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운명(運命)
밤이 이슥해진 강변에선 모래톱을 핥는 물소리가 찰싹거렸다.
양신은 불놀이 진행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으나 막중한 책임감에 눌려 왕실과 혼사 문제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참담한 심경이나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여선아, 계백님 때문에 무척 황당했겠구나?"
여선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계백이란 분 얼마나 취했으면 그처럼 사람을 못 알아볼까요?"
"글쎄 말이다. 삼국인이 어울려 기분 좋게 술을 마셨는데 좀 과했던 모양인가? 그래도 나는 그 정도로 취했을 줄은 몰랐다."
"남정네들은 술에 취해도 취했단 말을 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오라버니도 조금 전에 몸을 일으키려다 도로 주저앉고 말았잖아요?"
"나는 계백님의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처럼 사람을 몰라볼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곤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긴 저도 계백님이 날 보던 눈길이 생각나요. 너무도 진지한 표정이라 사람을 몰라볼 정도로 취하신 것 같진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
"계백님 말처럼 나는 너와 똑 닮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요?"
"똑 닮은 여인이 있다면 대신 장안성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양신은 처한 현실이 너무도 다급하고 절망적이라 한숨만 나왔다.
여선도 양신과 단 둘만 남게 되자 닥친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피차 심신이 다 지쳤을 양신을 위로하고자 입을 열었다.
"동무들이 찾고 있을 텐데 오라버닌 그리로 가서 어울려 봐요."
"갈 테면 너나 가렴. 난 여기에 있겠다."
양신은 여선이 왕실과 혼사를 거부하거나 무슨 대책을 세우자는 말이 나오길 바라고 있었는데 쓸데없는 소리만 한다는 생각에 퉁명스런 대꾸를 흘러낼 수밖에 없었다.
여선도 양신의 격앙된 감정을 잘 알고 있어 머쓱하고 말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시름을 덜게 되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나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닐 것이라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때문에 아픈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 상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비석암 밑에서 했던 말 잘못 했어요."
"뭘?"
"오라버니 마음을 너무 상하게 만든 말 후회해요."
"여선아,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오라버니,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양신은 풀죽은 음성을 흘려내는 여선이 너무도 가엽게 느껴졌다.
"잘못한 쪽은 도리어 나다. 네 속이 오죽할 것인데 내가 그만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지 않았느냐? 나는 얼마나 미안하고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에 널 그렇게 돌려보내고 나서 후회막심이었다."
"미안해 할 사람은 저예요. 제가 속이 너무 좁았어요."
"나도 사과를 하려고 찾아다녔는데 어디서도 널 볼 수가 없었다."
양신의 대답에 여선은 배시시 웃었다.
"나는 숨어서 그러는 오라버니 꽁무닐 뒤쫓아 다녔지요."
"뭐라고? 정말로 그랬단 말이냐?"
양신은 어이가 없어 하다가 자기 다시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타국 손님들을 멋대로 내쫓는 장안성 처사를 그냥 둘 수가 없다!"
여선은 양신이 외친 말에 동감이지만 잠자코 있어야만 했다.
"안 되겠다! 장안성 사자를 만나서 따져보겠다."
양신이 말하고 앞으로 나가려 하자 여선은 와락 끌어안았다.
"오라버니, 그들을 만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가슴은 답답했다. 장안성 사자를 상대로 따진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약혼녀를 빼앗길 수가 없어 항의는 못할망정 사정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여선은 터지려는 울음을 씹고 있는데 양신이 절규처럼 외쳤다.
"나는 그냥 두지는 않겠다. 널 빼앗아 갈 장안성 놈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 아니, 장안성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겠다."
양신이 또 움직이려고 하자 여선은 끌어안고 늘어졌다.
"오라버니, 맑은 정신으로 가야지 술에 취해 무슨 말을 하겠어요?"
"나는 취하지 않았다!"
여선은 뿌리치려는 양신을 더욱 끌어안고 매달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밀고 당기다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 바람에 여선은 양신 밑에 깔리고 말았다. 남자의 무거운 체중을 감당할 수가 없음에도 여선은 자기도 모르게 두 팔로 양신을 껴안게 되었다.
그 순간 양신은 여인의 체취를 맡고 창황히 몸을 빼었다. 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데서도 보는 사람은 없어 안심을 하면서 여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선은 다시 사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대로 양신을 놔주면 부득불 영원한 이별이 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은 채 몸들이 굳어들었다. 여선은 이대로 함께 땅 속에 파묻혀 들고 싶은데 이번엔 양신이 두 팔에 서서히 힘을 가해서 그대로 몸을 맡겨놓았다.
두 사람은 부둥켜안은 채 얼마동안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둘은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걸음들을 떼었다. 양신은 한 팔로 여선의 어깨를 감고 끌며 걸었다. 그렇게 산모롱이를 돌고나자 비석암 쪽 불빛이 밤하늘의 일부를 백야(白夜)로 열어 놓았다.
사내의 가슴에 안긴 여선은 한기를 덜 느껴도 몸을 떨게 되었다.
"여선아, 춥니?"
"괜찮아요."
"내 털배자를 벗어줄까?"
"아뇨. 이대로가 좋아요."
"우리 어디로 가서 얘기를 좀 나눠보지 않겠니?"
"그렇게 해요. 어디로 갈까요?"
양신은 낮에 강을 건너다닐 때 탔던 거룻배를 떠올렸다.
"강을 건너가자."
"강을 건너면 어디로 가려고요?"
"마두골에 있는 진달래꽃 건조장으로 들어가면 춥지도 않고 조용히 얘기를 나눌 수가 있지 않겠니?"
"진달래 건조장 말예요?"
"싫으냐?"
