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postscript)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친구들은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냈다고 수다를 떨지만 나는 막상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마저 없으니 조금은 두렵다. 그래도 일 년을 잘 살았으니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전하고 싶다. 손 편지를 쓰는 일이 이제는 먼 옛날의 추억거리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그들에게 어울리는 카드를 고르다 보니 마음은 어느새 소녀처럼 뒤설렌다.
먼 길 돌아 고국에 안착했다고 번개 모임을 열어 열렬히 환호해 준 친구에게는 여러 가지 열매가 한아름 담겨있는 눈부신 황금빛 카드를 골랐다. 황반변성으로 한쪽 눈은 거의 실명이 되어 가고 다른 쪽 눈마저 치료하고 있다는 여고 시절의 짝꿍. 내 팔을 꼭 붙들고 세종로 뒷골목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조심조심 걸었던 친구다. 언젠가는 시력을 잃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타고 난 긍정적 성격과 웃음으로 순응한다던 그녀를 떠올리면, 소금밭에 발이 시리듯 가슴이 아려온다.
‘제비꽃’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선배가 있다. 그를 위해서는 쓰러지려는 바위를 두 손으로 힘겹게 받치고 있는 예쁜 소녀의 카드를 집어 들었다. 뒤늦게 시작한 학문의 길에서, 내가 좌절할 때마다 힘을 실어 주고 손을 잡아주던 선배였다. 긴 여정의 끝에서야 마침내 자기 일을 찾았다고 기뻐하던 선배. 그러나 최근에는 현실이 늘 자신을 지치게 만들어 버겁다고 했다. 이제는 내가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 차례다.
나의 문학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선생님께는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된 성탄 카드를 골랐다.
‘뉴욕 다시 오고 싶지 않아?’
‘아직은요…. 뉴욕이 그립지 않을 만큼 서울이 좋아요!’
섭섭하실 걸 알면서도 그리 답해버렸다.
푸르고 빛났던 시절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형제, 친구, 옛 동료가 있는 고국이 좋다.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무진장 많았던 뉴욕이었지만 그래도 외로웠다. 어쩌면 그 고독의 무게가 문학을 하게 만든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문학을 손에서 놓지 말라던 선생님, 이제 다시 뵙기는 어려울 것 같다.
카드를 고르다 보니 문득 손수 써 보내주셨던 친정아버지의 편지가 생각났다. 아마 이 겨울에 아버지의 기일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늘, 먼 타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식의 안부와 바람을 양면 괘지에 펜으로 꾹꾹 눌러써서 보내주셨다. 겉으로는 엄격하셨지만, 삶에 대한 넉넉한 자세와 딸에 대한 연민이 묻어나던 아버지의 편지. 마흔다섯의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늘 부치지 못한 추신으로 남아있다.
춥고 긴 겨울밤, 편지를 보낼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편지를 쓰는 사람은 행복하다/편지를 받는 사람은 더욱 행복하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 아직 그리움이 이어져 있다는 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