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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Oct 07. 2022

가슴이 설레는 일

설렘으로 산다는 것은 

 가을빛이 곱다. 이런 날은 무조건 집을 나선다. 무엇인가 가슴 설레는 일을 만날 것만 같아서다. 사실 요즘 그날이 그날 같아 이렇게 사는 일이 맞는가 혹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자주 들었다.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가슴이 쿵쿵 떨릴 만큼 설렐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희망을 안고 삼청동 갤러리로 향한다. 


 언젠가 강이연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 전시회를 보면서 가슴이 떨렸던 곳이다. 오늘은 다른 작가의 단아하면서도 명상적인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명상과 가슴 떨림은 극과 극일까 아니면 그들은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일까. 심장이 뛸 만큼 가슴 떨리는 일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타성에 젖어간다는 것일 게다. 언제쯤 사는 일이 가슴 떨리도록 눈부셨을까? 


  첫 아이 낳았을 때의 가슴 떨림은 잊을 수가 없다. 한밤중 출장 간 남편 대신 시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던 때의 두려움 그리고 진통 끝에 출산한 큰 아이. 그날은 마침 첫눈이 내리기도 했다. 그 아이는 어느새 자라 이제 또 그의 아이를 볼 나이가 되었다. 나는 가끔 그에게 '돌아보니 지금이 가장 찬란한 시절인데 그대는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나요?' 하며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스러움과 특별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출산의 고통은 두렵고 힘들었지만 첫 출산에 대한 황홀감은 아주 오래 지속됐다.  


 태어나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의 가슴 떨림도 잊지 못할 경험이다. 그때는 마침 소련 전투기가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 폭파한 후여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흥분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파리를 경유하여 런던으로 날아갈 때의 흥분과 떨림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물론 요즘은 은빛 날개를 타고 날고 있다는 느낌이 반감되기는 했지만 혼자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서울에서 런던까지 그 먼 길을 비행기 갈아타며 날아갔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행은 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일상이 무료하다고 느껴질 때, 사는 일이 답답해질 때 훌쩍 잘 떠났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랜드 써클. 캐나다의 설산과 아이슬란드의 빙하. 헤이그에서 바라본 북해와 캔쿤의 석양. 이들이 주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은 오래도록 가슴을 떨리게 했다. 사실 여행지가 어디든 일상을 떠난다는 것은 늘 나에게 미지의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들뜸으로 이어졌다.


 옛사랑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나는 가슴이 떨려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얼굴도 들 수가 없었고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우연히 어느 공항에서 해후했을 때의 떨림, 그 파동은 아주 길었다. 그러나 다시 추억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어디선가 스쳐 지나간다 해도 그 떨림은 그때만큼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우주를 여행하는 일,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는 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는 일. 어떤 것은 너무 요원해서 어떤 일은 불가능해 보여 가슴이 그리 떨려오지는 않는다. 더 이상 심장이 떨릴 만큼 다가오는 사람도 아주 먼 미지의 여행을 떠날 일도 없을 것 같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에서 작고  소소한 기쁨으로 대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스탕달 신드롬(뛰어난 예술품을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육체적 떨림 등의 반응)까지는 아니더라도 설렘을 기대하며 이렇게 갤러리를 찾아다니는 일, 동네 공원에서 새롭게 발견한 식물의 이름을 찾아보고 그의 내력을 살펴보는 일에서 설렘을 기다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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