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 따뜻한 감성이 흐르는Ed Sheeran(에드 시런)의 Photograph(포토그래프)라는 음악이 BGM으로 깔리며,'사진이 가진 의미란?'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오래 전의 어느 방송을 보았다.
“나에게 사진이란추억에 대한 간직이에요, 그때 이랬지, 내가 이랬어. 그런 기분을 느끼고 사진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요. 마음이 가라앉지도 않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사진을 자주 찍습니다.”
“타임머신,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잖아요. 사진을 보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그때 느꼈던 기분, 공기, 감정, 이런 것들까지 다 떠오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기분 좋은 거, 아기 있으니까 사진 많이 찍는데 항상 아기 사진 보면 기분이 좋거든요. 우리 강아지들 사진 봐도 기분이 좋고요.”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발자국, 습관 같은 것, 세월의 흔적, 인생, 일기, 멈춰있는 시간이에요.”
......
사진이 가진 의미란?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저 원래 사진 같은 거 잘 안 찍어요- 하면서 우선 도망부터 치고 본다. 어쩌면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찍힌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이상했다. 삐쳐있는 사람처럼 뚱한 표정, 더 부해 보이는 몸, 몸 둘 바를 몰라 어색해했던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포즈, 세련미와 자연미는 눈 씻고 찾아봐도 전혀 없었다. 찍기 싫어하는 마음만 사진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처럼.
‘웃어야 되는데, 입 꼬리를 올려볼까.’
입은 억지로 치즈, 눈은 똑바로 정중앙을 주시하면서 어색한 웃음 만발.
'기분은 나쁘지 않아, 이번에는 예쁘게 나올 거야.’ 자기 최면.
카메라 앞에 서면 바짝 긴장한 나를 발견한다. 분명 머리와 마음은 웃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실패다. 찍은 사진을 보니 옆 사람과 은근히 비교가 되었다. 실물보다 한참 못나 보였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고민했던 어정쩡한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창피한 생각도 들고, 나 자신도 모르게 내 기분이 상해 보였다. 사진을 보고 괜한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가장 큰 위로가 있다면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낫다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닐까.
어느 날 지인과 카페에 갔다. 우리가 주문한 딸기 케이크, 그리고 튤립과 나뭇잎 모양의 라테아트가 노련하게 그려진 카페라테가 나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커피 잔을 들고 후후 불며 한 모금 마셨다.
“자기야, 사진도 안 찍고 그렇게 먹어 버리면 어떡해? 그건 매너인데.”
핸드폰을 꺼내 들고 각도를 맞추느라 일어서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움직이고 있던 지인을 차마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아, 그래요? 몰랐어요 언니, 지금이라도 찍으실래요?”
무안함과 미안함이 교차해서 얼른 커피 잔을 내려놨다.
“아니야, 어차피 먹었는데 뭐, 할 수 없지. 근데 자기야, 뭐든 기념으로 남겨둬야지.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자기도 더 살아봐.언젠가 내 말이 떠오를 때가 있을 거야”
“아, 네. 그렇겠네요. 전 원래 사진을 안 찍어서요.”
그날부터 약속이 생겨 카페나 식당을 가게 되면 나는 상대가 사진을 찍는지부터살피고 사람들을 배려하게 되었다. 어쩌면 똑같은 지적을 두 번은 듣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음식이 나오면 나도 자연스레 핸드폰을 꺼내 들고 각도를 맞춰가며 그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 번씩 지인들의 카톡 프로필을 쭉 훑어볼 때가 있다. 연락은 안 해도 프로필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금의 기분과 상태가 어떤지 조금은 가늠이 되는 듯하다. 연세가 있으시거나 평소에 몸이 좋지 않았던 지인들의 근황을 사진으로나마 보게 되면 안도의 한숨도 흘러나왔다. 나 살기 바빠서 손가락 하나 누를 시간도 없었다는 뻔한 변명이 더 편할 만큼 연락을 지지리도 하지 않는 나지만, 마음속에 담아두는 몇몇의 사람들은 존재했기에 늘 사진으로 안부를 대신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내 프로필을 보면서 나처럼 안도의 한숨을 쉰다거나, 잠시 옛 추억에 빠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진을 수시로 바꿔주는 것도 '난 무탈하게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는 뜻을 내포하는 무언의 수신호로 그들에 대한 나의 배려라는 생각도 든다. 프로필을 바꾸러 들어가면 그동안 올려놓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보면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옛 시간들과 마주친다. 그때의 분위기와 상황도 떠올리면서 잠시 회상에 빠진다. 어떤 사진에는 감정과 냄새도 배어있다. '나'라는 나무의 나이테에는 한 줄이 더 그어지고 잎은 조금씩누렇게 변하고 있는데 사진은 늘 그대로 멈춰 있었다.
며칠 전에 처음으로 인화라는 것을 해봤다. 그것도 무려 250장이나. 스스로 사진의 필요성을 느끼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핸드폰 갤러리에 있는 케케묵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추리면서 눈을 감고 옛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작은 고3인 아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3이 되고 자신과의 힘겨루기를 하느라 어느샌가 입을 굳게다물어 버린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울 아들이 저런 적이 있었나? 저때가 언제였지?' 사진 속 어린 아들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들여다봤다. 어느새 내 얼굴도 아들을 따라 덩달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매일 무표정한 얼굴만 보여주며, 눈치껏 조심스레 건네는 물음표에아들은 늘 목소리 대신 가로와 세로로 고개만 움직이는 무언의 답을 건넸다. 사진 속 아들과 내 앞의 아들이동일인물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그 둘은 너무나 상이했다.
한때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아들을 빨리 키워서 이제 더 이상 시간에 구애 안 받고 내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살자. 그런데 그 마음이 후회되도록 시간이 정처 없이흘러 버렸다.작년만 해도 아들이 키는 훌쩍 컸지만, '아직학생이니까'라는 생각에 전혀 실감을 못했었다. 이제 반년만 있으면 의무 교육도 끝나고,'집을 떠나 멀리 있는 대학으로 갈 수도 있겠구나'생각하니벌써부터 마음이서글퍼진다. 대학을 가고, 군대도 가고,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까지 하면 앞으로 한 집에서 아들과 같이 살 날이 얼마나 될까? 팔짱을 끼고 늘 매달리듯 붙어서 잠을 자던 머나먼 기억 속의 아들이 그리워진다. 편하게 자고 싶어서 때로는 귀찮기도 했었는데 그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이야.
내년에는 대학을 찾아 내 품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아들을 위해 조그만 앨범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우리 세 식구가 쌓아 올린이야기와 사랑, 여행의 즐거움, 그리고 지난 시절을 모두 담아서 힘들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옷가방 속에 쏙 넣어 주고 싶다. 사진 속에서 아들은 부모의 울타리를 느끼며 낯선 곳에서의 시작을 견뎌가겠지. 혼자라는 외로움과 새로운 생활의 무게를 함께 하지는 못해도 사진 속에서나마 아들과 함께 겪으며 응원하면서 지켜주고 싶다.
그날, 사진 찍기를 알려 준 언니가 물었다. “자기, 5년 전 여름에는 뭐 했었어?”
“글쎄요, 그때가 몇 살이었더라. 그때 나는 뭘 했을까요 언니?”
대답은커녕 아무런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에게, 사진이 가진 의미란?
‘모르고 흘려보냈던 붙잡고 싶은 지나간 시절’이다.
Where our eyes are never closing, Hearts are never brok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