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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섬 Jul 15. 2022

인연

관계 속에서  나는......

법정 스님은 '진정한 인연과 스쳐 가는 인연을 구분하여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고 말한다.

스쳐 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리고 진정한 인연은 최선을 다하되,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 된다고. 함부로 맺은 인연에게 받은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은 벌이라고 했다.




나는 무교이지만 법정 스님의 인연에 대한 말씀은 늘 가슴에 와닿는다. 살다 보면 어렴풋이 생각나고 잊은 듯하면 한 번씩 찾아 읽어본다. 태어남과 동시에 저절로 맺어지는 부모 형제를 시작으로 남편, 아들, 시댁 식구들 그리고 지인들까지. 머릿속에 맴도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스쳐 가는 인연일지 진정한 인연인지는 그 관계가 끝나봐야 알 수 있었다.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진행형일 때는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서 불필요한 관계에 집착하고, 시간을 뺏기고,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와 씨름하며 스스로 모진 생채기를 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실한 사람이다. 매 순간을 진실로 대했지만, 사람들은 자기만의 선이 있었다.

곧이곧대로인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의미 없이 차 한 잔 나누는 사람들까지 일일이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한 동네 살았던 아들 친구 엄마가 바삐 지나가며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 사람은 지나가는 말로 인사치레를 했을 뿐인데 나는 연락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남편은 이런 날 보며 너무 순진하다고 했지만, 말을 내뱉으면 실행으로 옮겨야 하는 나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은 진실하지 못한 거고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인사치레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나이만 먹은 어리숙한 내가 피곤한 상대가 되는 것이다. 그런 관계를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은 진실 문제가 아닌 서로 다르다는 차이에서 나온 착오였다. 그래서 나와 잘 맞는 사람과의 인연이 절실하고 그런 인연이 소중했으며 더욱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엔 MBTI를 묻는다지만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혈액형부터 물었다. 초등 교과서를 보면 '성격과 혈액형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온다'는 교사 지인의 말을 듣고 일말의 신빙성을 믿어서이다.


남편과 나는 교집합이 거의 없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물론 우리의 양육자와 생활환경이 너무 달랐으니 오죽하겠나 싶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부부의 고뇌가 아닐까.

다행히 앞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맞아 20년을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지지고 볶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수없이 싸우다 결혼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평온을 찾았다.


좋은 게 좋다고 뒤끝 없는 척했던 남편의 성격과 끝까지 파고들어 해결하는 내 성격이 맞을 리가 없었다. 다툼이 시작되면 뭐 하나 제대로 끝을 맺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니 답답해서 죽을 맛이었다. 그때 남편의 혈액형이 'O형이라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혈액형은 나와 맞지 않구나. 그때부터 O형인 사람들을 경계했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혈액형부터 물어보며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를 판가름해서 선입견을 앞세웠다. 하지만 그것도 내 심리상태에 따른 어처구니없는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각자 살아온 삶이 있으니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지는 못했지만, 내가 조금씩 바뀌는 척이라도 하니 오히려 O형들과 잘 맞기도 했다. 그렇게 O형들과의 인연도 쌓게 되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족집게다. 20년간 복작복작 살았던 우리 부부도 어느새 서로에게 흡수되어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그냥 넘어가고 가끔 남편은 속 좁게 안 하던 짓을 하며 꽁생원이 된다.  



틱낫한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 죽으면, 이생에서 만났던 영혼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이는데 그들은 삶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돌아다보며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는다고 한다. 자신들이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삶은 하나의 즐거운 놀이이며, 지구라는 별에 잠시 여행을 온 것인데도 그것을 잊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착하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너무 심각했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한 번쯤 들어보는 말이라서 대수롭지 않지만, 또 심란할 때는 유심히 고민하게 되는 글이다. 어쩌면 이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별거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쁨도 슬픔도 쓸쓸함도 연민도 외로움도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다. 혼자일 때는 몰랐던 감정도 둘이 되거나, 다시 하나가 되었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새로운 감정을 경험한다. 내가 맺은 수많은 인연 속에서 내 안에 감정 무지개색이 펼쳐진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감정의 색이 바뀐다. 희한하게 한 사람에게 굳어져 버린 색은 항상 그 사람을 만나면 그대로 돌출된다. 그래서 처음 인연을 맺을 때 어떤 색이 나올지 기대가 되지만 두렵기도 하다. 좋은 색이 아니라면 그 색이 굳어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감정은 쉽게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부부가 백년해로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주례사에서도 거의 들을 수 없다. 부부의 인연보다 자기 행복이 더 우선시되는 시대가 열렸다. 부부도 맞지 않으면 서로의 남은 인생을 위해 나이와 상관없이 각자의 길을 간다. 연인들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3년이라고 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이 헤어진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마음이다. 한 사람은 헤어짐을 받아들이는데 다른 한 사람은 인정을 못 하고 집착한다.


헤어진 사람을 잊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아마도 떠난 연인보다 더 좋은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일 것이다. 물론 기억은 남겠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잊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묻힌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진정한 인연이라고 착각하여 붙잡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안쓰럽다.


이제는 누구보다 자기 행복이 우선이다. 이것은 이래야 하고 저것은 저래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오로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나를 챙겨야 내 가족들도 행복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연은 부모 자식밖에 없다. 나머지는 내가 거르고 선택해서 만나는 인연이다.

이생을 떠날 때쯤 머릿속에 스쳐 가는 인연 중에 이곳을 떠나기 싫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이 내려 준 인연이 아닐까.




내 주위에 어떤 인연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 잘 살다 간다'라고 느낄 만큼 선물 같은 사람이 누구일까.

'너 때문에 아주 잘 살다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날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는 사람은.

바쁘고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 옆에서 지켜줬던 사람은 누구일까.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애 이 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인연 -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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