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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May 30. 2023

오월이 간다

장미와 매력

 

 췌장암을 앓던 친구가 오월을 넘기지 못하고 떠났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랬을까, 그녀의 영정이 놓인 장례식장 안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우리를 맞았지만 왠지 쓸쓸했다. 문득 아들만 둘인 나의 마지막도 이렇게 쓸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나의 장례식은 가볍고 흥겨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웠던 친구들의 농담과 덕담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좋아하던 음악도 잔잔히 흐른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


 참 맑고 푸른 오월이다. 지는 꽃 사이로 피어나는 또 다른 이름들. 그런 오월이 가고 있다. 그녀의 죽음 때문이었는지 조금은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돌아보면 젊은 날의 오월은 늘 바쁜 계절이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아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까지. 때 맞춰 선물 준비하느라 허리는 휘고 발걸음은 종종거렸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다. 늘 그렇게 흥분과 소란 속에 오월이 시작되고 오월이 갔다. 이제 아이들은 각각 저들이 사는 세상으로 떠나갔고 마음에 남은 스승도 더 이상 살아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두 분의 어머니도 추억 속에서만 살아 계시는 쓸쓸한 오월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배고픔이며 끝없는 욕망이라고 말하지만 난 당신이 유일한 씨앗이며 그로부터 피어나는 꽃이라 말하고 싶다...... 혹독한 겨울날 죽은 듯 누워있는 씨앗, 따뜻한 봄날에는 장미로 피어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장미(The Rose)’를 들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40년이 지났건만 베트 미들러(Bette Midler)는 아직도 여전한 목소리로 오월의 꽃 장미를 부르고 있다. 문득 그녀가 나이 70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삶의 지혜를 들려주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라지는 것들도 많지만 나이 먹었다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 돼라. 친구를 갖는 것은 큰 축복이다. 누군가처럼 좋은 날도 있지만 운이 좋지 않은 날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맑고 푸른 오월이 가고 있다. 나는 이 오월을 아직은 봄이라 부르고 싶다. 어쩌면 봄은 아주 짧은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머지않아 초록의 분주함으로 여름이 들썩거릴 것이다. 젊은 날에는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고뇌하고, 이별하고, 때로는 상처받았음에도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젊은 날,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던 나만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고집, 터프함, 도전정신, 겁 없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젊은 날을 생각하면 한밤 중 일어나 엉엉 울고 싶어 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가슴이 싸해지는 것은 지나간 것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위안을 삼아 본다.


 오월이 가고 있다. 학창 시절의 스승님은 더 이상 살아계시지 않지만 어른이 되어 배움의 현장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배움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인연에 감사드린다’는 카드를 써본다. 늘 어린이날에 생일을 맞았던 아들에게는 ‘그동안 생일날이 어린이날과 겹쳐 많이 속상했겠다’는 미안함을 뒤늦게 전해본다. 더 이상 놀랠만한 선물도 없었고 그렇다고 섭섭하지도 않은 결혼기념일도 무사히 지나갔다. 

 이제 친정어머니의 추도식만 남아있다. 그렇게 오월이 가고 있다. 모처럼, 해외에 사는 언니와 포항에 사는 남동생까지 어머니의 추모동산이 있는 경주에서 하룻밤을 묵을 일정을 기다리는 일은 큰 설렘이다. 육 남매는 저마다 가슴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을 밥상 위에 꺼내 놓고 한바탕 웃고 투덜대고 가끔은 목도 메이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회상할 것이다. 

 

 화려하고 찬란했던 젊은 날의 오월은 아스라한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뿐, 이렇게 또 오월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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