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에서 아메리카로

by 이우식

커피가 대중적인 음료로 변모한 것은 메카에서 첫 번째 카페가 오픈하면서부터다. 카베 카네스로 알려진 이 카페는 원래 종교적 모임 장소였지만, 이내 사교장이 되었다. 커피가 대중적인 음료로 퍼지면서 독실한 무슬림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커피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 "카와(Kahwa)"는 와인을 뜻하는 여러 단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체리 껍질을 벗기는 과정에서 체리의 과육을 발효시켜 강력한 술을 만들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꾸란이 와인이나 취하게 하는 음료를 금지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무슬림들은 커피가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성제라고 주장하며 커피를 지지했다.

이러한 커피에 대한 논쟁은 1511년 메카에서 표면화되었다. 메카의 주지사인 카이르 베그는 사람들이 밤 기도를 준비하면서 모스크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자 그들을 모스크에서 쫓아내고 모든 커피숍을 닫으라고 명령했다. 또한, 페르시아 의사인 하키마니 형제가 커피를 건강에 해로운 혼합물이라고 비난하면서 논쟁을 격화시켰다.

당시에는 커피를 우울증의 대중적인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찾아올 환자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여 커피를 금지하기를 원했다. 그에 반해 메카의 무프티는 커피를 옹호했다. 이 같은 논쟁은 이집트의 술탄이 개입하여 해결되었다. 1512년 카이르 베그가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술탄은 그를 죽였고, 커피는 메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무렵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 빠르게 퍼졌다. 히자즈(Hijaz)에서부터 시작하여 1517년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커피가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고, 1530년에는 다마스쿠스에 소개되었다. 1554년 이스탄불에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커피 하우스가 들어오면서 종교적으로 영감을 받은 폭동이 일어나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비판을 견뎌내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진 것은 물론 아라비아 반도에서 동쪽으로도 전파되었다. 무슬림 상인과 여행자들은 1505년에 스리랑카(실론)에 커피를 소개했다. 그렇지만 체리나 나무는 어디에도 전파되지 않았다. 예멘의 모카항은 수세기 동안 국제적으로 판매되는 커피의 유일한 관문이었다. 오스만 통치자의 엄격한 규제를 받은 커피 원두는 발아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로스팅하지 않고는 예멘을 떠나는 것이 금지되었다. 커피는 오스만 무역로를 통해 유럽으로 빠르게 퍼졌고, 초콜릿과 유사하기 때문에 모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1610년에 등장한 차(Tea)보다 몇 년 뒤인 1615년에 커피를 유럽에 소개했다. 커피가 도입되자 메카에서처럼 이탈리아에서도 그 같은 논란이 일어났다. 성직자들은 이 새로운 음료에 의심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반응하며 커피를 금지하고 사탄적이라고 낙인찍을 것을 강요했다. 그들은 커피를 "사탄의 쓴 발명품(Bitter invention of Satan)”이라고 불렀다.

이런 주장의 일부는 커피가 터키와 동양의 신비로운 땅인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래되었고, 이국적이고 취하게 하는 술이라는 평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직자들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커피는 "이슬람, 이교도, 성적 변태의 냄새"를 풍긴다고 설파했다. 그들에게 커피는 성찬례에서 사용되는 와인의 대용품처럼 의심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논쟁은 교황 클레멘트 8세의 개입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교황은 커피를 금지해 달라는 성직자들의 요청에 직접 음료를 맛보기로 했다. 이후 교황은 "이 사탄의 음료는 너무 맛있어서 이교도에게만 독점적으로 주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악마를 속여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라면서 커피가 무슬림 음료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음료라고 선언했다.

커피는 악마의 음료 또는 악마의 잔으로 알려졌지만, 교황의 축복 덕분에 유럽 전역에 카페가 빠르게 생겨났다. 유럽 최초의 카페는 1683년 베니스에서 문을 열었다. 1720년에 설립된 피아자 산 마르코의 유명한 플로리안 카페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기도 하다.

커피는 영국까지 뻗어갔고 1650년 옥스퍼드에 제이콥이라는 사람이 카페를 열었다. 소울스 컬리지 근처에 문을 연 이 커피 클럽은 이후 왕립학회가 되었다. 런던의 첫 커피숍은 1652년에 콘힐 지역의 성 마이클스 길(St. Michael’s Alley) 가에 생겼다. 이후 많은 커피하우스가 생겼지만, 1666년 런던 대화재로 대부분의 커피점들이 불타 없어졌다. 런던은 복구와 재건에 힘썼고 템즈 강변을 중심으로 다시 런던 시내에 2,000여 개의 카페들이 들어섰다.