"아녜요. 가겠어요."
여선은 선선히 대꾸하고 스스로 걸음을 빨리했다.
양신은 거룻배가 있는 곳에 이르자 여선을 태웠다. 노를 잡고 강 복판으로 저어나갔다. 비석암 쪽에 남은 불빛이 비쳐져 일렁이는 강물 위에 서 허연 띠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배는 강을 건너 물가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두 사람은 백사장을 가로 질러 걸었다. 산기슭에 이르자 거기서부턴 바닥이 몹시 울퉁불퉁해서 서로가 몸을 부축하듯 걸어갔다.
얼마 걷지 않은 곳에 나직한 지붕을 인 진달래 건조장들이 여러 채 엎드려져 있었다. 건조장은 오늘 같은 날 춤을 추다가 눈이 맞은 젊은 남녀가 숨어들기에 딱 좋을 장소였다.
양신은 한 건조장 앞에서 발걸음을 세웠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을지 몰라 바튼 기침 소리를 냈다. 몇 번 냈으나 안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손으로 판자문을 밀자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여선은 문이 열리자 갑자기 몸이 굳어들었다. 어둠의 공간 속으로 단 둘만이 들어가는 게 여간 주저되지 않았다. 양신은 그대로 서 있기만 하는 여선의 등을 가만히 떠밀었다.
"여선아, 다른 사람들이 볼지도 모른다."
여선은 그 말에 냉큼 안으로 들어섰다. 갈대로 지붕을 덮은 토담집 안은 한기가 한결 덜했다. 양신은 컴컴한 속에서 다시 꼼짝을 않고 서 있기만 하는 여선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건조장 안은 더없이 아늑했다. 바닥엔 무릎이 빠질 만큼 마른 진달래 꽃잎이 쌓여 있었다. 그런 속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걱대면서 매캐한 꽃향기가 콧속으로 차고 들었다.
두 사람은 캄캄한 공간 속에 있는 것에 묘한 두려움 같은 게 일었다. 더욱이 여선은 사내와 단 둘만이 있게 된 게 무섭기까지 해 그대로 몸이 굳어들고 말 것만 같았다.
그나마 별빛이 환기창으로 흘러들어 다행이었다. 숨을 죽이고 서 있기만 하던 두 사람은 차츰 어둠에 익숙해져 갔다. 양신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여선아, 그만 앉자. 이대로 서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니?"
양신이 권했지만 여선은 움쩍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선은 서 있는 것과 앉는 것은 왠지 다르다는 생각들이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대로 서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여선은 한 손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만히 눌렀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구부려 천천히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양팔로 두 무릎을 감싸 안고 잔뜩 웅크린 자세를 취했다.
양신은 여선을 데리고 왔지만 막상 할 말이 나오질 않았다. 공연히 입술만 바작바작 타들어 가듯 말라갔다. 답답한 가슴으로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힘겹게 겨우 입을 열었다.
"여선아, 여긴 한결 덜 춥지?"
"그래요."
여선도 떨려져 나오는 음성으로 겨우 대꾸했다. 어둠에 짓눌린 속에 가슴이 까닭 모르게 두근거렸다. 바닥에 늘어뜨린 손으로 까슬까슬한 진달래 꽃잎을 한 옹큼 쥐자 금세 땀으로 축축해졌다.
두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겨들었다.
해마다 다갈촌에선 불놀이가 끝나면 아녀자와 아이들은 진달래 꽃잎을 따 모았다. 꽃잎을 백사장에 널어 말린 뒤 야장방에서 썼다. 꽃잎을 우린 물에 단조한 쇠를 담금질하면 녹을 방지할 수가 있었다.
양신과 여선도 어릴 적엔 진달래꽃을 따는 일을 거들었다. 두 사람은 진달래를 따러 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때문에 마을의 아낙네들로부터 무척이나 놀림을 받았다.
"양신과 여선은 이담에 신랑 각시가 되겠다!"
"암, 천생연분이 될 걸."
여선은 어린 나이임에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귀뿌리가 빨개졌다.
"저것 좀 보지. 여선의 귓불이 빨갛게 되었어."
"양신은 좋아서 입이 찢어지는구먼."
어느 날 양신은 여선에게 물었다.
"여선아, 너는 천생연분이 무슨 소린지 알고 있니?"
여선은 배시시 웃다가 톡 쏘았다.
"그것도 모르는 오라버닌 멍청이야."
양신도 싱긋 웃으며 받았다.
"나도 안다. 우리가 혼인을 해서 신랑 각시가 된다는 말이지? 나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다."
"피이."
"여선아, 우리가 신랑 각시가 되는 게 싫으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선은 눈을 흘길 뿐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양신은 그런 회상에서 깨어나며 입을 열었다.
"여선아, 너하고 진달래꽃을 따러 다녔던 때가 그리워지겠다."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가 너무 붙어 다녀서 사부님한테 꾸중도 많이 들었지."
"아버지가 꾸중을 하시면 더 외딴 곳으로 숨어들었지요."
두 사람은 그런 얘기를 나눌수록 비감(悲感)만 짙어졌다.
젊은 시절에 반항심과 방랑벽이 심한 여준은 중원(中原) 땅을 비롯해 신라와 백제까지 여러 해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해 갓난애를 품에 안고 불쑥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는 웬 아이를 데려왔느냐고 묻자 여준은 자기 자식이라고 대답했다. 부모는 아들이 돌아온 것도 기쁜데 손녀까지 안겨 줘서 매우 좋아했다. 부모들은 손녀를 애지중지 키우며 아들에게 장가를 들 것을 권했다. 그런데 생각을 않는 아들이라 무진 애를 태웠다. 부모는 아들이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한 채 타계했다.
