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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사 Oct 16. 2024

[20대 시절(4)] 수도원에 돌아오다

크리스마스 선물

"필승, 병장 OOO, 2012년 12월 24일 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전역을 했다.

공군에서의 24개월이라는 시간은 빠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흘러가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라는 말로 자주 조언해 주던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한반도가 새겨진 전역모를 쓰고 2년 동안 매일 닦던 군화를 마지막으로 신고 부대를 나왔다. 전역 후에 마시는 숨은 더 차갑고 청량하게 느껴졌다. 부대 정문을 나온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전역 당일 바로 돌아가야 하는 곳이 있었다. 집도 아니고 다니던 대학도 아니다. 바로 내가 살던 수도원이다. 기차를 타고 4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있는 수도원. 천주교 신부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들어간 그 수도원으로 다시 간다. 


꿈을 위해 수도원으로 가는 길. 설렜다. 2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을지 모르는 수도원 모습을 상상하며 기차를 탔다. 최근 2년간 군대 생활에 더 절여져 있었지만 내 마음은 항상 수도원에 머물러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날에 전역한 나는 홀로 살얼음 띤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며 침묵 속에 기차 여행을 했다. 4시간은 금방 지났고, 마을버스로 갈아탄 뒤,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수도원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수사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집밥 같은 수도원 식사를 하니 군대를 전역한 사실이 와닿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군대 에피소드들을 수사님들과 나누고, 경당에 가서 함께 성탄 미사 준비를 했다. 저녁 미사 전에는 부모님께 안부 전화도 잊지 않고 드렸다. 전역 잘하고 수도원에 잘 도착했다고. 


"그래 고생했어. 다행이다. 미사 잘하고, 곧 봐".


어머니는 특유의 여유로운 말투로 전화를 받으셨다. 나는 그 여유로운 말투 안에서 어머니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미사를 잘 마치고 수사님들과 저녁 만찬을 함께 했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날은 오랜만에 함께하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조금씩 마셨다. 그렇게 전역한 날의 밤이 대화와 웃음으로 저물어 갔다.


"휴가 잘 다녀오세요, 형제들"


다음 날, 수도원에서 군대 전역한 형제들에게 5일 휴가를 주었다. 갑자기 5일씩이나 휴가가 생겨서 너무 기뼜다.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자 부모님도 즐거워하셨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크나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본가로 갔다. 우리 집 마당, 우리 집 강아지, 우리 집 밥, 우리 집 분위기 등등 반가운 것들 투성이었다.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하고 부드러운 백숙을 먹고 가족 모두와 함께 또 이야기 꽃을 피웠다. 너무도 평범한 한 가정의 모습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렇게 5일간의 소중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수도원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전화할게요. 건강하게 잘 지낼게요!"


이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다시 수도원으로 갔다. 기차역에서 내가 기차 좌석에 앉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뒤돌아 서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소중히 아끼는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수도원 생활은 당시 2년 차가 되는 시점이었다. 21살의 나. 군대도 전역하고 수도원의 삶을 이어 살아가려는 나에게 부모님의 사랑은 늘 큰 힘과 용기가 되어주었다. 당시 2012년 크리스마스에도 다시 한번 느꼈던 이 소중함은 오늘날까지도 내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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