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나라 3.장안성

3. 장안성

by 정완기

3. 장안성(長安城)

장안성엔 봄이 왔으나 영양왕(嬰陽王)은 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수국(隋國) 황제 양광(楊廣)이 고구려 정벌을 선언했고 본격적인 침공 준비로 들어간 정보가 속속 입수되었기 때문이다.

양광은 고구려가 번속(藩屬)과 조근(朝覲)하지 않음을 침공의 구실로 삼았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아예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있었다. 영양왕의 얼굴엔 수심만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국은 백성들이 4천만이 넘는 대국이었다. 전력(戰力)은 그런 인적자원에서 나오게 되는데 고구려 백성은 6백여 만에 불과했다. 비교가 안 될 큰 격차라 전쟁을 벌이면 고구려의 패망은 불을 보듯 뻔했다.

초비상이 걸린 고구려 백성들은 불안감에 떨었고 영양왕은 방비책을 세우기에 고심이었다. 그런데 왕제(王弟)인 건무(建武)는 불만이 컸다. 그 이유는 국왕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국과 맞서려는 것은 멸망을 자초할 뿐이라 복속을 주장했다.

건무가 복속을 주장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없지도 않았다. 국왕에겐 태자가 없었다. 때문에 보위 승계는 이복동생인 자신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면 옥좌에 앉아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때문에 오직 국체를 보존시킬 방법을 찾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국왕도 건무의 그런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짐이 오늘 널 부른 이유를 알겠느냐?"

"폐하, 신은 모르겠사옵니다."

"그동안 너는 수국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는데 힘을 기울여 왔다. 그로인해 수국의 사정과 동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폐하, 신은 그런 일을 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정확한 판단과 예견을 할 수가 있음을 자부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요즘에 네가 보이는 행태는 뭐냐? 그 때문에 짐은 여간 큰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음을 알기나 하는가?"

"폐하, 신의 어떤 행태를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짐은 네가 여타 부 상가들을 만나서 한다는 소릴 다 듣고 있다. 너는 상가들에게 양광이 허세를 부리는 것일 뿐 침공에 나서진 못할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낙관론의 근거는 뭐냐?"

"폐하, 신은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해서 내린 판단이옵니다."

"낙관론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대보란 말이다."

"폐하, 수국은 건국이 일천합니다. 때문에 당분간은 내치에 힘을 기울여야 할 형편입니다. 고구려 침공을 운운하는 것은 복속을 요구하는 협박에 지나지 않습니다. 복속해서 일을 키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복속을 요구하는 협박에 지나지 않다? 크게 빗나간 추측이다."

"폐하, 왜 빗나간 추측으로만 치부를 하십니까? 수국의 신하들조차 양광이 전역을 일으키는 걸 무모하다고 말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그 점은 모르시지 않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너는 양광이란 자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너무도 모른다. 그동안에 그자가 벌인 일들을 잘 알 것인데 그런 낙관론을 펼 수가 있는가?"

국왕은 양광이 중원 땅에 남북을 관통하는 운하를 파서 완성시켰다. 운하를 판 목적 중의 하나는 그걸 이용해 군량미와 군수물자의 수송을 원활하게 만들려는데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운하가 완성되자 즉각 병력을 수송할 병선(兵船) 수백 척을 건조했다. 그것이 고구려 침공을 위한 준비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임을 건무에게 강조했다.

"폐하, 신도 지금의 상황을 두고 우려가 전혀 없는 바는 아니오나 한편으론 달리 생각해볼 점도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달리 생각을 해 볼게 무엇이란 말인가?"

"폐하, 그동안에 중원 땅은 5호 16국이 난립했고, 그로인해 많은 국가들의 흥망이 거듭되고 왕조들마다 단명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처럼 오랫동안 일어난 혼란은 아국의 안정에 도리어 유리한 작용을 했습니다. 수국은 그걸 겨우 진압하고 지금은 숨을 돌리는 중입니다."

