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밥상
아침 설거지를 끝내며 오늘 점심은 또 무얼 해 먹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찌는 무더위에 불을 써야 하는 일이 싫긴 하지만 늘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내 위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잡채밥을 할까? 콩나물 볶음을 할까?
갑자기 잡채가 해 먹고 싶은 날이 있긴 하다. 특별히 맛있는 반찬도 아니고 굳이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끌리는 날이 있다. 양파 벗기며 눈물 훔치고 고기 볶으며 땀 흘리다 만들어낸 잡채, 밥상에 올리면 그날 메뉴는 잡채밥이 된다. 잡채 요리는, 외국에서 사는 동안 아이들 학교 행사 때마다 내놓은 한국 음식의 대표 주자였다. 잡채를 먹어 본 선생님들은 저마다 내 손을 잡고 재료가 무엇이냐 어떻게 요리했냐고 물었다. 그들이 우리 음식과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는 작은 자부심에 그날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사십 년 전 일이다.
요즘 K-문화가 세계인들의 아이콘이 되고 있지만, 그 시초는 K-음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 가장 앞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잡채를 해 먹고 싶은 날은 아마도 이제는 다 자라 버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문득 생각나서일 것이다.
지금은 아주 먼 곳에 살지만, 한때 가까이 지냈던 친구는 별식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먹을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다. 명절은 물론이고 절기마다 빼놓지 않고 특별한 음식을 만든다. 음식을 하는 일이 그에게는 곧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장을 보고 준비하고 만들면서 떠나 있는 가족 누군가를 기억하며 마음을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별식은 내게도 늘 보내졌다. 그의 마음을 다 채워줄 수 없는 나는 그릇을 돌려주지 못한 채 쌓아 놓기만 했던 적도 있다. 어쩌면 그녀는 절기마다 음식을 장만해서 여기저기 나눠 주는 일을 평생 할지도 모른다.
어떤 음식은 그리움으로 온다. 음식을 요리하는 일은 단순히 먹기 위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음식을 만들면서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떤 날의 우울이나 행복을 되감아 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언제나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던 친정엄마의 양념게장, 별미라고 싸 왔던 이웃집의 된장 부추전, 농활 갔던 마을 평상에서 땀 흘리며 먹었던 감자수제비. 이제는 그들의 안부를 더 이상 가늠할 길 없지만, 추억 속 음식들은 그리움과 옛정과 어느 날의 기억을 끌고 와 넉넉한 밥상이 되어주기도 한다.
헬렌 니어링은 <소박한 밥상>에서 요리는 손과 눈과 마음을 통해 만들어가는 행위로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이라 했다. 한때는 요리하는 일이 시간을 낭비하고 수고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우스갯말로, 손님 초대는 좋아하지만 요리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리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가사노동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수고로움을 애써서 해 보려고 한다. 장을 보고 재료를 준비하고 한 끼의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기는 것, 누군가의 말처럼 가끔은 ‘오아시스 같은 휴식’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오늘 반찬은 콩나물 볶음이다. 콩나물은 무침이나 시원한 국물밖에는 모르던 시절, 어느 날 같이 일하던 후배가 도시락 찬으로 콩나물 볶음을 해왔다. 큰 멸치와 고춧가루를 넣고 푹 졸여왔던 콩나물 볶음. 아마 그의 어머니가 기억 속 어딘가 남아있는 그리움을 덜어 만들어준 음식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날 처음으로 콩나물 볶음이란 요리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끔 해 먹는 반찬이 되었다. 마흔의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예쁜 후배. 몇십 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가슴 먹먹함 때문인지 오늘처럼 비가 뿌리는 날에는 문득 콩나물 볶음을 해 먹고 싶다.
무얼 해 먹을까 막막해지면, 가슴속 보물 창고를 열어 추억 하나쯤 끄집어내면 소박하고 넉넉한 밥상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