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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사 Oct 09. 2024

[20대 시절(3)] 군대 종교참석

천주교 기도 모임

'똑 똑 똑'


"상병 OOO, 들어가도 좋습니까?"


나는 포대장님 집무실에 조심스레 들어갔다. 포대장님은 나와 같이 천주교 신자였고, 내가 천주교 신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나를 한 번 보자고 집무실로 부르셨는데, 나는 그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포대장님이 따로 부른 경우는 처음이라서 긴장하고 있었지만, 포대장님은 종교참석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내가 복무한 부대는 인원이 10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산 꼭대기의 한 개 대대 규모의 '포대'였다. 그래서 종교참석 기관은 낡은 개신교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뿐이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성당에 가지 못하는 것은 큰 아쉬움이었다. 몇 차례 개신교 예배를 가 보았지만, 영성체(예수님의 몸이라고 믿는 얇은 빵 조각을 모시는 것)를 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컸다. 예배 후 나누어 먹는 피자도 잠깐의 즐거움뿐이었다. 이런 나의 상황을 잘 아셨던 건지, 포대장님은 두 달에 한 번씩 천주교 종교참석 인원을 추려서 나갔다 오라고 제안을 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매 주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성당에 갈 수 있다는 건 나에게 기쁜 소식이었다! 이어서 나는 포대원들 중 천주교 신자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100명 중 5명의 병사가 천주교 신자였다(선임 1명, 후임 4명). 천주교 종교참석이 가능한 인원은 나를 포함해서 총 6명이었다. 10%도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신기하게도 천주교 신자 다섯 명은 모두 부대 내에서 조용하고 사고 없고 학벌이 좋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이미지가 좋아서 정기적으로 부대 밖으로 나가는 특혜를 받게 되어도 주변에서 특별히 눈총을 주지 않았다. 첫 번째 종교참석 외출을 다녀오고 난 뒤, 나는 정말 만족했지만, 뭔가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로 '기도 모임'을 여는 것이다. 매 주말마다 1시간 정도 모여서 선후임간의 어려운 점이 있으면 도와주고, 서로 어려운 일을 함께 기도해 주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모임 시간만큼은 선후임을 떠나 편한 시간이 되길 바랐다. 또한 '공소예절'(천주교에는 매주 일요일에 미사 참석을 못하면, 대체해서 하는 기도 '공소예절'이라는 것이 있다)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똑 똑 똑'  


나는 두 번째로 포대장님께 찾아가 이 아이디어를 말씀드렸다. 포대장님께서 승낙해 주셨고, 나는 다섯 명의 천주교 병사들과 함께 매주 기도 모임을 가졌다. 휴가를 간 병사들이 있으면 함께 기도해 주고, 제대하고 나서도 함께 기도하고 기억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 내가 전역할 때까지 이 모임은 지속되었고, 내 기억 속에 이 모임은 군생활 중 좋은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다섯 명의 기도 동료들에게 안부를 묻고,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우리 기도 모임 멤버 다섯 명에게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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