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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Oct 31. 2023

길 위에서

뉴잉글랜드 문학기행

가을빛이 완연해지는 계절이다. 고국도 그렇지만 뉴욕의 가을은 무엇을 해도 아름다운 계절이다. 언젠가 후배가 주관하는 독서클럽의 뉴잉글랜드 문학기행에 합류한 적이 있다. 문학적 발자취를 따라 미국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때마침 호주 타스메이나에서 뉴욕을 방문 중인 대학 동창과 연극동아리에서 만난 후배와 셋이 떠났다.      

 

 뉴잉글랜드 지방은 온통 가을 색으로 무르익어갔다. 가장 먼저 다다른 곳은 콩코드(Concord, MA.) 월든 호수(Walden Pond)였다.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월든>과 <시민불복종>을 쓰며 작품활동을 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호수는 흐린 하늘을 닮아 있었다.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자립을 실천한 그를 생각하며 호숫가를 천천히 돌았다. 평온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물결을 보며, 월든 호수를 왜 미국의 ‘영적 고향’이라고 하는지 잠시 생각했다. 

 오두막이 있다는 숲으로 향했다. 숲 속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찰과 공감, 삶의 진실을 탐구했던 위대한 사상가 소로가 2년 2개월 2일 동안 기거했던 오두막이 있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난로와 의자가 전부인 오두막을 보며 소로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보이는 것 같았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월든>은 당대의 표준적 삶의 패턴을 벗어나 소박한 삶의 방식이 가능함을 보여준 작품이다. 문득, 우리는 큰 것 좋은 것 많은 것만을 욕심내며 사는 것은 아닌지 잠시 되돌아보았다.

 기념품 판매장에 들러 소로의 책 <달빛 속을 걷다(Night and Moonlight)>를 샀다.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 쓴 후기작품 중 하나인 얇은 책이었다. 그처럼 달빛 속을 걸으며 가을의 색과 겨울 산책을 사랑해보고 싶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일곱 박공의 집>과 <주홍글씨>를 쓴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 박물관을 잠시 들렀다. 호손이 ‘소설은 소설일 뿐, 특정한 집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듯이, 실제 박공의 집에서는 음침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크게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읽기 쉬운 글은 정작 쓰려면 매우 어렵다’라는 그가 남긴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글쓰기는 아직 이루지 못한 나의 미션으로 남아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일행은 와인과 함께 하는 클래식 음악감상 및 해설 시간을 가졌다. 베토벤의 월광곡을 들었다. 후배는, 1970년대 대학생들이 데모하던 시절, 데모를 피해 들어간 곳에서 우연히 월광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의 감동은 지금까지도 확연하게 전해 온다고 말했다. 그날 밤은 달빛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달빛 속을 걸었다. 어디선가 월광곡이 들리는 듯했다. 


 다음날 일찍 캐넌 산(Canon Mountain)으로 출발해서 트램(tramway)을 탑승했다. 온통 가을빛으로 물든 산들이 불붙은 듯 황홀했다. 홍단풍, 설탕단풍, 주홍 떡갈나무까지 저마다 가을 색을 품어내고 있었다. 문득 ‘10월은 해가 지는 노을 전 하늘과 같고 11월은 황혼과 같다.’라는 소로의 말이 생각났다. 산을 내려와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박물관으로 향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지 않은 길’로 언제나 가깝게 느껴지던 시인이었다. 그가 남긴 스케치와 시편들을 돌아보며 우리도 잠시 시상에 잠겼다. 그리고 그의 집 앞에 있었다던 사과나무 즈음에서 시 한 편을 적어보았다.      


 시월 빛을 따라 북으로 버몬트로 달려가는 길/ 숲을 따라 길들이 이어진다/ 큰길 오솔길/ 산길 하늘길까지/ 끝없을 것 같은 저 길들도 / 끊기듯 부러지듯 어디선가는 끝이 날 것이다// 햇살만 무심히 뒤따라오는 하늘/ 구름 한 점이 없다/ 나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걸까/ 밀려나는 저 풍경들처럼 반쯤 숨 멎은 채/ 흘러가는 이 길을 그냥 걸어야 하는지/ 어딘가에 또 다른 두 갈래 길 있어/ 가뭇없이 걸어온 길 뒤로 하고 다시 시작해도 늦은 건 아닌지/ 보름이 되기엔 아직 이른 낮달에게 묻는다/ 아니, *잠들기 전 먼 길 떠나야 한다는 그를 만나 물어야 한다//흔적 없이 사라진 자작나무 대신/허리가 동강 난 채 혼자 서 있던 사과나무/ 아무도 가 보지 못한 땅/ 붉게 익은 시구들만 우두둑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길은 아직 멀다                 

가을이면 언제나 떠나고 싶어지는 뉴잉글랜드 단풍 여행. 다시는 걸을 수 없는 추억 속의 단풍길이 되어버렸다.



 * Robert Frost,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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