마을 사람들도 여준에 대한 궁금증은 마찬가지로 컸다. 그로인해 독신으로 사는 걸 두고 추측들만 난무했다. 그러다 가끔씩 여준의 입에서 나온 단편적인 말들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 있었다.
여준은 백제에서 한 여인과 사이에 딸을 낳았다. 그리고 여인이 죽어서 딸만 데리고 귀국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새 장가를 들지 않는 이유는 계모에게 어린 딸이 구박받을 걸 걱정 때문으로 여겼다. 여선은 나이가 들면서 부친에게 재혼을 권했지만 듣지 않았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또 다른 추측을 했다. 죽은 여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딴 여인에게 눈길을 돌리지 못 하는 것이란 말들까지 했다.
양신과 여선은 그런 여준을 두고 약속을 했다. 결혼을 하면 서로 간에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양신은 아들 노릇을 여선은 며느리 노릇을 하자기로 했는데 이젠 공허한 약속이 되었다.
"여선아, 올해도 진달래꽃은 피겠지?"
양신이 침묵을 깨자 여선은 힘없이 받았다.
"그러겠지요."
"올해는 네가 진달래꽃을 못 따게 되겠구나?"
여선은 그 말을 짜증스럽게 받았다.
"오라버닌 태평하게 그런 소리나 할 땐가요?"
양신은 머쓱해서 그녀의 손을 얼른 잡았다. 여름이면 자신에게 등물을 끼얹어 주던 작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앞으로 더는 못 받을 생각을 하자니 견딜 수 없는 반발심이 일었다.
"난 누구에게도 널 빼앗기지 않겠다. 도해선을 가만 두지 않겠다."
양신의 난데없는 말에 여선은 놀라 듯 반문했다.
"도해선을 가만 두지 않겠다니? 왜 그런 소리를 해요?"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뭘 알게 되었단 말예요?"
"네가 장안성으로 가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장안성으로 가게 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요?"
"도해선이 널 건무 왕제에게 후궁으로 삼을 것을 권했다."
"그 말 정말예요? 오라버니가 그 자한테서 직접 들었나요?"
"아니다. 다른 사람한테 들었다."
"다른 사람은 누군데요?"
"장안성에서 온 사자한테 직접 들었다."
"도해선이란 사람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요?"
여선은 놀라고 분개하면서 한편으로 집히는 점이 있었다. 도해선은 검술 대회에서 양신에게 패한 뒤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고 그 때문에 그런 행패를 부린 걸로 짐작이 갔다.
"나는 도해선을 그냥 놔두지 않겠다!"
양신이 분연히 외쳤고 여선도 분개하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여선아! 너는 장안성으로 가고 싶진 않겠지?"
"오라버닌, 내가 거길 왜 가고 싶겠어요?"
"나는 장안성으로 끌려가지 않을 방법을 궁리해야 하겠다."
"오라버니,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우린 도망을 칠 수밖에 없겠다!"
양신은 결연히 말하고 여선을 와락 끌어안았다. 여선은 가슴이 뭉개질 만큼 짓눌러들어 숨이 막혀들었다. 그래도 그렇게 나마 안겨 있자니 안도감에 젖어들 수가 있었다.
"오라버니, 저도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네가 한 말 진심이냐?"
"진심이 아니면 뭐겠어요?"
"좋다. 당장 결행을 하자."
"당장 어떻게 결행을 해요?"
"오늘은 모두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판이다. 내일부터는 장안성 사자가 혼사 건을 놓고 의논을 하려고 들 것이다. 오늘 밤에 떠나야 한다."
"그렇지만."
"왜? 그러느냐?"
"그래도 아버님껜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여선의 말에 양신은 표정이 굳어들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은 거기까진 미처 생각이 못 미쳤다. 그로인해 사부가 혼자서 뒷감당을 할 일도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양신이 아무런 말도 않자 여선도 음성에 힘이 없어졌다.
"하긴 어떻게 아버지에게 그런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어요? 오라버니 말대로 우리끼리 그냥 떠날 수밖에 없겠어요."
그런데 양신은 뒤늦게 반성하며 냉정을 되찾아 갔다.
"우리가 도망을 치면 사부님이 무슨 일을 당하실지 모른다."
여선도 부친이 곤경에 처할 할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친은 장안성의 추궁을 면치 못할 것인데 자신은 사내와 도망칠 생각만 한 게 여간 부끄럽고 죄스럽지가 않았다.
"무슨 대책을 세우지 못할 내가 널 여기로 데려왔구나!"
"오라버니, 그렇지만 얘기를 더 나눠야 바야 하겠어요."
"아니다. 얼마나 잘 못된 생각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널 빼앗기지 않으려고 왕실을 상대로 엄청난 짓까지 벌일 마음을 먹었다니!"
양신의 말에 여선은 앙연히 반발했다.
"나는 오라버니와 헤어지지 않겠어요."
"나도 그렇다만 무슨 방법이 없지 않느냐?"
"나는 오라버니한테 크게 실망했어요. 대장부가 그렇게도 용기가 없단 말예요? 장안성으로 끌려갈 날 그냥 지켜만 볼 셈인가요?"
양신은 대답을 못하는데 여선이 입을 열었다.
"나는 결심했어요."
"무슨 결심을 했단 말이냐?"
"혼자서라도 도망을 치겠어요."
"그건 가당치도 않을 소리다!"
양신은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따라갈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될 일이라 견딜 수가 없는 갈등에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오라버니, 어딜 가려고 그래요?"
"이제라도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보려고 한다."
여선은 그런 대답을 하는 양신의 두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양신을 도로 자리에 주저앉혀 놓았다.
