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건너가는 구월의 가을
계절은 아프지도 늙지도 않는가 보다. 베란다에 내려앉는 가을볕을 보며 혼잣말했다. 몇천만 년을 거쳐 왔으면서도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지 않는가. 어쩌면 목숨 가진 우리만 시들고 나이 들고 병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멍하게 아침 볕을 즐기다 점심거리는 무얼 하지 걱정 아닌 걱정으로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그래, 어제 좌판에서 사 온 고구마 줄기 볶음 탕을 해야겠다. 된장 넣고 자작자작하게 졸이면 그 맛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요즘, 동네 지하철 출구 앞에 좌판을 펼쳐 놓은 분들이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 아저씨까지. 좌판에 늘어놓은 물건도 다양하다. 노지에서 걷어온 채소부터 먹음직스러운 과일, 생물 갈치, 참기름과 잡곡류까지. 가끔 보면 슈퍼에서는 살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나는 정작 살 것이 없으면서도 시선은 좌판 위로 간다. 오늘은 무얼 꺼내 놓았을까, 누구를 새로 데려왔을까 궁금해진다. 그들이 펼쳐 놓은 물건과 서툰 글씨로 써 놓은 이름을 보면 왠지 우리 할머니 생각도 나고 친정엄마 생각도 난다. 삐뚤빼뚤 손으로 쓴 글씨, ‘국산 브로커’,‘부록걸이’, ‘불로케리’, ‘부르크리’…. 같은 채소 다른 이름 ….
좌판에서 물건을 자주 사는 편은 아니다. 언젠가 망고를 사다 먹고 알레르기가 생겨 고생하던 일, 생선을 사고 보니 신선도가 떨어져 식중독을 앓던 일을 떠올리다 보면 선뜻 물건을 사게 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가지도 사고 조글조글한 꽈리고추도 사 온다.
어제 오후는 들어오는 길에 고구마 줄기를 3,000원에 한 봉지 샀다. 지난번에 살짝 데쳐 김치를 담았는데 맛이 괜찮았다. 요즘 치솟는 물가 탓인지 양은 지난번보다 줄어들고 껍질도 거의 까지 않은 채였다. 할머니는‘깐다고 깠는데 그려, 이봐 손톱 밑이 까맣지!’하며 손톱을 보여주셨다. 그의 노고가 훅 가슴으로 밀려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어 들고 왔다.
집에 와 보니 거의 손질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다듬다 보니 내 손가락도 거무스레해졌다. 손을 닦으면서 뜬금없이 이 고구마 줄기는 어떻게 우리 집까지 왔을까 궁금해졌다. 고구마를 사거나 손질된 줄기를 사다 요리할 때와는 달리 많은 생각이 들었다. 씨고구마를 심고 싹을 길러내어 밭에 심기까지의 수고로움은 물론, 풀을 뽑고 관리해야 하는 농부의 인내와 노고를 생각해 보았다. 매번 텃밭에 실패하는 나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할머니의 검은 손톱. 하루의 시간과 노동이 허허롭게 앉아 있던 좌판. 그들의 표정과 손길을 읽는 일은 왠지 모를 아득함이다.
가을은 조락과 소멸, 그러면서도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라 했다. 아름다운 것과 여물어가는 것들이 용솟음치는 계절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과 잊혀가는 것들이 알싸하게 고이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풍성한 가을볕 아래, 나는 오늘도 그들이 들고 나올 좌판을 상상해 본다. 고구마, 호박, 오이, 꽈리고추…. 그들 앞섶에 다소곳하게 앉아 느긋하게 가을을 즐기고 있을 물건들을 떠올려보니 어느새 마음이 따스해진다. 하늘을 건너가는 구월의 가을과 함께 채우고 털어내면서 가을볕처럼 넉넉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