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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인가 했더니 나무 위 전설의 기생식물 겨우살이

by 사람인척

한겨울 산을 걷다 보면, 잎을 다 떨군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둥글고 푸른 덩어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새가 지어놓은 둥지처럼 나뭇가지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것. 가까이 다가가면 조용히 생명의 기운을 뿜는 이 식물, 이름하여 겨우살이다.


어릴 때부터 산에 갈 때마다 저건 뭘까 싶어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있다. 마치 자기만의 리듬으로 사는 아이처럼, 계절에 상관없이 푸르른 잎을 달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높은 나무 위에 독립된 세계를 이루고 있는 듯한 모습이 늘 인상 깊었다.


새들이 저기에 집을 짓는 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새집’이 아니라, 스스로도 기생하고 또 누군가의 삶을 이어주는, 독특한 생존 전략의 결정체였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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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기생’이라는 오해와 ‘공존’이라는 진실 사이

겨우살이는 흔히 ‘기생식물’로 불린다. 엄밀히 말하면, 줄기 반기생식물이다. 다른 나무의 수액을 일부 빨아먹긴 하지만 스스로도 광합성을 하며 살아간다. 완전히 남의 것만 빼앗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자립도는 지키는 셈이다. 이 묘한 생존 방식이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뜻처럼 들려 이름마저도 겨우살이다.


그런데 겨우살이를 단지 기생식물로만 보기엔, 이 식물의 생태적 존재감이 너무 크다. 한겨울, 먹을 것이 사라진 산속에서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에게 생명을 잇는 유일한 보급로가 된다.


이 열매를 먹은 새는 씨앗을 소화하지 못한 채 배설하게 되고, 그 씨앗은 점액질 덕분에 다른 나무의 가지에 착 달라붙는다. 그렇게 또 다른 겨우살이가 자라난다. 말 그대로, 겨울을 ‘살게 해주는’ 존재다. 새와 겨우살이는 공진화의 아름다운 사례, 서로를 살리는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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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죽이는가, 숲을 살리는가?

겨우살이는 때로 기주 나무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특히 한 나무에 40개 이상 기생하면, 나무는 양분을 빼앗기고 서서히 고사한다. 하지만 이 죽음조차 숲에겐 생명이 된다.


거대한 나무가 죽으면 햇빛이 땅으로 내려와 하층 식물이 자라고, 부패한 줄기는 곤충의 서식처가 되고, 다시 조류와 포유류를 불러들이며 생물 다양성의 순환 고리를 완성한다. 그러니까 겨우살이는 숲의 죽음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생명을 증폭시키는 ‘자연의 재설계자’ 같은 존재다.


생태계를 넘어, 겨우살이의 놀라운 ‘약성’

이 독특한 식물은 오래전부터 약용 식물로도 알려져 있었다. 유럽에서는 암, 고혈압, 동맥경화 등에 민간 요법으로 널리 사용되었고, 동의보감에도 ‘요통, 종기, 혈맥과 뼈를 튼튼하게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참나무나 동백나무에 기생한 겨우살이는 약효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심혈관 건강: 올레아놀린산이 혈압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도와 뇌졸중이나 고혈압 예방에 효과적이다.


✔️항암효능: 렉틴 성분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항암 치료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염증 완화 및 이뇨작용: 관절염, 위염, 부종 개선에 사용된다.


✔️면역력 강화 및 혈당 조절: 항산화 성분이 면역을 높이고, 당뇨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약’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임산부나 어린이, 특정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섭취 전에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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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산물, 생명의 접착제로?

최근 영국 에식스 대학에서는 겨우살이의 점액질 성분, 특히 열매 속 점액에서 추출한 ‘버드라임(birdlime)’을 연구 중이다. 이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새를 잡기 위한 끈끈이 용도로 사용되어 왔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스티키 폭탄’을 만들 때 쓰이기도 했다.


이 버드라임의 점착성이 이제는 수술용 접착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수술용 실이나 인공 접착제보다 자연 유래 성분인 겨우살이 점액은 환경 친화적이고 생체 적합성도 높다.


아직은 실험 단계지만, 미래에는 ‘겨우살이 접착제’가 병원에서 생명을 지키는 데 사용될지도 모른다. 생태계의 이방인 같던 식물이, 이제는 생명 과학의 최전선에 서 있는 셈이다.


겨우살이, 보존해야 할 ‘전설의 생명체’

우리나라에도 다섯 종의 겨우살이가 자생한다. 그중 꼬리겨우살이와 참나무겨우살이는 희귀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기주 식물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남획될 경우 멸종 위험이 크다. 안타깝게도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국민 약초’로 알려지면서 무분별한 채취가 늘었고, 이제는 국립공원 내 고지대조차도 겨우살이에게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겨우살이는 단순히 ‘기생식물’이나 ‘민간약초’가 아니다. 생태계를 설계하고, 생명을 돕고, 심지어는 의학의 미래를 바꾸는 실마리를 품은 존재다. 이 식물의 생존이 바로 우리의 생존과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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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억해야 할 겨우살이의 가치

✅겨우살이는 조류의 생명줄이자 숲의 건강 지표다.


✅자연 속 공진화의 사례이자, 지속 가능한 생물 의학의 자원이다.


✅무분별한 채취는 단순한 식물의 멸종이 아닌, 생태계 균형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겨울 숲길에서 둥글게 자리 잡은 겨우살이를 발견했다면, 그저 ‘기생’이 아닌 ‘공존’의 의미로 바라보길. 그리고, 혹시나 땔감 삼아 꺾을 생각을 했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자. 그 작은 생명 안에는 생태와 의학, 진화와 인간의 미래가 얽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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