"이제부터 오라버니에게 묻겠어요. 오늘 밤에 나 혼자서라도 도망을 친다면 오라버닌 어찌 할 생각인지 대답을 해 봐요."
양신은 묵묵부답이고 여선은 다그쳤다.
"왜 대답을 못해요? 내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게 진심인가요? 내가 장안성으로 끌려가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건가요?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만 있지 말고 대답을 좀 해 봐요."
양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이를 악물다가 대답했다.
"여선아, 낸들 왜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니? 나도 너와 함께 어디로 도망을 치고 싶다.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는 사정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단 말예요? 오라버니가 떠나질 않겠다면 나 혼자서라도 떠날 수밖에 없겠어요."
"여선아, 너 혼자 떠나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함께 가지 않고 혼자 남을 오라버니가 뭘 할진 내 알바가 아니죠."
"그럴 수는 없다. 어딜 가도 함께 가고 남아도 함께 해야 한다."
여선은 애매모호한 말만 하는 양신의 가슴을 두 주먹으로 마구 쳤다.
"무슨 결단을 내려요. 이도저도 아닌 오라버니의 진심은 뭔가요?"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양신은 스스로도 자신이 뭔 소릴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선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말만 늘어놓는 양신에게 더욱 화를 냈다.
"이제야 오라버니 속셈을 알만하겠어요. 내가 장안성으로 끌려가고 나면 다른 처녀와 혼인을 할 생각이군요?"
"여선아,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 해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끌려가는 걸 그냥 두고만 볼 건가요?"
여선은 계속 다그쳤지만 양신은 무어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여선아, 그만 좀 해라."
양신은 난감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여선이 악을 썼다.
"나는 답답해 죽겠어요. 오라버닌 대체 날 어떻게 할 생각예요?"
여선은 양신이 함께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기도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태도만 보이는 양신의 심정을 모르지 않았다.
"여선아, 나로선 사부님을 배신할 수가 없다."
여선도 그 말에는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 음성을 누그러뜨렸다.
"오라버니,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요?"
"어떻게 말이냐?"
"아버지도 이번 일을 받아들이고 싶진 않을 심경이므로 혹시 속으론 우리가 어디로 도망치길 바라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부님이 우리가 도망치길 바라신다고?"
"아버지는 진작부터 오라버닐 사윗감으로 정해 놓으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지경을 당하셨으니 그 속이 오죽 상하겠어요?"
"나도 그러실 걸로 알지만 그렇다고 도망을 칠 순 없지 않는가?"
"아버진 차마 도망을 치라는 말씀을 하실 수는 없겠지만 내심으론 그렇게 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계실지도 모를 일예요."
양신은 그 말에 귀가 솔깃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부님이 설사 그런 생각을 하신들 우리가 따를 순 없겠다. 만약에 우리가 도망을 칠 경우 사부님은 장안성으로부터 무슨 문책을 당하실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나는 오라버니가 원망스러워요."
"내가 원망스럽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오라버니 때문에 이런 사단이 벌어졌지 않아요?"
"나 때문에 이런 사단이 벌어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버진 지난해 혼인을 시키려 했는데 오라버니가 미뤘잖아요?"
양신은 그런 말을 듣고 비로소 후회가 일었다.
지난 해 여름 여준은 두 사람에게 갑자기 혼사 얘기를 꺼냈고 가을이 오면 혼례식을 치르겠다고 했다. 그때 양신은 속으론 기뻤지만 겸연쩍은 마음에 한 해만 더 있다 해도 좋겠다는 대답했다. 그러나 그 말은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은 말인데 여준은 그걸 받아들였다. 만약에 끄때 응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오라버니, 우리가 이런 저런 걸 따지고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어요. 일단은 도망을 치고 볼 일이예요. 걱정은 나중에 해도 돼요."
양신은 그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오라버니가 응하지 않겠다면 나대로 생각이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겠다는 말인가?"
"오라버니가 도망치지 않겠다면 나는 다른 결단을 내리겠어요."
"어떤 결단을 내리겠다는 말인가?"
"이제 남은 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뿐예요."
"무슨 끔찍한 소리냐? 나는 죽어도 되지만 너는 안 된다!"
"왜 오라버닌 죽어도 되고 난 안 된단 말예요?"
"자식이 부모보다 앞서는 일처럼 큰 불효는 없지 않느냐?"
양신은 그런 대답을 했지만 가슴 속은 견딜 수가 없게 슬펐다. 여선은 그런 양신의 가슴에 얼굴을 다시 묻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죽기로 마음을 먹으니 두려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겠어요."
"죽는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마라!"
"나는 도리어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여선아, 네 심정은 이해가 된다만 그런 소린 그만해라."
"내가 오라버니와 이승에서 맺지 못할 인연이라면 저승에서라도 맺으면 되지 않겠어요? 내가 먼저 저승으로 가서 오라버니를 기다리겠어요."
여선은 말하고 잽싸게 몸을 일으킨 뒤 양신의 등에서 밀두도를 뽑아들었다. 양신은 놀라 올려다보는데 여선이 칼끝으로 자기 목을 겨누었다.
"여선, 무슨 짓인가?"
양신은 튕겨지듯 팔을 뻗어 칼을 잡은 여선의 팔목을 틀어쥐었다.
"놔요!"
여선은 손목을 빼려고 기를 썼다. 양신은 그럴수록 더욱 틀어쥐었다. 끝내 여선은 손에서 칼을 떨어뜨렸다. 양신은 그걸 회수해서 칼집에 도로 꽂고 허공을 노려보기만 했다.
잠시 후 고요함 속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일어났다. 양신은 무심코 뒤를 돌아다보다가 흠칫 놀랐다. 어느 틈에 상체에서 옷을 벗어 내린 여선은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었다.
