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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Apr 17. 2023

굴비를 뜯으며

사월과 굴비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다.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요즘은 생선 위주의 밥상을 차리곤 한다. 오메가 3이 많다는 등 푸른 고등어와 삼치, 두툼한 살이 탐나는 광어도 해 먹어 보지만 담백하면서도 개운한 맛은 굴비를 따라가기 어렵다. 굴비는 조림으로도 찜으로도 맛있지만 역시 내 입맛에는 구워 먹는 것이 최고다.

 

 굴비를 해 먹는 날엔 밥상에서 늘 어머님의 얼굴을 읽곤 한다. 강릉이 고향이신 어머님은 생전에 해산물을 좋아하셨다. 명란 무침, 코다리찜, 황탯국…. 무엇보다 굴비를 좋아하셨다. 어머님이 집에 오신다고 하면 굴비부터 준비했다. 굴비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여기가 제일 맛있다.’ 가시를 발라내어 살은 아이들 수저에 올려 주시고 어머님은 머리 쪽을 드셨다. 

 어머님은 구십을 건강하게 넘기시고 꽃들이 만발한 사월, 따뜻한 봄날에 돌아가셨다. 폐렴 증세로 입원하여 일주일을 앓다 퇴원하시고, 며칠 후 다시 병원에 들어가신 다음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다. 그때 나는 해외에 나가 있어 어머님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다. 


 봄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어머님이 마치 나를 부르시는 것만 같아 가슴이 늘 아리고 먹먹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봄을 앓다 몇 년 전 사월에야 어머님의 산소를 찾았다. 멀리 강릉 바다 끝이 보일 만큼 쾌청하고 화사한 날이었다. 산 중턱에 자리한 공원묘지는 머리에 따뜻한 햇볕을 이고 봄꽃들을 이리저리 피우고 있었다. 아버님과 함께 합장된 묘지에 하얀 국화꽃을 꽂았다. 아버님을 뵌 적은 없지만 어려운 가정에서 칠 남매를 잘 키우셨으니, 어머님처럼 단단한 분이셨을 것이다. 비석에 자부라고 새겨진 내 이름과 손자들인 아이들의 이름을 보니, 마치 어머님을 다시 만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벅차고 목이 메었다. 어머님과 길고도 깊은 인연의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어머님, 저 왔어요. 이제 왔어요. 죄송해요….’


 나도 어느새 그 시절의 어머님 나이가 되었다. 오늘 점심에도 굴비를 뜯으며 문득 어머님과 밥상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한동안 밥숟갈을 들지 못했다. 입맛뿐만이 아니라 욕심 없이 살다 가신 어머님 삶의 모습까지 닮아갔으면 좋겠다.

‘네 몸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살거라.’ 

산달을 앞두고도 유리창 청소를 하던 내게, 어머님이 하시던 말씀. 아직도 늘 우둥우둥거리며 사는 내 일상에, 생활의 지혜가 담긴 어머님 말씀이 바람처럼 나를 깨우고 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꽃들은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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