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포대에서 근무하다
"훈련병!"
빨간 모자 교관의 거친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예, 35번 훈련병 OOO입니다!"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되나! 더 크게!"
"예!!! 35번 훈련병 OOO입니다!!!"
6주의 훈련소 생활이 끝난 나의 목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쉬어서 제 목소리를 잃은 지 오래였고, 부모님과 통화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 때도 내 목소리는 쉬어있었다. 돌아보면,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군대였지만, 훈련소에서 깨달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단 것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 받은 초코파이 하나가 얼마나 달콤하던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새삼 공감하게 되었다. 입대 전에는 한 트럭으로 줘도 안 먹었을 뻑뻑한 건빵도 설탕을 가득 뿌린 듯, 훈련소에서는 엄청 달콤했다. 작은 것의 소중함,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내가 깨달은 것이다.
화생방, 사격, 유격훈련 등 말로만 듣던 것들도 다 몸으로 체험하고 나니, 주변의 형들, 지인분들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훈련소 마지막 날 재어본 내 몸무게는 입대일에 잰 몸무게 보다 약 12kg 빠져 있었다. 살을 빼기 위해 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훈련소 생활만 했는데 12kg가 훌쩍 빠졌다니, 나 스스로도 놀랐다. 그렇게 나는 84kg로 입대해서 6주 만에 72kg가 되었다. 공군은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점수를 받는다. 생활 점수와 시험 점수(영어, 수학, 사고력 분야의 시험)를 합산하여 본인의 특기(보직)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 학교처럼 점수에 따라 등수도 매긴다. 선택하는 순서는 1등부터다.
나는 1300여 명 중에 400등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특기는 이미 나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병사들이 가져갔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원하는 세 가지 특기를 써냈다. 그 결과는 내가 쓰지도 않은 '방공포병'이라는 특기였다. 공군에 '포병'이라고? 어감만 들어도 힘들 것 같았다...
훈련을 다 마치고 나서는 '방공포병학교'로 이동하여 3주간의 수업을 받았다. 미사일, 발사대, 레이더 등등, 필요한 교육들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다행히 내가 갈 부대는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산 꼭대기라는 것이다. 차 타고 산을 내려오는데 40분, 산을 내려오면 15분이면 집에 갈 수 있었다.
처음 자대에 가던 날이 떠오른다.
"OOOO부대로 배치받은 이 병들 누구야! 나와!"
"예, 이병 OOO" X4
나 말고도 3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우리는 총 네 명이었다. 그 순간 처음 봤지만 우리는 함께 낯선 곳으로 간다는 마음에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어느 역에 도착하니, 간부가 역에서 우리를 픽업해 작은 트럭에 타게 했다. 우리는 더플백을 앞뒤로 메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지만 조용히 있어야 했다. 작은 트럭은 산길을 올라가며 크게 덜컹거렸다. 40분 정도 지나자, 군대 철문이 보였다. 헌병들, 그리고 부대 내부의 모습들. 상병들, 병장들도 보였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졸아드는 느낌이었다. 트럭에서 내려 곧바로 주임원사실로 가서 면담을 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잘 적응하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곧이어 생활관에 들어가서 만난 맞선임과의 만남. 다행히 그는 친절했다. 본인이 제대하는 날까지, 그는 착했다. 나는 선한 맞선임을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또 나의 동기들을 만난 것도 아주 큰 행운이었다. 동기들 모두 선했다. 우리는 모두 동갑이었고, 대학생들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아주 똑똑하고 착한 친구들이었다. 나는 이 세 명의 동기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다. 한 친구는 선, 후임들과 밀당을 하며 관계가 매우 좋았다. 한 친구는 츤데레처럼 앞에서는 까칠하지만, 안 보일 때 잘 챙겨주는 호감 가는 스타일이었고, 세 번째 친구는 엄청 똑똑하고 공부를 좋아하며 아주 예의 바른 친구였다. 그들에 비해 나는... 그냥 애매하게 진지하고 장난기 있던 포지션이었던 것 같다. 이 세 명의 동기들은 매일 밤, 연등 신청(밤에 공부하는 시간을 요청하는 것)을 하고 공부를 했다. 나는 그 모습에 감탄을 했다.
"와 공부에 대한 열정이 군대에서도 이어지다니 괴물 같은 녀석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도 어느 날 연등 신청을 했다. 내 세 동기들과 함께 나란히 공부를 했다. 나는 무슨 공부를 할까 하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떠올랐다. 바로 '국사'와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다. 역사공부로 방향을 잡고 무심코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이라는 스트레스 없이 나 혼자 만들어가는 공부는 전혀 스트레스가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라는 걸 인터넷에서 보았다. 한번 볼까..? 호기심에 생각했다가 신청을 했고 덜컥 합격을 했다. 동기들 덕분에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정말 내 인생 첫 번째로 '즐거운 공부'였다. 군대에서의 스트레스도 공부로 풀었다. 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 연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