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병 697기
아는 형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서 공군으로 입대했다. 입대 이틀 전에 집 앞의 허름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입대 당일 아침 일찍 경상남도 진주로 출발했다. 내가 살던 집은 부산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이동 시간은 차량으로 2시간 30분 정도였다. 진주로 가는 길에 한참 동안 내 머리를 만졌다. 까끌까끌하고 어색한 느낌. 몇 시간 뒤면 가족과 헤어지고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에서 먹고 자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와닿지가 않았다. 어느덧 공군 훈련소 팻말이 보이자, 그제야 조금씩 마음이 떨려왔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 빡빡머리 남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훈련소 주변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모님은 든든하게 밥 먹고 들어가야 한다며, 국밥집에 갔다. 입대 전 마지막 가족 식사였다. 나는 잘 먹지 못했다. 평소 국밥이라면 두 그릇도 먹는데 훈련소 앞에서는 목이 막힌 것 같았다. 하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먹고 식당을 나왔다. 입대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입소식 모습은 혼잡 그 자체였다. 이번 공군 697기는 1309명으로, 꽤 많은 인원이라고 했다. 천 삼백 명 가량의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들, 그리고 인원을 통제하는 조교 군인들까지 해서 정말 많은 인원이 연병장(군대 훈련소 내 운동장 명칭)에 모여 있었다. 부모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는 입대 장병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군대 제대 후 들은 이야기인데, 부모님은 내가 입대 장병들 속으로 들어간 후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나는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빨간 모자를 눈이 보이지 않게 푹 눌러쓴 조교들이 차가운 목소리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입대 장병들을 출신 지역별로 분류했고, 입소식을 진행했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고등학교 아침조회 같은 느낌이었다. 멀리 떨어져 계신 부모님들 그룹을 향해 큰 절을 하며 입소식을 마쳤다. 그 많던 부모님들 그룹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빨간 모자 조교들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들이 과장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조교들은 입대 장병들의 신상 명세를 조사하고 바로 사이즈에 맞게 군복을 나누어 주었다. 개인별로 번호를 부여받았고, 그때부터 나는 내 이름 석 자로 불리지 않고, 고유번호로 불렸다. 번호로 불리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훈련소에서의 첫날은 빠르게 지나갔다. 군대 밥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고 규칙만 잘 따르면 조교들도 크게 뭐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단지 '첫날'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었음을 당시에는 몰랐다. 밤이 되어 생활관(내무반)을 배정받고, 11명의 훈련소 생활관 동기들이 생겼다. 우리는 한 두 살 차이 나는 비슷한 나이들이었고, 군대라는 이 시련을 함께하는데 서로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첫날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나는 잠이 들었고 꿈을 꿨다. 꿈속에서 부모님이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소리를 질렀고 마음이 아팠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군대 기상나팔 소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부모님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훈련소 둘째 날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빨간 모자 조교들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