이 무렵 보험업계를 떠들썩하게 할 인물이 등장한다. 에드워드 로이드)는 196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로이드 커피하우스를 오픈한다. 그가 경영한 커피하우스는 타워스트리트는 세관, 해군부, 수로 안내소가 있는 템즈강 선착장과 가까워서 선원, 선주, 화주 등이 쉽게 드나들었고, 해운업자, 해상보험 인수자, 상인, 은행가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보험회사(시장)는 바로 이 커피하우스에서 로이드의 고객이 보험에 가입한 선박 목록을 작성하면서 설립되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커피체리와 나무는 아랍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커피가 온 유럽에 전파되는 동안 오스만 튀르크와 예멘의 술탄은 커피의 비밀을 지키려고 생 커피 열매나 생두를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금지했다. 오직 볶은 형태로만 커피를 운송할 수 있었다. 커피는 예멘을 떠나기 전에 로스팅되었지만, 일부 종자가 이곳저곳으로 밀수되었다.

예멘 커피 생두는 인도로 갔는데, 이로써 인도는 에티오피아와 예멘에 이어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 세 번째 국가가 되었다. 메카 순례를 마친 이슬람 순례자 바바 부단이 예멘에서 7개의 커피콩을 수염 속에 숨겨서 몰래 들여와 인도 남서부 찬드라드로나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이 커피를 심었다. 이 산은 그의 이름을 따서 바바 부단 기리로 불리며, 인도 커피의 본산이 되었다.


<그림 1> 커피의 추정 연대별 이동경로

커피이동경로.png

출처 : Ferwerda(1976), 저자 수정

주) 실선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아라비카의 이동 경로, 점선은 콩고에서 유래된 로부스타 확산 경로


17세기에 커피숍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유럽 열강은 각자의 식민지에 커피 농장을 세우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가장 앞선 곳은 네덜란드였다. 그들은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예멘에서 커피나무를 밀수해 자바로 보냈다. 스리랑카에서도 대규모 재배가 이루어졌고, 자바에서 채취한 커피나무 샘플이 암스테르담으로 보내졌다. 네덜란드는 식물원에서 묘목을 재배하여 유럽 전역에 퍼트려 세계가 커피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자바 커피는 아시아 커피의 원형이 되었고, 모카커피와 함께 오랫동안 커피의 대명사로 불렸다.

프랑스는 1700년대에 보병 대위를 통해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에서 작은 커피나무 한 그루를 키워 이후에 아메리카로 전했다. 1714년, 암스테르담 시장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에게 어린 커피나무를 선물로 주었다. 왕은 파리의 왕립 식물원에 심으라고 명령했고, 1723년에 젊은 해군 장교인 가브리엘 드 클리외는 왕의 나무에서 묘목을 얻었다. 거친 바다와 해적의 공격, 심지어 묘목을 파괴하려는 방해공작원까지 포함된 힘든 항해에도 불구하고 그는 커피나무를 마르티니크 섬으로 안전하게 운반했다.

당시 이 섬은 프랑스의 설탕 생산을 위한 식민지였고, 주민들은 섬의 전역에 커피나무를 심었다. 마르티니크 섬에 식재된 한 그루의 커피나무는 50년 만에 1,900만 그루 이상으로 늘어났다. 1780년대에는 당시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유럽 식민지였던 프랑스의 아이티 식민지가 전 세계 커피의 절반을 공급했다.

프랑스 제국에 대한 커피 무역의 중요성과 아이티의 커피 농장의 끔찍한 노동 여건은 1790년대 아이티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아이티 혁명에 앞선 몇 년 동안 프랑스령 카리브해의 커피나무가 중앙아메리카 본토로 옮겨져 멕시코, 코스타리카, 니카라과에 심어졌다. 커피나무가 중남미 지역으로 전해진 것은 바로 이 한 그루의 나무에서 시작되었다.

전설적으로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는 1100년 대에 상업적으로 재배되었고, 수 백 년 간의 통제에 놓였다. 1600년 대에 이르러 족쇄가 풀리듯 타 지역으로 전파된 커피나무는 불과 200여 년 만에 세계적으로 커피벨트에 속한 지역으로 퍼졌다. 오늘날 커피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식품이자 문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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