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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Jan 31. 2023

또 하나의 언어

자연의 소리

 


1월의 마지막날, 나는 벌써부터 손녀의 여름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6월이면 만나게 될 손녀. 요즘은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며 화상으로 만날 때마다 스페인어로 인사를 한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니 수준이야 높지 않지만 말이다. 외국에서는 학기마다 다양한 외국어를 경험해보게 하고 고학년에 올라가면 자신이 선호하는 언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하게 한다. 지금은 너무 말을 잘해 논리적으로 따지면 아빠 엄마도 곤혹스럽다고 한다. 이야기도 잘 만들고 운율을 맞춰 시를 잘 짓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학교 잡지에 실린 ‘Winter, Spring, Summer, Fall’이라는 시를 보내오기도 했다. 생각도 기발하고 운율도 맞출 줄 알고 위트와 유모까지 구사했다고 많은 칭찬을 받았단다. 대단한 발전이다. 하지만 손녀는 사실 두 살이 지나서까지 말이 느렸다. 


 옹알이를 하고 입에 말풍선을 달 때만 해도 금방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뉴욕에서 태어나 돌쯤에는 제네바로 옮겨 가 살았다. 서너 살이 되어 유아원을 다닐 때는 방학 때마다 서울로 잠시 나왔다. 다섯 살부터는 뉴욕에 정착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손녀. 말이 늦은 손녀를 보면서 그때는 정말 많은 걱정을 했다.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영민해서 이해력은 빠른데, 의사표현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만의 언어로 말했다. 어쩌면 영어 한국어 불어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누가 먼저 나서야 하는지 순서를 정하느라 그러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했다. 어쩌면 그보다는 너무 어려서부터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름 생긴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기질적인 결함은 없다고 하여, 환경 탓이려니 생각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때, 손녀가 말을 잘할 때쯤 되면 나도 새로운 언어, 자연의 언어를 터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나이 들면 자연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언젠가 산림학 박사이신 대선배가 일상에서 자연과 소통했던 일화를 들려주셨다. 자신의 수목원에 매일 곰이 나타나서는 공들여 키운 나무들을 마구 훑어 놓았다고 했다. 곰이 오지 못하게 약도 치고 고춧가루를 풀어 나무에 발라 보아도 효과가 없었단다. 하루는 그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웅(熊)님, 보세요. 제발 나무에 올라가지 말아 주세요!’ 당당하게도 한글로 쓴 팻말을 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놓았단다. 그런데 정말이지, 더 이상 곰이 나무 위로 올라가지 않고 나무 아래에서만 놀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신기한 교감인가!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혼잣말을 하며 살아간다. 용기를 북돋우는 혼잣말, 스스로를 위로하는 혼잣말, 자기 체면 같은 혼잣말. 신기하게도 이런 혼잣말들은 가끔 힘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지 혼자 묻기도 한다. 이런 내면의 물음들은 현존의 삶에서 보다는 자연과 우주에서 해답을 구해야 할 때가 많다. 내가 혼자 하는 질문의 말들을 자연과 우주가 알아듣는다고 느꼈던 적은 없는가?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바빠도 계절을 건너뛰지 않는다. 씨 뿌리지 않고는 거두어들일 수 없으며 예외란 없다. 어쩌면 흐름을 거스르기보다는 순리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해 주는 것 같다. 

 

 나는 이제 겨우 화초들과 말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죽은 줄 알고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었던 아프리칸 바이올렛에서 새순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아, 너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큰 감동에 마구 말을 해댄다. 그리고 마침내 보랏빛 꽃대를 올렸을 때는 생명의 질김에 눈물이 날 뻔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얼어 죽은 것 같아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용설란이 어느 날 오동통한 대를 올렸을 때도 ‘너 이렇게 크는 것도 모르고. 미안해…’하며 나의 홀대와 게으름에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손녀의 어휘 실력만큼 되려면 나는 더 부지런해야 될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산책길에 만나는 바람의 이야기, 구름의 대화, 길섶 풀들의 옹알이, 그리고 햇살이 열어주는 소리를 귀담아들으려 한다. 손녀의 영어가 유창해져 내가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듯 언젠가 내 내면의 귀도 깊게 열려 자연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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