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속모습과 겉모습
나는 음치고 박치다. 온전하게 부르는 노래가 하나도 없다. 박자를 놓치는 일은 부지기수다. 리듬을 타지 못하니 자연히 몸도 엇박자가 나 춤을 배우는 일도 벅찬 일이다. 악기를 배우는 일은 산 넘어 산이었다. 피아노를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건반이 그려진 종이 피아노에서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 너도나도 통기타 들고 돌아다니던 시절에는 멋으로 잠깐 기타를 만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한때는 재즈 카페에서 멋지게 피아노를 치는 아티스트를 보면서 노년에는 재즈 피아노를 배워야겠다는 허황한 꿈을 갖기도 했다. 우선 손쉬운 키보드부터 시작하겠다고 나섰으나 새로 구매한 키보드는 거실 한쪽에 말끄미 서 있기만 하다. 그저 좋아하는 노래를 혼자 흥얼거려 보거나 잔잔한 클래식 소품을 듣는 일이 내 음악적 감성의 전부였다. 나는 왜 음악적 재능이 없는 것일까?
아침에 일어나면 명상음악이나 힐링 음악을 들으며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오전에는 티브이 오디오채널에서 홈 클래식을 듣고 오후에는 가벼운 재즈 음악을 듣는다. 듣지 않아도 종일 켜놓고 있는 편이다.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 혹은 뉴스를 시청하는 시간보다는 음악프로그램을 틀어두는 시간이 더 많다. 늘 똑같은 오디오채널 화면을 보면서 외국 채널처럼 방송 중인 음악과 관련된 화면이나 캡션이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저녁에는 흘러간 팝송이나 유명 연주자의 CD를 들으며 책을 읽기도 하고, FM 라디오의 ‘세상의 모든 음악' 같은 프로를 즐겨 듣기도 한다. 늘 음악과 함께 있는데 왜 나는 음악적 소양이 없는 걸까?
벚꽃들로 눈이 부시다. 이 눈부신 사월에 나는 음악과 한창 연애 중이다. 스무 살 언저리에 누군가 때문에 가슴이 떨리고 밤잠을 설쳤듯, 음악의 도가니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춥고 지루한 지난겨울, 문득 신문에 난 기사를 따라가다 보니 여기까지 이르렀다. <고전음악과 오디세이>. 제목에 끌려 시작한 발걸음이 클래식 음악의 이해는 물론, 시인의 삶과 음악, 그리고 키보드를 다시 배우는 길로까지 빠지게 되었다.
음악은 무엇일까, 음악의 속 모습과 겉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왜 바흐부터일까? 강의를 듣다 보니 음악도 사람의 삶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작과 끝이 있고 똑같은 것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 음악적 소양이 없어도 작곡가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 곡을 작곡했는지, 왜 그 곡이 영감을 주는지 하나둘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어둡고 슬픈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듣는 그의 음악은 잠자고 있던 나의 감성에 촉촉한 봄비처럼 내려왔다.
눈꽃 흩날리는 사월. 좋은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것도 음악적 감성이 있는 것이라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음악도 언어다. 계속 듣다 보면 닫혀있던 귀도 열리고 소리도 들릴 것이다. 음악이 담고 있는 시적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는 작곡자와 시인의 마음도 따라가게도 될 것이다. 손 놓았던 팝 발라드‘위대한 약속’도 다시 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