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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섬 May 26. 2022

김밥

그때 그 시절 꼼꼼한 엄마표 김밥이 그리워.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동네 김밥집을 지나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노래에 홀린 입은 누가 보든지 말든지 저 혼자 흥얼거리고 있었다.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언제 들어도 카랑카랑한 저 목소리는 귀에 친숙하다. 19년이 지났는데도 길거리에서 옛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다니 신기했다. 그것도 김밥집에서 김밥 노래를.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오랜만에 ‘김밥이나 만들어 먹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냉장고부터 뒤지며, 김밥 재료가 될만한 것들을 찾았다. 준비된 재료들을 가지런히 놓고 보니 시작도 전에 '후유'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직도 칼질이 서툰 나에게는 김밥을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순간 곧 팔순이 되시는 엄마 생각이 났다.  




딸 부잣집의 셋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아들을 바라던 외할아버지의 바람을 꺾어버린 죄로 어려서부터 남의 집 일을 하면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고 한다. 타고 난 일복도 모자란 지, 결혼 후 엄마의 시집살이도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한 번쯤은 부당하다고 항변할 수 있는 일조차 엄마에게는 흔한 일상의 반복이 되어 버렸다. 일을 해야만 먹고사는 팔자를 타고난 것처럼 엄마는 평생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     

초등 학교 소풍 가는 날 새벽, 밖은 아직 컴컴한데 옆에 있어야 할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결에 밖으로 나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쪽문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리고 몰래 부엌을 들여다봤다. 엄마는 무언가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딸의 소풍을 위해 김밥을 준비하는 엄마의 긴 여정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보는 사람은 누구나 속이 터질 만큼 느린 손놀림 탓에 엄마는 다른 사람보다 일하는 시간이 두 배나 걸렸다. 걱정이 많은 엄마는 김밥을 싸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분명 한잠도 못 잤을 텐데. 여기저기 흩어진 재료의 잔상들이 엄마의 조급함을 대신한다. 그래도 나는 신이 나서 쾌재를 불렀다. 일에 치여 항상 바쁜 엄마가 나를 위해 김밥을 싸는 날이기 때문이다. 날이 밝아오도록 엄마는 썰고, 볶고, 마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의 바쁜 움직임에도 행여 지각을 할까 나는 애가 말랐다. 불안한 내 마음은 외면당한 채 등교 시간이 다 되어서야 서서히 김밥이 제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늦을까 봐 가슴은 졸였지만 그래도 두둑해진 가방 안의 김밥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 뿌듯함을 가방에 넣고 소풍을 갔다.     


점심시간, 친구들이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난 재빠르게 친구들의 김밥과 내 김밥을 비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금세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옆에 앉은 친구의 김밥은 크기가 주먹만 했다. 각종 채소에 소고기까지 들어 있었다. 또 다른 친구의 김밥은 앙증맞게 작아서 꼭 땅꼬마 같았다. 하지만 그 김밥에도 소고기와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맞은편 친구의 도시락에는 김밥뿐만 아니라 비싼 과일도 보였다. 친구들의 김밥을 보고 내 김밥을 보니 그저 평범하다 못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김밥을 싸려고 밤잠을 설치며 새벽부터 동이 틀 때까지 많은 시간을 내어 준 엄마의 노력은 까마득히 잊혔다. 배고픔도 잠시 나는 내 도시락이 창피했고 친구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것을 처음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엄마가 김밥을 말 때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며 한두 개 집어 먹었을 때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엄마표 김밥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김밥과 비교되는 순간, 옹졸한 심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혀끝의 고소함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간신히 요기만 했고, 급하게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그날 엄마는 왜 김밥을 남겼냐고, 종일 배고팠겠다고 걱정만 한가득 늘어놓다 피곤한 몸에 이끌려 하루의 문을 닫았다.       


엄마의 잠과 바꾼 김밥을 남겨오면서 부유하지 못한 환경을 탓했고, 화려한 도시락을 싸 온 친구의 태생을 부러워했다. 어쩌면 엄마는 속 좁아 툴툴거리는 내 마음의 소리를 이미 오래전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엄마는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무너졌을까? 아들의 말과 행동이 서운할 때면 어린 시절 내가 엄마한테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게 된다. 나도 그때 그랬구나, 내 아들이 나를 닮아 저렇구나, 그때 엄마의 마음도 이랬을까? 이제야 나를 키워주신 엄마의 심정도 또 자식의 입장도 조금은 알 듯하다.
엄마가 싸 준 추억의 김밥이 그리워서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는 네가 만든 김밥이 더 맛있어."
엄마는 어느 순간 당신의 솜씨를 거두기로 작정한 것 같다.    




가끔 허기가 지면 엄마가 싸주던 밍밍하고 담백한 엄마표 김밥이 생각난다. 기억의 창고에 저장된 엄마표 꼼꼼 김밥이 그립다. 달걀지단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고 완벽하게 부치는 엄마의 꼼꼼한 성품 탓에 엄마표 김밥은 잡생각조차 들어갈 틈이 없었다. 재료는 풍성하지 않았지만, 참기름 향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아주 꼼꼼하게 힘을 주어 만든 엄마만의 김밥이 얼마나 정성스러운 김밥이었는지. 김밥 속에 항상 바빴던 엄마의 삶이 녹아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어쩌면 나는 김밥을 싸 주던 젊고 풋풋했던 엄마의 옛 모습이 보고 싶고, 하루하루 늙어가는 엄마의 세월을 붙잡고 싶어서 그때의 그 초라하고 꼼꼼한 김밥이 다시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자식한테 뭘 해달라고 하면 왜 이렇게 미안한지 모르겠어. 난 너한테 뭐 줄 때 되게 좋았거든. 지금도 네가 뭐 해달라고 하면 아깝지가 않아. 근데 왜 나는 너한테 뭐 해달라는 게 미안하냐?"
[드라마 - 현재는 아름다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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