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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Oct 17. 2022

청춘의 문장들

푸르렀던 말들



 수요 독서 모임에서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 있다. 서른다섯의 작가가 스물 혹은 스물다섯 즈음을 생각하며 쓴 에세이다. 작가처럼 우리 멤버들도 이미 지나온 청춘의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30대 후반의 싱글부터 70대 초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전문직을 가진 직장인으로부터 은퇴한 교사와 약사까지 배경도 다채롭다. 책을 읽고 각자의 느낌과 해석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인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매번, 이 계절에 읽으면 좋은 책과 시대적 이슈를 대변하는 도서들을 묵직하게 소개해주는 리더 선생님을 만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읽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있으나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은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이 소통하는 또 다른 방식이기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며 내게도 청춘의 시간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아득한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여중 학교 교사였다. 당시 여선생이 2/3 이상이었고 남선생은 희소가치가 높았던 변두리 신설 학교였다. 첫 직장에서 학생들과 처음 만났던 설렘과 흥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첫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의 이름은 지금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청춘의 열정을 품은 곳, 친구가 되는 동료들은 거의 국어 선생들이었다. 어쩌면 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꿈이 그런 모습으로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만났던 동료 중 셋은 지금도 가끔 만나 우리의 청춘이 담긴 그 학교와 이제는 우리를 대신한 푸른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나는 잘 우는 편이었다. 정작 슬픈 일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막상 억울한 일, 남에게 싫은 부탁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면 목소리가 졸아들고 눈물도 글썽해지는 심약한 편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동료 교사 중 누군가가 내 이름을 팔아 자기 위기를 모면했던 날, 나는 너무 억울해 종일 울었다. 맞은편에 앉은 선배 교사가‘선생님은 눈물이 많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때 나는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출산 후 나는 곧바로 그 학교를 퇴직했고 그 선배는 남자중학교로 이동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러 편의 수필을 읽으면서, ‘서린 내린 연잎은 그 푸르렀던 빛을 따라 주름져 가더라도’의 내용이 마음에 남았다. 작가는, 가장 완벽한 언어라 생각한 수학을 잘해 천문학과를 지원했다. 그러나 실패하고 어느 시인이 해 준 말을 통해 자신에게는 글 쓰는 재능이 있다는 것과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게 되었다. 결국 작가는 시인이 되었고 소설가가 되었다. 

 

 나의 청춘의 문장들은 무엇이었을까? 살아오면서 칭찬이나 인정이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한 적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아직 잊히지 않은, 내게도 푸르렀던 말이 남아있다. 바로 그 선배 교사가 해 주었던 ‘선생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말. 

 오십이 넘어서야 나는 나의 문학과 해후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말, 어쩌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문학의 열정을 싹 틔우고 가꾸게 한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스스로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안에는 수많은 빛이 숨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 안에 있는 잠재적 재능을 조금 더 열심히 살려본다면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청춘은 어느 시점에나 존재한다. 나이 육십은 팔십 노인에게, 마흔은 육십의 장년에게, 그리고 스물과 서른은 마흔인 중년에게는 여전히 푸른 청춘이다. 나는 가끔 마흔 언저리에 있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가장 눈부시고 찬란한 시절인 지금, 그대들은 행복한가?’라고.

 ‘세월은 흘러 서린 내린 연잎은 그 푸르렀던 빛을 따라 주름지고 시든다고 하더라도 한때 그 푸르렀던 말들은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충만한 가을날, 우리들의 청춘의 길을 돌아보고 각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푸르렀던 말을 찾아보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이 모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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