희미한 별빛이 환기창으로 흘러드는 속에 하얀 젖무덤이 흔들렸다. 양신은 다가드는 여선 앞에 기겁을 하듯 외면을 했다. 여선은 벗은 가슴을 그대로 양신의 얼굴로 마구 들이밀었다.
"여선아, 왜 이러느냐?"
양신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다가든 여선이 가슴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여선은 가슴에 파묻히고 만 양신의 뒤통수를 두 팔로 끌어안고 더욱 깊숙이 끌어들였다.
"오늘로 이승에서 마지막 밤이에요."
양신은 얼굴이 젖무덤에 파묻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쉬려고 얼굴을 모로 틀자 차갑고 빳빳한 젖꼭지가 볼을 찔러들었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라버니 품에 안기겠어요."
여선은 말하고 양신을 그대로 바닥에 떠밀었다.
동이 트기엔 아직 이른 시각이었다.
진달래 건조장의 통풍구 창으로 희끄무레한 여명이 스며들었다. 잠에서 깬 양신은 곁을 돌아다보았다. 여선은 진달래 꽃잎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양신은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제 밤에 벌어졌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앞으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양신은 중얼거리다가 어제 밤 여선과 세운 계획을 떠올렸다. 일단 여선은 장안성 사자를 따라 다갈촌을 떠난다. 그 뒤를 몰래 쫓던 양신은 적당한 장소에서 여선을 구출해 낸 뒤 함께 도망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장안성에선 여준에게 무슨 책임을 묻기가 힘들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해서라도 여준의 부담감을 덜어내게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곧 해가 떠오르게 되었다. 양신은 남들의 눈에 띄기 전에 여선은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너무도 곤하게 자고 있는 그녀를 깨울 수가 없었다. 그보다 먼저 심한 갈증을 풀고자 혼자 건조장을 나왔다. 강변으로 걸어가 물가에 이른 뒤 강물을 두 손으로 퍼 마셨다.
한결 머릿속이 맑아진 채 부윰해진 강 건너 쪽 백사장을 바라보았다. 백사장엔 여러 채의 천막들이 조용히 엎드러져 있었다. 그 속엔 밤을 새며 놀았던 젊은이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직은 나다니는 자가 없으므로 눈에 띠지 않게 여선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게 해야 했다.
양신은 몸을 급히 돌려 세운 뒤 빠른 걸음으로 진달래 건조장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몇 발자국을 걷지 않아 불현듯 머릿속에 떠 오른 사부의 얼굴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양신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그 음성이 귓전을 쩡하게 쳤다. 그런 여운 속에 학문이건 무예이건 바른 인성부터 길러야 한다는 사부의 가르침이 일었다. 그러나 자신은 어제 밤 여선과 살을 섞고 말아 발걸음이 멈춰졌다.
왕실과 혼사는 거역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너무도 엄청난 죄를 범했다. 여선은 장안성으로 가야 하고 자신은 야장의 본분을 다 해야 했다. 자신을 키워주고 딸까지 주려던 은인인 사부의 은공을 저버리는 배신이었다. 밀두도를 자신에게 물려준 건 여선을 포기하라는 뜻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자 찝찔한 피가 입안에 고여 들었다.
다시 진달래 건조장으로 돌아가면 안 되었다. 급히 방향을 틀어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부와 여선을 위해선 무조건 이대로 걷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목적지는 없지만 그대로 계속 걸어야만 했다. 당분간은 다갈촌을 떠나 있기로 마음을 정했다.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양신은 마두골에서 십여 리쯤 하류로 내려와 있었다. 어디쯤서 어제 밤 여선과 진달래 건조장으로 갈 때 탔던 거룻배가 떠내려 온 걸 발견했다. 그 거룻배를 보자 또 여선이 걱정되었다.
"여선아, 날 용서해라. 나는 잠시 다갈촌을 떠나 있으련다. 이대로 있으면서 사부님의 낯을 도저히 뵐 수가 없겠다."
양신은 중얼거리고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사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나중이고 일단은 떠나야만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를 않으면 자신은 또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지 몰랐다. 스스로에게 주술(呪術)이라도 걸듯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선은 꿈속에서 왕실 검사단을 따라가는 양신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러나 양신은 뒤도 돌아다보질 않고 가서 발버둥질을 치며 울었다. 흐느껴 울다가 불현듯 눈이 뜨여졌다.
건조장 안으로 이른 아침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그런데 양신이 보이질 않았다. 먼저 집으로 돌아간 것일까? 그랬다면 왜 날 깨우질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급히 옷을 입고 매무새를 고친 뒤 건조장을 나섰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지만 양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자신을 누가 볼까봐 더럭 겁이 났다. 행여 양신과 건조장에서 밤을 보낸 일이 알려지면 큰일이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자 나루터를 향해 뛰었다. 나루터는 남들 눈에 띄기 쉬운 곳이라 산모퉁이를 돌고나서 그쪽을 살폈다. 강변엔 도강선(渡江船)이 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갈촌의 도강선은 다른 나루터에선 볼 수가 없게 컸다. 사람을 백여 명쯤은 한꺼번에 태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강의 양안을 가로 지른 굵은 쇠줄을 잡아당겨 건너 다녔다.
