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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PA 필터 달린 공기청정기, 알레르기 효과는?

by 사람인척

“올해는 꼭 마스크 없이 봄을 맞고 싶었어요.”


[꽃피는 계절이 오면 들뜬 마음보다 먼저 찾아오는 건 재채기, 콧물, 가려운 눈이었다. 30대 직장인 이모 씨는 몇 해 전부터 봄만 되면 알레르기 비염에 시달렸다.


아침마다 잔뜩 붓고 간질거리는 코 때문에 약을 달고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 주변의 권유로 공기청정기를 들이게 됐고, HEPA 필터 제품이 ‘알레르기에 좋다’는 말에 기대를 걸어보았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많은 사람들이 알레르기 완화를 위해 공기청정기를 찾는다. 특히 ‘HEPA 필터’가 탑재된 모델은 알레르겐 제거에 탁월하다는 홍보도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면,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단지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심리적 위안일까, 아니면 실제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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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청정기, 알레르기 잡는 ‘첫 단추’일까?

공기청정기의 핵심 기능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속의 미세입자, 꽃가루, 반려동물 털, 곰팡이 포자 같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알레르겐)을 걸러내는 것이다.


특히 HEPA 필터(High-Efficiency Particulate Air)는 머리카락보다 수십 배 가는 유리섬유로 엮인 복잡한 구조를 통해, 0.3마이크론 크기의 입자를 99.97%까지 제거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꽃가루나 곰팡이 포자 같은 입자보다 훨씬 더 작은 크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기술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느냐는 점이다. 단순한 제품 스펙보다 실제로 집에서, 사무실에서, 교실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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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밖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

2025년 3월 21일, 미국 과학 전문 매체 Live Science는 “공기청정기는 알레르기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SUNY 다운스테이트 메디컬센터의 파옐 굽타 박사는 “기기마다 성능 차이가 있고, 사용자마다 반응도 달라 실제로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5년 Journal of Exposure Science & Environmental Epidemiology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12개월간 99개 교실에 HEPA 필터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결과, HVAC 시스템만 있는 교실보다 평균적으로 39.9% 더 낮은 미세입자 농도를 기록했다. 공기 중 알레르겐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수치적 감소가 알레르기 증상의 완전한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꽃가루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분명 도움될 수 있지만, 폐 기능 개선이나 약물 사용 감소, 삶의 질 향상까지 이르기엔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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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는 ‘복합 퍼즐’, 공기청정기는 한 조각일 뿐

공기청정기를 둘러싼 오해 중 하나는 “좋은 필터만 있으면 알레르기가 사라진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공기청정기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는 것. 알레르기를 완화하려면 다음과 같은 생활 환경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기적인 청소: 카펫, 침구 등에 쌓이는 먼지와 진드기는 공기청정기로는 제거할 수 없다.


✅적절한 환기: 창문을 닫아놓는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실내 이산화탄소와 습기는 알레르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습도 관리: 실내 습도는 40~60%로 유지하는 것이 곰팡이 증식을 억제한다.


✅반려동물 털 관리: 알레르기 환자가 있는 가정은 주기적인 빗질과 공간 분리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는 한 가정은, HEPA 필터 공기청정기를 거실과 방에 각각 설치했지만, 효과가 미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청소기 교체(진드기 전용 필터 장착), 침구류 자주 세탁, 식물 최소화 등 생활 습관까지 바꾸자 아이의 증상이 눈에 띄게 완화됐다. 공기청정기 하나로는 어려웠던 변화가, ‘작은 습관들’과 합쳐지며 시너지를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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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공기청정기를 선택해야 할까?


✔️HEPA 필터가 있는지 확인: 단순 먼지 필터가 아닌 ‘True HEPA’ 또는 ‘H13 등급’ 필터를 선택하자.


✔️공간 대비 용량 체크: 작은 기기로 넓은 공간을 커버하면 정화 효율이 떨어진다.


✔️소음 및 유지관리 여부: 필터 교체 주기와 소음 수준도 장기적인 사용에 있어 중요하다.


✔️위치 선정: 공기청정기는 방 한쪽 구석보다는, 공기 흐름이 원활한 위치에 설치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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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청정기, 기대와 현실 사이

공기청정기는 분명 유용한 도구다. 특히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심한 계절에는 기본적인 실내 공기질을 유지해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는 과하다. 마치 주방에 냉장고 하나 있다고 해서 요리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공기청정기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혹은 어떤 기대를 걸고 계신가요?


공기청정기는 알레르기를 줄이는 하나의 퍼즐 조각일 뿐입니다. 남은 조각들은 여러분의 생활습관, 집안 환경, 그리고 꾸준한 관리가 채워야 할 몫입니다. HEPA 필터가 당신의 숨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변화는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올해 봄, 당신의 숨결이 더 가볍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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