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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Sep 03. 2023

추워도 발톱은 자라고
슬퍼도 손톱은 화장을 한다

손님들의 향연

 

 시간은 많은 것을 잊게도 해주고 이루게도 해준다. 

전혀 생소하던 네일 비즈니스를 10여 년 정도하고 나니 이제 사업의 내용도 보이고 손님들과도 친하게 되었다. 처음 오픈했을 때 막연하게 다가오던 두려움들-시장 개척, 고객 관리, 종업원 모집, 재료 주문, 위생관리와 법적 문제 등-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그래서였을까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의 샵이 있는 지역은 생활수준이 낮고 규모도 작아 힘만 들뿐 크게 수익이 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둔다고 했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다. 결국 사업을 좀 더 확장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코네티컷주 스탬퍼드 지역 부촌에 고급스파살롱을 짓기로 했다. 고급인력을 고용하고 서비스 단가를 높이면 같은 노력에도 더 많은 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했다. 


 손님들은 이 소식을 듣고 많이 아쉬워했다. 우리도 이들과 헤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다행인지 불운인지 공사는 늦어지고 단가는 높아지며 사업자금을 계속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1년 만에 그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투자금 회수가 늦어지는 바람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몇 년에 걸쳐 겨우 원금은 받아낼 수 있었다. 그때가 막 리먼 사태가 터지고 미국경제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던 때였다. 원금이라도 건진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순진한 생각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다 보니 마음고생만 한 셈이었다. 결국 욕심에서 비롯된 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초심으로 되돌아갔다. 




  어쩌면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이국 네일살롱에서 인생 공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리 잡아가는 동안 수많은 손님들이 오고 갔다. 5불짜리(10년 후에야 7불이 되었지만) 매니큐어로 단순 손질만 하는 손님, 손발을 묶어하는 손님, 비싸지만 고급 스파를 하는 손님, 인조손톱과 필인 손님, 마사지 손님까지 서비스 종류도 다양했지만 손님들도 다양했다. 

 

 지나는 변호사였다. 늘 인조손톱을 길게 부치고 주로 고급상품을 서비스받았다. 그녀처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손톱케어는 예약을 해야만 했다. 성격이 활달한 지나는 옆사람들의 고민거리나 법적인 문제를 거들어주곤 했다. 가끔은 어머니를 모시고도 왔다. 어느 날 갑자기 샵에 와서 급히 손톱을 해 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눈물을 계속 흘리면서도 장례식을 위해 손톱을 길게 붙이던 지나. 약간의 문화충격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빨갛게 칠한 긴 손톱이 문득 궁금해진다. 


 마리는 늘 어머니 미미와 함께 오던 손님이다. 미미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하얀 카디건에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오곤 했다. 꼭 소녀 같았다. 마리는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며 맨해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한동안 마리도 미미도 보이지 않아 걱정했던 참인데 어느 날 마리만 혼자 왔다.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졌다 이제 조금 회복되셨어. 그런데 미미가 손톱 손질을 하고 싶어 해..."

하며 말끝을 흐렸다. 또 한 번 문화 충격 같은 것을 느꼈다. 병석에 있으면서도 손톱을 챙기는 미미할머니의 마음은 아름다움을 위한 여자의 허영일까. 아니면 품위를 지키려는 안간힘일까?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으나 논의 끝에 매니저에게 서비스를 부탁했다. 

어쩌면 미미할머니는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 


 낸시는 호텔에서 침구를 정리하는 할머니였다. 일을 놓은 지 오래되었을 것 같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루틴처럼 맨해튼에 나가 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 노년의 삶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건강을 지키고 자신의 손톱처럼 품위를 지키며 혹 허드렛일이라 여길 수 있는 일을 자랑스럽게 하고 있는 그녀의 당당함이 부럽기도 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 화두를 던져준 멋진 할머니였다.  


 샵에 올 때마다 내 커피와 머핀을 사 들고 오던 엘리자베스. 맨해튼에서 보석상을 하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부담되기는 했지만 그녀의 환대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말 건네기가 수월했다. 아마도 심리적 친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개인적인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늘 피곤한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던 그녀, 건강은 괜찮은지 갑자기 그녀의 큰 눈망울이 떠오른다. 


 문득 나를 '빌리언에어 와이프'라고 치켜세워주던 수잔과 다이애나도 생각난다. 

샵에서 일하고 집에 가서 또 저녁 준비를 한다는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던 그들... 

 "너네 재산은 모르겠지만 마음은 백만 불 짜리 이상이야!"라고 격려해 주던 손님들이었다. 

칭찬하는 말로 들었다. 결국 주인 닮은 사람만 끝까지 남는다 말, 반은 맞은 것 같았다. 


 어디 좋은 손님만 있었겠는가. 까다로운 손님의 불평도 가끔은 있었다. 손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해주고, 돈이 부족하다고 하면 그냥 보내기도 했다. 네일 비즈니스는 서비스업이다. 손님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만족할 때까지 해야 된다는 것이 회사방침이었다. 돌아보면 손님 때문에 크게 낭패본 적은 없었다. 모두 친구처럼 다정했다. 순박하고 착한 이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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