여선은 사람들이 나다니기 전에 강을 건널 조급증이 일었다. 뜀박질을 친 끝에 강변에 당도했다. 숨이 턱에 닿은 채로 배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빈 배인 줄로만 알았는데 고물 칸에 등을 기대고 앉은 석해(汐垓)가 보였다. 말없이 이물 칸 쪽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자 석해가 일어나 쇠줄을 잡고 배를 움직였다. 여선은 석해에게 무슨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얼굴이 홧홧 달아올라 강물만 내려다보면서 석해가 왜 혼자서 배에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석해는 어제 밤 양신과 여선이 진달래 건조장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 남녀가 그 속에서 밤을 새우는 동안 부근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새벽녘에 양신이 하류로 떠나는 것도 보았다. 그 모양은 왠지 모르게 고향을 등지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양신에게 깊은 동정을 느끼나 여선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두 사람이 건조장에서 밤을 지낸 게 알려지면 엄청난 파문이 일게 되었다. 그걸 비밀에 부치자면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여선을 얼른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런 생각에 밤을 샜다.
배는 강을 건너 마을 쪽에 닿았다. 여선은 냉큼 뛰어내려 모래사장을 뛰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로 뛰는 여선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석해는 아직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여선은 마을의 고샅을 돌기까지 숨 가쁘게 뛰었다. 아무도 부딪히지 않고 집에 당도해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만히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집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발걸음 소릴 죽여 마당을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자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집안의 동정을 살폈다. 양신이 돌아왔다면 사랑채에 있을 것이었다. 만나보고자 몸을 일으켰으나 발걸음을 내딛을 수가 없었다. 불현듯 어제 밤 그와 살을 섞은 일이 떠올랐다. 도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도저히 양신의 얼굴을 대할 수 없을 것 같고 어제 밤에 나눈 약속을 떠올렸다. 자신은 장안성 사자를 따라나서고 양신은 몰래 뒤를 따라 오다 구출해 내기로 했다. 그 약속이 뜻대로 이뤄질지 몰라 불안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걱정과 함께 머릿속엔 또 다른 의문이 일었다. 양신은 무엇 때문에 자신을 건조장에 남겨둔 채 혼자서만 돌아왔을까?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이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양신은 계속 걸으며 여선을 걱정하고 있었다. 건조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갔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뒤돌아보는데 또 다시 사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돌아가면 절안 될 일이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아무 것도 보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이대로 다갈촌을 떠나야 한다며 자신을 채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선아, 미안하다. 사부님,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왕제의 후궁이 될 여선을 범한 것은 왕실의 반역자가 된다. 반역자가 살아남을 길은 어디로 떠나는 길밖에 없었다. 되돌아간다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지도 몰랐다. 모두를 위해서라도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어디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가시는 분, 양신 야좌님이 아니십니까?"
양신은 두리번거리다 강 한복판을 떠내려 오는 범선을 발견했다. 신라 야장선(冶匠船)의 뱃전에서 해론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해론님! 배를 좀 태워 주십시오."
양신은 그쪽 대답을 듣지 않고 강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해론은 야장선으로 헤엄을 쳐 오는 양신을 보고 당황했다. 얼른 밧줄을 찾아들고 나와 거반 가까워진 양신에게 힘껏 던졌다.
"양신님, 밧줄을 잡으시오."
양신은얼음장이 떠내려 오는 강물 속에서 헤엄을 쳐서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들었다.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는 속에 안간힘을 다해 밧줄을 겨우 잡을 수가 있었다.
야장선에선 밧줄을 잡아당겨 양신을 뱃전으로 끌어올렸다. 신라 야장들은 돌연한 사태 앞에 쑤군거렸다. 해론은 배에 오른 양신의 젖은 옷부터 벗기고 물기를 닦아주었다.
양신은 미안해하며 입을 떼었다.
"해론님, 소동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야장선의 선장인 구미(丘彌)는 이해가 안 되는 듯 물었다.
"양신님, 어디를 가는 길인데 찬 물 속으로 뛰어드십니까?"
"구미님, 저 때문에 놀라셨겠지만 강 하구까지만 태워다 주십시오."
구미는 이상한 표정만 짓는데 해론이 물었다.
"양신님, 우리에게 미리 말씀을 하셨다면 처음부터 태워드렸을 것인데 왜 사서 이 고생을 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어딜 떠나게 되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해론은 요령부득의 양신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손을 잡고 갑판 밑 선실로 끌었다. 선실 안으로 들어선 해론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양신님, 하구까지는 무슨 일로 가십니까?"
"저는 철장님 지시를 받고 어디를 가던 중입니다."
"외람된 질문이나 다갈촌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저도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양신은 또 다시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해론은 아침에 작별 인사 차 양신을 찾아 갔다. 그러나 만나지를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계백을 만났다. 계백 역시 양신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신라 야장선이 떠날 때도 다갈촌의 야장들은 전부 나와 환송해 주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양신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야장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양신님, 언 몸이 확 풀리게 더운 국밥을 말아 오겠습니다."
"해론님,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배가 바다로 나가기 전에 점심을 먹으려던 참입니다. 지금쯤 밥이 다 지어졌을 테니 제가 얼른 한 그릇 말아 오겠습니다."
"해론님, 공연한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양신이 미안해하자 해론은 손을 내저으며 선실을 나갔다. 잠시 후 국밥 한 그릇을 들고 돌아왔다. 양신은 추위를 떨쳐내려고 허겁지겁 국밥을 퍼먹었다.
"양신님, 아침을 못 드셨나 봅니다."
"못 먹었습니다."
해론은 아침을 먹지 못한 이유를 물으려는데 양신이 물었다.
"해론님, 백제 야장들도 떠났습니까?"
"그 쪽은 내일 떠나기로 되었답니다."
"내일 떠난다고요?"
"양신님은 그걸 모르셨습니까?"
양신은 대답을 못하는데 해론이 말을 이었다.
"장안성 사자도 예정을 앞당겨 내일 떠난답니다. 백제 야장들도 함께 동행해서 장안성으로 간 뒤 거기선 배를 타고 본국으로 간답니다."
