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것들의 의미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12살이었던 어느 날, 나영은 해성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고 또 다른 12년이 지나 해성은 용기를 내어 나영을 찾아 나선다. 뉴욕에서 만난 해성과 나영은 끊어질 듯 이어져 온 감정들이 서로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 24년 만에 만난 남녀가 서로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우리에게는 조금 익숙한 주제이기는 하나 서양에는 없는 ‘인연’이라는 주제를 애틋하게 그려냈다고 평가받았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15년을 넘게 살았던 뉴욕의 겨울은 항상 추웠다. 폭설이라도 내리면 온종일 하염없이 눈만 바라보며 집안에서 서성거렸다. 눈이 내리는 동안은 아무도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 어쩌다 창문으로 이웃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냥 웃음으로 인사만 건넨다. 눈이 멎으면 그제야 모두 밖으로 나와 집 앞을 쓸어내고 길을 만든다. 그런 날엔 눈길을 따라 동네 공원으로 간다. 숲 속은 아직 조용한 눈의 세상, 이어폰에서는 늘 JK김동욱의 <옛사랑>이 들려온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부분에서는 나도 큰 소리로 따라 부르곤 했다. 이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그리운 것이 많았다.
사라져 간 것들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것들을 찾아 나섰다. 북촌과 서촌, 북악산과 삼청동, 동대문과 낙산공원 그리고 남한산성까지. 서울에서 사십 년 넘게 살았음에도 다시 찾아가 본 곳들, 이름은 익숙했지만, 왠지 낯설고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신혼 살림집을 찾아가 보았다. 맞벌이하며 직장 가까운 곳에 얻었던 망우리 셋집. 집주인 눈치 보며 살아서일까 아니면 신혼집이라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늘 이 집이 마음에 남아있었다. 기억 속의 큰길은 다행히 아직도 연명하고 있었지만, 골목길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 여성병원 주차장이 들어서 있었다. 골목길 쪽으로 나 있던 창문, 그 창문에 해 달았던 작은 초록색 꽃무늬 커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퇴근하면 음악부터 찾아 듣던 우리 집 가보였던 독일제 그룬딕 (Grundig) 앰프, 어쩌면 오래전에 폐기 처분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기억이 구름처럼 펼쳐졌다 사라졌다. 집 옆 철길은 그대로였으나 기차는 보이지 않았다. 벽화가 그려진 높은 담벼락이 그를 대신해 주었다. 문득 지나온 시간이 아득하게 다가왔다.
처음으로 집을 사서 이사했던 곳도 찾아가 보았다. 50만 원으로 500만 원 시세의 단독주택을 샀던 시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금전에 서툰 나 대신 자산을 불리는 일은 남편의 몫이었다. 그 빚은 후에 강북에서 강남으로, 작은 아파트에서 큰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계속 짊어지고 다녔던 버거운 자산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옛길은 없어지지 않았고 골목길도 여전히 생존하고 있었다. 살던 집만 앞집과 합쳐져 6층짜리 빌라로 변해 있었다. 하기야 사십 년이 넘었으니 단층집은 2층이 되고 그러다 낡고 병들어 앞 건물과 함께 변신해야 했을 것이다. 새집 산 기념으로 앞마당에 심었던 라일락 나무는 어찌 되었을까. 분홍빛 라일락꽃만 보면 늘 떠올랐던 아스라한 추억은 거기서 그만 끝나버렸다. 그들은 여지없이 파헤쳐졌을 것이고 흔적도 없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어쩌면 이미 사라졌거나 변질하였거나 더 이상 추억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을 다시 만났을 때의 반가움과 시간의 흔적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은 남아있었지만, 오랫동안 지녀왔던 애틋한 그리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더는 그리움 속의 것을 찾아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저 남아있는 사람만이 이렇게 남은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의 송 셀린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인연이란 단어가 외국에는 없지만, 그 느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선대가 살아온 과거가 현재의 나와 만나고, 나아가 내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인연의 이야기는 비록 많은 것이 사라져 갔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문득 최은영 소설가의 '밝은 밤' 소설 속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어린 날의 달콤한 시간, 천진난만했던 친구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름 모를 풀꽃들, 하늘의 구름들. 내게로 왔던 수많은 것들, 이제는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고 그 기억의 끝에 서 있다. 남겨진 기억 속에서만 인연을 이어가는 일은 어쩌면 쓸쓸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