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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Mar 14. 2023

식물들의 사생활

나의 소울 플랜트

 

 언젠가 사람과 식물 간의 교감에 대한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은 적이  있다. 가족 간에 일어나는 사랑의 갈등과 아픔을 식물적 교감으로 승화해 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었다. 한 때는 나도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망 때문이었을까?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나무-신화가 흥미를 끌었다. 

 첫 번째 나무 신화는, 소설 속 ‘나’의 형과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좌절된 사랑 이야기다. 살아있는 동안 이루지 못한 현실적 사랑을 죽은 후 굵고 우람한 소나무와 가늘고 매끄러운 때죽나무로 화해 사랑을 완성한다는 가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거나 헤어진 후에는 나무가 되어 사랑을 이어간다는 옛 서사가 연상되기도 했다. 

 두 번째 나무 신화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첫사랑이 삼십 년 만에 재회하는, 노년의 두 남녀에 대한 사랑이다. 이국종인 야자나무가 바다를 건너와 그 질긴 생명력으로 서로를 다시 만나게 함으로써 죽어서 나무가 되는 길이 아니라 살아서 나무가 되는 길도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나무 신화는, 삼십 년 전에 한 남자와 이별하고 아들을 데리고 홀로 된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인 아버지, 그를 물푸레나무로 그리고 있다. 흔히 신화에서 세계를 떠받치는 ‘우주목’을 물푸레나무로 본다면, 인간의 세계를 떠받치는 것은 바로 아버지가 실천한 헌신적 사랑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우주목으로서의 물푸레나무에게 자신을 통해 지하와 천상을 연결하는 임무가 주어졌다면 소설 속의 아버지-물푸레나무는 인간이 살아서 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나무라는 것이다. 소설 속, ‘나’의 아버지는 말한다. 나무에게도 감정이 있어 식물의 피부는 우리의 손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지각한다고. 식물들은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고. 식물들에게도 사생활이 있다는 말, 식물을 좋아하지만 아직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내게는 신선한 말이었다. 



 마지막 겨울바람이 차갑다. 온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던 <국내 1호 식물큐레이터와 함께 반려식물 생활 시작하기> 강좌에 참석했다. 식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식물을 잘 키워보겠다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식물과 함께 한 시간이 3년 이상 되었으니 아직 배워가는 중이지만 들어오는 식물들과 제법 오래 살고 있는 편이다. 첫 시간에는 스스로 좋아하는 식물이 어떤 것인지, 각자가 머무르는 공간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사전 질문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통해 공간과 식물 그리고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는 기회를 가졌다. 


 식물들에게 필요한 흙 햇볕  바람 그리고 마음에 대한 소개를 통해 식물도 산책을 좋아한다, 식물은 중고가 없다는 말도 이해하게 되었으며 식물의 분갈이와 소매 넣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또한 현재의 공간, 내가 좋아하는 식물 그리고 생활패턴을 통해 나의 소울 플랜트는 무엇인지도 찾아보았다. 밝은 창을 좋아하고 잎을 보는 즐거움과 보라계열의 꽃을 좋아하는 내게 큐레이터는 보라싸리를 추천해 주었다. 한때는 꽃보다는 푸르른 관엽식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꽃이 피는 꽃나무를 좋아하는 내게 팝콘 같은 꽃이 만발하기도 하고 꽃이 진 후에도 잎과 줄기 모두가 사랑받는 우아한 식물이라고 소개했다. 식물과 자주 대화한다는 내게 어쩌면 사계절 나눌 이야기가 정말 많을 거라는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시간만 나면 인터넷과 책자를 찾아보며 보라싸리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다.  물론 그들의 사생활은 어떨지 궁금해하며 보라싸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창가에서 키를 세우던 고구마 덩굴, 버리기에는 초록빛이 아까워 수염다발만 만지작거리다 뿌리의 반쪽을 잘라내고 볕 든 자리에 내려놓았다. 심장이 강하다면 반쪽을 도려내도 살아낼 것이라 생각하며. 뿌리 있는 것들은 그리 쉽게 제 생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헤아려본다. 살아가는 일은 녹록하지 않다. 사는 일이 버거워지면 한 번쯤은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붙잡아 줄 뿌리 한 개쯤 남아 있다면 쉽게 목숨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발길질이요 살아낸다는 것은 찬란한 몸부림이라는 말, 때로는 많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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