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창
뉴욕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뉴욕에 산다고 하면 흔히 맨해튼 같은 지역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맨해튼 거주자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맨해튼 아닌 다른 뉴욕시(퀸즈, 브루클린, 브롱스, 스태튼 아일랜드)에 살고 있다.
퀸즈 북쪽에 위치한 잭슨 하이츠(Jackson Heights). 분위기는 브루클린의 프로스펙팍과 비슷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훨씬 저렴하고 맨해튼과 인접한 장점도 갖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195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특색 없어 보이지만 거주하는 주민들은 그야말로 다양했다.
타운 주민의 절반은 라틴계이지만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주민들과 아시안계 주민들도 많다.
특히 남미, 러시아, 인도 등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잭슨 하이츠는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 수준은 낮은 편이다. 그러나 맨해튼이 가까워 변호사, 교사, 은행원, 부동산 중개인, 간호사, 자동차 정비사까지 직업군은 다양했다.
다양한 인종이 품어내는 변화무쌍한 활력이 항상 넘쳐나던 곳이다.
패밀리 하우스가 많아 인구밀도가 높은 것도 특징이다. 언니 모니카와 함께 오던 낸시는 멀리 사는 그들의 어머니 데보라까지 모시고 왔다. 안젤라는 사촌 키키를 데려오고, 키키는 친구 수잔을 소개했다. 빅토리아의 엄마인 제리는 테리의 상사이고, 제리를 따라서 헬렌이 방문했다. 이런 지역 구조 때문에 굳이 광고를 할 필요는 없었다. 손님한테 최상의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바로 최고의 광고 효과를 발휘했다.
손님들의 손톱도 가지가지였다. 잘 관리된 긴 손톱부터 짧은 손톱, 달걀껍데기처럼 부석부석한 손톱, 기름때에 절인 손톱까지… 이젠 손톱만 봐도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짐작이 간다. 길게 인조손톱을 붙인 사람은 대개 사무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주일마다 짧게 정갈하게 다듬는 사람은 간호사나 서비스 일을 한다.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박혀 있는 사람은 공장이나 정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친인척이 멀리서 찾아오면 딱히 갈 데가 없는 그들에게는 비싼 선물 중 하나가 손톱 발톱 스파선물이었다. 또한 길고도 힘든 타국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면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민생활의 설움과 피곤함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도 고국으로 돌아갈 때는 유행하는 멋진 손톱으로 치장해 볼 참이다.
그렇게 우리의 생업과 함께 한 잭슨 하이츠는 세상을 읽게 해주는 창 같은 역할을 했다. 한동안 소식조차 없던 제니퍼가 어느 날 한 살 된 딸아이를 안고 오기도 했고, 건장했던 브리지의 남편이 갑자기 죽었다는 비보를 보내오기도 했다. 누군가는 병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가져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파티 철이 다가오니 손톱 손질하러 오는 손님들도 조금씩 늘어난다.
연말이면 모든 고객들에게 나누어 주던 $5짜리 홀리데이 쿠폰을 올해도 준비했다.
이들은 겨울 동안 씀씀이를 줄이고 쿠폰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이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세련됨보다는 투박함과 정겨움이 묻어나던 곳.
은퇴를 하고 이곳을 떠나도 어쩌면 내내 그리워질 것 같은 잭슨 하이츠.
"아이 러브 잭슨 하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