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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Feb 08. 2023

오늘도 꽃들은 말한다

식물과 나

   입춘을 지났지만 지상 위의 생명들은 아직 겨울이다. 그래도 아침저녁 산책길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의 몸짓을 보는 일은 신선하다. 이제 곧 얼마 있지 않으면 금빛 물결로 일렁일 수양버들을 생각하면 가슴은 어느새 푸르러진다.   


  나는 식물을 참 좋아한다. 어느 누가 꽃과 나무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지만 좀 병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날이나 생일날이 되면 유치원에 다니던 작은 아이가 묻곤 했다. ‘엄마! 무슨 선물 받고 싶어?’하면 난 어김없이 '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아이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꽃은 금방 시들어버리는데, 엄마는 왜 꽃을 좋아하지?’하며 실망하는 눈치였다. 아마 어린아이 눈에도 금방 생명이 끝나 버리는 꽃보다는 오래 두어도 변치 않는 물건이 더 값진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가끔 초대받아 오는 지인들이 가져오는 오래 묵은 와인이나 군침 도는 케이크도 좋아하지만 꽃을 선물 받을 때가 더 기쁘다. 굳이 화려한 자태의 이름 있는 꽃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들꽃이나 풀꽃이면 족했다. 태생이야 어떻든 살아있는 꽃은 아름답고 그들에게서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나름의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나는 전셋집이든 내 집이든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이사 갈 때마다 꽃분을 사들였다. 고무나무, 철쭉, 치자나무, 영산홍, 제라늄, 수국들이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지금도 마음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나무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구입한 우리 집의 작은 화단에 심었던 연분홍 라일락꽃나무다. 지금쯤은 키를 얼마나 세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먼저 쿵쿵거린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화분들을 죽 둘러보는 일이 일과의 시작이다. 식탁 옆에 화분대가 있으니 피해 갈 수도 없는 일이지만 밤새 잘 지냈는지 물은 주어야 하는지 시든 꽃잎은 없는지 조심스레 살펴본다. 옆 사람은 '무얼 그리 혼자 열심히 중얼거리느냐' 때로는 '거기서 밥이 나오나요 돈이 나오나요' 하고 묻지만 내 나름대로 식물과 인사를 나누는 방법이다. 물론 돈이나 밥이 나오지 않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돈을 쓰고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게는 사실인 것 같다. 

 꽃분들은 매일 들여다보고 말을 걸고 정성을 들이면 신기하게도 잘 자라준다. 여름이면 나도 함께 푸르고 싶어 무성한 잎의 식물을 탐했고 겨울에는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꽃나무를 키웠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식물 가꾸기는 그 사이 죽어나기도 하고 지인의 손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내게서 떠나간 그들의 생사를 알 수는 없지만 사는 내내 꽃분들은 내게 와 행복을 나누어 주었다. 

 

 비 내리는 날이나 울적한 날 귀갓길에 만나는 꽃집에 시선이 자주 가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주머니가 넉넉하면 화분 하나를 사 오기도 한다. 그 화분 하나에 마음이 환해지기도 하고 부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반찬값 생각하느라 마음에 드는 화분 하나 맘껏 살 수 없었던 지난한 시절도 있었다. 우울한 시절 내게 위로를 주었던 꽃분들, 요즘 반려식물이란 말이 있지만 아마도 오래전부터 꽃이나 푸른 식물은 나의 반려였지 싶다.

  벼르고 벼르다 어제서야 시민대학에서 열리는 특별 강좌 '반려식물'에 대한 강의를 신청했다. 나를 닮은 식물과 나의 소울 플랜트는 무엇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봄이 오면, 프랑스의 어느 아파트 베란다처럼 꽃나무를 들이려고도 한다. 배롱나무 혹은 벚꽃나무 어쩜 라일락나무가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은 벌써부터 꽃나무 시장을 헤집고 다닌다. 머지않아 베란다에 나의 '작은 식물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이다.


 죽은 덤불 속에서 머리를 내미는 길가의 들꽃. 길바닥을 헤집고 나온 풀. 마치 소중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 달려가 들여다보는 일을 나는 왜 좋아하는 걸까? 어쩌면 그들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것, 계절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처럼 생로병사를 겪으며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과 찬란함 그리고 지고 난 후 다가오는 쓸쓸함이 식물들에게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꽃송이와 이파리 때로는 열매까지 그들이 살아있는 한 하나라도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공손한 마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동안 나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었던 식물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마지막 겨울을 버티려 한다. 땅, 불, 바람, 물, 마음이 있는 곳이면 어떻게든 살아남는 식물들. 어디선가는 오늘도 생명이 사라지지만 어디선가는 또 다른 생명이 숨 터올 것이라는 희망과 기다림으로 이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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