양신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해론은 양신이 어딘지 불안한 기색인 걸 느꼈다. 더욱이 다갈촌의 일을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아 그 점과 연관을 지어 생각을 해보면 의문이 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다갈촌 야장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어딘지 침울했던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양신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해론의 눈길을 의식하며 국밥을 입에 퍼 넣기를 열중했다. 그러나 불안한 기색으로 숟가락을 놓고 한숨을 흘려내고 말았다. 그리고 야장선에서 내려 다갈촌으로 되돌아 갈 생각을 하며 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해론은 양신이 불안감에 젖은 듯한 이상한 행동을 보며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양신도 그런 눈길을 의식하듯 해론의 눈치를 살피며 도로 자리에 주저앉자 해론이 입을 열었다.
"양신님, 저는 아침에 작별인사를 하려고 찾아 갔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양신님을 뵙지를 못해 다른 야장들에게 어디에 계신지 알아 봤지만 아무도 그걸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양신은 짧은 대답만 되풀이 했다.
"양신님, 강 하구까지 가신다면 거긴 상당히 먼 길이 아닙니까? 거기서 오늘 중으로 다시 다갈촌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양신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반문했다.
"해론님, 제가 다갈촌으로 돌아가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내일 장안성으로 떠나실 여동생을 배웅해야 되지 않습니까?"
"내일 장안성으로 떠난다고 하셨습니까?"
양신은 반문하다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으나 해론을 의식해 도로 주저앉았다. 여선은 자신이 사라진 걸 알게 되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랐다. 장안성으로 순순히 따라가지 않고 자결을 할 수도 있었다.
해론은 심한 불안감에 젖은 듯한 양신을 바라보다 물었다.
"양신님, 어디를 무슨 일로 가시는지 말씀해 주실 순 없겠습니까?"
양신은 그 질문을 받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해론님, 저는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삼한 땅을 두루 구경을 해 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해론님은 이번에 고구려 산천을 구경하셨지 않습니까? 저도 신라와 백제 땅을 둘러보고 싶은데 이 배를 타고 그냥 가봤으면 합니다."
해론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말로 여기며 대답했다.
"양신님, 사나이는 세상을 두루 돌며 견문을 넓히면 좋지요. 하지만 양신님은 무슨 이유가 있어 이 배를 타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양신은 그 말을 듣고 불쑥 물었다.
"해론님, 제가 이 배를 타고 신라엘 갈 수는 없겠습니까?"
해론은 떨떠름해하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이 배로 말씀입니까? 다른 데는 모르나 신라엔 갈 수가 있지요."
"해론님, 정말 제가 갈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신라 사람은 고구려를 다녀가는데 고구려 사람이라고 신라에 못 갈 것은 없지요. 그런데 양신님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해론님, 이해가 되지 않을 점이 무엇인지요?"
"양신님은 철장님 명을 받고 어디를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라로 가시겠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이 아닙니까?"
양신은 대꾸를 못하고 우물쭈물 했다.
"양신님, 신라엘 가려면 철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론의 질문에 양신은 묵묵부답으로 흐르는 강물만 내려다보았다.
"양신님,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순 없겠습니까?"
양신은 그 질문에 변명처럼 다른 말을 꺼냈다.
"나는 해론님을 사귄지가 며칠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해론님에게 친근감을 느껴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저 역시 양신님에게 여간 끌리지 않습니다. 정히 신라에 가고 싶다고 하시면 저로선 매우 반길 일이나 한편으론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양신은 망설이다 또 다른 말을 꺼냈다.
"해론님, 이 배가 강 하구에 이르면 저는 내리겠습니다."
"강 하구에서 내리면 그 다음엔 어디로 가실 겁니까?"
해론의 질문에 양신은 될 대로 되라는 듯 대답했다.
"하구에서부턴 북방으로 행선지를 잡을까 합니다."
양신의 말이 하도 오락가락이라 해론은 궁금하기가 짝이 없었다.
"북방으로 가신다면 철장님의 지시를 받고 가시는 겁니까?"
"나는 그저 정처 없이 길을 떠난 사람입니다."
해론은 양신의 대꾸가 도무지 엉뚱하기만 해서 어이가 없었다.
"양신님, 왜 자꾸 이상한 말씀만 하십니까?"
"나도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양신님과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는 뵐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건 너무도 섭섭한 마음이라 자꾸만 관심이 가게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해론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저로선 반갑기까지 합니다."
"주제 넘는 소리가 되겠지만 저는 양신님을 돕고 싶습니다."
"해론님이 절 도와주신다면 뭘 어떻게 도울 수가 있습니까?"
"저는 양신님을 돕지 못하면 평생을 두고 마음이 편치 못할 것 같습니다. 먼저 양신님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부터 알고 싶습니다."
"해론님이 저를 돕는 건 신라로 데려가는 일 뿐입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신다면 사정을 털어놓을 수가 있겠습니다."
해론은 그 말에 자기도 모를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사정을 알면 신라로 모시고 갈 용의가 있습니다."
양신은 그 대답에 안색이 펴지며 반문했다.
"해론님, 정말 그렇게 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해론님, 정말 고맙습니다."
해론은 이제부터 속사정을 털어놓을 줄 알았는데 양신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실망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이 일었다. 양신을 신라로 데려가는 것도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양신님, 저로서도 모시고 가는 일에 좀 걱정되는 점이 있습니다."
"해론님, 뭐가 걱정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신라로 모시고 가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신라에 머무시는 동안에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생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그럽니다."
"해론님, 그런 걱정은 하시지 마십시오. 저는 앞으로 신세를 지게 될 사람입니다. 웬만한 어려움쯤은 다 참아낼 수가 있습니다."
해론은 그 대답에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데려갔다가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한번 꺼낸 말을 번복하기가 뭣해서 일단 부딪혀 보자는 뱃장을 세우고 말했다.
