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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Aug 06. 2023


어떤 음식은 그리움으로 온다

넉넉한 밥상

 아침 설거지를 끝내며 오늘 점심은 또 무얼 해 먹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찌는 더위에 불을 써야 하는 일이 싫긴 하지만 늘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내 위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잡채밥을 할까 콩나물볶음을 할까 고민하며 냉장고를 열어본다. 

 

 갑자기 잡채가 해 먹고 싶은 날이 있긴 하다. 특별히 맛있는 반찬도 아니고 굳이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끌리는 날이 있다. 양파 벗기며 눈물 훔치고 고기 볶으며 땀 흘리다 만들어낸 잡채, 밥상에 올리면 그날 메뉴는 잡채밥이 된다. 잡채요리는 외국에서 사는 동안 아이들 학교 행사 때 처음으로 내놓은 한국음식의 대표 주자였다. 잡채를 먹어 본 선생님들은 저마다 내 손을 잡고 재료가 무엇이냐 어떻게 요리했냐 등을 물었다. 그들이 우리 음식과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는 작은 자부심에 그날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잡채가 먹고 싶은 날은 아마도 이제는 다 자라 버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문득 그리워서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음식을 요리하는 일은 단순히 재료를 준비하고 만드는 법을 따라 조리하는 것 이상의 작업이다. 단순히 먹기 위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음식을 만들면서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떤 날의 우울이나 행복을 되감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기에. 지금은 아주 먼 곳에 있지만 한때 가까이 지냈던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별식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먹을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다. 명절은 물론이고 절기마다 빼놓지 않고 특별한 음식을 만든다. 아마도 장을 보고 준비하고 만들면서 떠나 있는 가족 누군가를 기억하며 마음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음식을 하는 일은 그에게는 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 별식은 내게도 늘 보내졌다. 한동안은 내 마음을 다 채워 보낼 수 없던 빈 용기만 선반에 덩그러니 남아 있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는 절기마다 음식을 장만해서 여기저기 나눠 주는 일을 평생 할지도 모른다. 


 헬렌 니어링은 <소박한 밥상>에서 요리는 손과 눈과 마음을 통해 만들어가는 행위로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이라 했다. 한 때는 요리하는 일이 시간을 낭비하고 수고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가사노동이다. 나는 우스개말로, 손님초대는 좋아하지만 조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요즘은 그 수고로움을 애써 해보려고 한다. 장을 보고 재료를 준비하고 한 끼의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기는 것, 누군가의 말처럼 가끔은 ‘오아시스 같은 휴식’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어떤 음식은 그리움으로 온다. 언제나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던 친정엄마의 양념게장, 별미라고 싸왔던 이웃집의 된장부추전, 농활 갔던 마을 평상에서 땀 흘리며 먹던 감자수제비. 이 여름날 그들의 안부를 가늠할 길 없지만 추억 속 음식들은 그리움과 옛정과 어느 날의 기억을 끌고 와 넉넉한 밥상이 되어주기도 한다. 

 오늘 반찬은 콩나물볶음이다. 콩나물은 무침이나 시원한 국물 밖에는 모르던 시절, 같이 일하던 후배가 도시락 찬으로 콩나물볶음을 해왔다. 큰 멸치와 고춧가루를 넣고 푹 졸여왔던 콩나물볶음. 아마 그의 어머니가 기억 속 어딘가 남아있는 그리움을 덜어 만들어준 음식은 아니었을까? 그날 처음으로 콩나물볶음이란 요리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끔 해 먹는 반찬이 되었다. 마흔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결혼도 하지 않았던 예쁜 후배. 몇십 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가슴 먹먹함 때문인지 문득 오늘은 콩나물볶음을 해 먹고 싶다.


 오늘 무얼 해 먹을까 막막해지면, 가슴속 보물 창고를 열고 추억 하나쯤 끄집어내면 소박하고 넉넉한 밥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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