. 다행히 숙소 주인 현지인 분은 매우 친절했다. 로마 시내를 이동하는 방법, 대중교통 이용 방법, 로마 외 도시들로 갈 수 있는 열차 이용 방법 등을 알려주셨다. 첫날밤은 숙소 침대를 보자마자 샤워 후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날씨가 맑았다. 길고 밝은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쳤다. 아침 8시부터 이동할 계획이었기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형 일어나 시간 다 됐어!" 


이제 여행을 시작해야 되는데 몸은 벌써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도 그렇고 형도 마찬가지였다. 양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3일 차 때까지는 로마 시내를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시내 곳곳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중심역인 테르미니 역 앞을 지날 때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둘 다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고 다녔다. 소매치기는 만나지 않았지만 괜스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제일 먼저 로마의 4대 성당을 둘러보았다. 라테라노 대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을 먼저 보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이어서 점심식사는 이탈리아의 피자를 맛보기로 했다. 이탈리아 피자는 아주 얇았다. 피자 아래는 거멓게 탄 듯이 그을린 상태였고, 토핑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맛은 나쁘지 않았다. 오후에는 4대 성당 중 나머지 두 성당을 둘러보기로 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보고 마지막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갔다. 대성당 앞 광장에는 아주 커다란 구유(가톨릭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모시는 아기예수상, 성 요셉상, 성모 마리아 상)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높이는 족히 2m는 넘어 보였다. 성당 내부는 장엄하면서도 여행자들의 소음으로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입구에 들어서서 오른쪽을 보니 '피에타 상(성모 마리아가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고 우는 성상)'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또 수많은 성상들이 눈에 띄었다. 제대 끝 중앙 창문에 비치는 큰 비둘기 스테인드글라스도 너무 멋있었다.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역사가 지닌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 왼편에는 '성 베드로 상'도 있었다. 사람들이 발을 많이 만져서 발만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는 것일까... 성당 안에서 몇 방의 사진을 찍었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사진 삼매경이었다. 다 둘러보고 나가려는 찰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성당 왼편의 한 작은 문으로 모여드는 걸 보았다. "어딜 가는 거지?"라고 마음속으로 묻자마자, 사람들은 위로 올라갔다. 대성당 꼭대기의 '쿠폴라' 돔으로 걸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다음날 쿠폴라에 올라갔다. 올라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길고 좁았다. 올라가면서 놀랐던 점은 올라가는 길 벽에 한글로 된 낙서들이 정말 많이 보였다는 점이다... 앞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면 천천히 올라간 뒤 마주한 쿠폴라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로마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풍경! 로마 여행 중 가장 최고의 순간인 것 같았다. 이어서 성 시스티나 성당도 둘러보고, 바티칸 미술관도 관람했다. 베드로 광장을 나오면서는 산탄젤로 성도 보았다. 


셋째 날에는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팡테옹, 콜로세움 등 일반 명소들을 둘러보았다. 3일 차가 되니, 로마 시내 전체를 걸어 다니며 여행하자고 한 건 잘못된 판단임을 느꼈다. 로마 시내의 바닥은 평평하지 않은 구불구불한 돌길이라서 발목과 발바닥을 피곤하게 했다. 로마 시내는 아름다우면서도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넷째 날에는 로마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결정한 곳은 '폼페이'. 문명이 있었던 곳이지만 주변에 있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문명의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테르미니역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폼페이 화산의 유적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보고 들은 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가끔 너무 또렷한 얼굴이 보여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폼페이 유적지 모습


다섯째, 여섯째 날에는 로마에서 약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남부 해안 '나폴리'로 떠났다. 나폴리의 겨울 바다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 겨울임에도 그리 춥지 않았고, 강한 햇살이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해변가에 거의 다다랐을 때, 버스 안에서 보이는 해변가 마을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마을 집들의 벽이 흰색이고, 바다는 밝은 푸른색을 띠고 있어서 마치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마지막 일곱째 날은 로마에 돌아와서 출국 준비를 했다. 늘 그렇듯, 주말처럼 여행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이 여행 덕분에 대학교 입학 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남은 여행 기록들. 신학교에 입학한 선물로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로마 여행. 나는 이 여행을 잊을 수 없다. 언제쯤 또 다시 한번 가 볼 수 있을까? 이 글을 빌어 지금은 연락이 닿고 있지 않는 같이 여행한 형을 기억해 본다. 그리고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성 베드로 성당 내 제대 모습
성 베드로 대성당 외부의 '천국의 열쇠를 쥔 베드로'상
산탄젤로성의 야간 모습
나폴리 포지타노 해변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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