"양신님, 저는 잠시 구미님을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양신은 해론이 선실을 나가자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
반문하고 선창 밖을 흐르는 산야에 무거운 눈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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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부여국(夫餘國)
부여국은 현토(玄菟) 북쪽 천 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와 동쪽은 읍루(挹婁)와 서쪽은 선비(鮮卑)와 접해 있다.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는데 지방이 2천리로 본래는 예(濊) 땅이다. 처음에 북이(北夷)가 이국왕(離國王)을 자루에 넣어가지고 국외로 나갔더니 그 시녀(侍女)가 뒤에 태기(胎氣)가 있었다. 왕이 돌아와서 죽이려고 하자 시녀가 말하기를 “전에 보니 하늘 위에 크기가 계란만한 이상한 기운이 있어, 나한테 와서 항복했는데 그런 뒤로 태기가 있었습니다.”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그녀를 가두었는데 뒤에 사내애를 낳았다. 왕은 이이를 돼지우리에 버리게 했다. 그랬더니 돼지가 제 입김을 불어 주어 아이는 죽지는 않았다. 다시 마구간으로 옮겼니 말도 그렇게 했다. 왕은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그 어미에게 되돌려 기르고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했다. 동명은 자라면서 활을 잘 쏘았다. 왕은 그걸 보고 그 용맹스러운 것을 꺼려 다시 죽이려고 했다. 동명은 달아나 남쪽으로 가 시엄수(施掩水)[고려에 있던 개사수(蓋斯水)인 듯하다.]에 이르렀다. 여기서 동명이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가 전부 모여 물에 떠서 그걸 타고 건너 부여에 이르러 왕 노릇을 했다. 그곳은 동이 땅 안에서 가장 좋은 곳이다. 땅에선 오곡이 잘 되고, 또 이름 있는 말[馬], 붉은 옥(玉), 초놜(貂豽), 등이 난다. 큰 구슬은 대추만 하고 나무를 둘러 성(城)을 만들었고 궁실, 창고, 감옥이 있다. 사람들은 추하고, 크고, 씩씩하고, 용맹스러우며, 근실(勤實)하고 인후(仁厚)해서 도적질이나 노략질을 하지 않는다. 또 활과 화살, 칼, 창같은 병기(兵器)를 잡는다. 그들은 육축(六畜)으로 관직명을 삼았다. 그래서 마가(馬加), 우가(牛加), 구가(狗加) 등이 있다. 고을에도 모두 가(加)의 이름을 부였다. 음식을 먹는데 조두(俎豆)를 쓰고 사람들이 모일 땐 벼슬이 높은 이에게 절하고 잔을 씻어 술을 권하고 읍하며 사양해 가며 마루에 오르고 내린다. 섣달엔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이런 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여러 날을 두고 노래와 춤을 추며 놀며 이것을 영고(迎鼓)라고 한다. 이 기간엔 형옥(刑獄)을 다스리지 않고 죄수를 석방한다. 군사에 관한 일이 있을 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소를 잡아 그 발자국으로 길하고 흉함을 점친다. 사람들은 길을 다닐 때도 밤낮으로 노래를 부르기 좋아해서 길마다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풍속은 형벌을 베푸는 게 몹시 엄하고 급해서 죽음을 당하는 자는 그 집의 식구들을 모조리 종으로 삼는다, 한 사람이 도둑질을 하면 열두 갑절을 물린다. 남녀 간에 음란한 짓을 하면 모두 죽인다. 질투하는 계집을 미워해서 이미 죽은 자도 그 시체를 산 위에 갖다 버린다. 또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 사람이 죽으면 곽(槨)은 있어도 관(棺)은 없다. 사람이 죽으면 순장(殉葬)시켰고, 그 숫자가 많으면 백 명이나 되었다. 임금이 죽으면 옥갑(玉匣)에 넣어 장사를 지냈다. 한(漢) 나라 조정에선 항상 미리 옥갑을 만들어 현토군(玄菟郡)에 보내 두었다가 임금이 죽으면 갖다 장사를 지내게 했다. 건무(建武) 년 중에 동이의 모든 나라들이 와서 뵈었다. 25년엔 부여 왕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니 광무제(光武帝)는 후하게 답례를 보냈다. 이에 해마다 사신들의 왕래가 있어 서로 통했다. 안제(安帝) 영초(永初) 5년 부여 왕이 처음으로 보병 7, 8천 명을 거느리고 낙랑(樂浪)을 침략해 관리들을 살상하고 그 뒤에는 다시 돌아와 붙었다. 영녕(永寧) 원년(元年)[後漢 제6대 임금 안제 임금 때 연호 서기 120년]엔 아들 울구대(尉仇台)를 보내 대궐에 들어가 뵙고 공물을 바치니 천자(天子)는 울구대에게 인수(印綬)와 금백(金帛)을 주었다. 순제(順帝)[후한 7대, 영화(永和) 그때 연호(年號) 서기 136-141년] 원년에 그 임금이 서울에 와서 조회하자 천자는 황문고(黃門鼓)를 만들어 피리를 불며 놀게 하고 보냈다. 환제(桓帝) 연희(延憙) 4년에 조하(朝賀) 드리고 공물을 바쳤다. 영강(永康) 원년에 왕부대(王夫台)가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현토를 친입하자 현토 태수 공손역(公孫域)이 쳐서 깨뜨려 1천여 명을 베었다. 영제(靈帝) 가평(嘉平) 3년에 이르러 다시 글을 받들고 와서 공물을 바쳤다. 부여는 본래 현토군에 소속되었는데 헌제(獻帝) 때 그 임금이 요동에 소속되길 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