"아무튼 간에 중원 땅을 전부 아우른 양광의 야망이 문제이다."

"폐하, 주변국이 다 하듯 당분간은 숙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분간 숙이고 들면 어떤 결과를 얻을 게 있다는 생각인가?"

"폐하, 맞서는 것만 능사가 아니란 생각입니다. 양광이 백만 대병을 동원하겠다고 큰 소릴 치며 아국에 강한 압박을 가해 복속을 시키려는 의도일 뿐이나 계속 버티다간 침공을 자초하게 될 뿐입니다."

"복속을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네 말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폐하, 아국은 수국의 대병을 감당할 수가 없는 형편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여타 부들은 어떻습니까? 겉으로만 걱정을 하지 수국과 맞설 준비도 의욕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우선 급한 소나기부터 피하고 보는 게 상책입니다."

"너는 그렇게도 뭘 모르는 소리만 할 것인가?"

"폐하, 신이 뭘 모른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짐도 복속으로 끝낼 수가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느냐? 너는 고구려가 살아남을 길은 복속뿐이란 주장만 펴고 있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위험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로다."

"폐하, 신이 어리석기가 짝이 없다니? 너무도 심한 말씀입니다."

"너는 양광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다. 양광은 짐의 복속만을 원하는 아니고 항복을 원한다. 항복도 아니고 아예 고구려를 멸망시켜 없앨 속셈이다. 짐이 그런 자에게 복속이나 항복을 한다고 한들 무사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

"폐하,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듯 상대의 힘을 알고도 무모한 대결로만 나가다간 사직을 보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선은 화평책을 쓰면서 상대의 간을 보는 대처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도저히 안정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는 판단이 설 때만 싸워야 합니다."

"네가 주장하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자꾸나?"

국왕은 속이 부글거렸지만 애써 참는데 건무가 입을 열었다.

"폐하, 중원 땅은 오랜 혼란 시기를 거치는 동안 지방들마다 토호 세력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양광은 앞으로 그런 토호들의 반란에 직면할 우려가 큽니다. 양광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당장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존재부터 먼저 제거하는 데 힘을 쓸 것입니다."

"너는 여타 부 상가들을 만나면 양광과 화친할 것을 주장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짐도 형식적으로나마 복속을 해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가 있다면 굳이 위험한 전쟁을 택할 것이지 화친을 거부하려는 게 아니다."

국왕의 설득에도 건무는 또 입을 열었다.

"폐하, 신은 강조할 말씀이 또 있습니다. 수국 조정의 관료들은 대부분이 멸망한 전조에서 봉공했던 자들입니다. 양광은 그처럼 잡다한 부류가 뒤섞인 신하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또 충성심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아직은 침공에 나서는 건 시기상조라는 게 공론입니다. 양광이 운하를 파는 대 토목 공사를 벌인 목적은 지방의 호족들과 신하들에게 많은 인력동원과 경비 부담을 지우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족과 신하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데 노림수가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양광은 이미 고구려 침공을 위한 병력과 물자 동원령을 내렸다. 너도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말을 자꾸 하는 의도는 대체 뭐냐?"

"폐하, 양광은 동원령에 잘 따르지 않는 호족과 지방관을 숙청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부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짐도 양광에게 그런 약점이 있음을 알고 있다. 또 전역을 표방해서 내부 안정을 다지는데 이용을 할 수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허나 고구려 침공은 기정사실화된 사실로 벌써 움직임을 시작된 상황이다."

"폐하께선 왜 사태를 그처럼 비관적으로만 보시옵니까?"

국왕은 건무의 헛된 생각을 깨뜨려 주고자 설득하려고 들었다.

"너는 양광이란 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금 그 자의 콧대는 하늘을 쓰고 도리질을 칠만큼 높아져 있다. 네 말처럼 내부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도 없지는 않으나 그보다는 고구려 침공을 성공시켜 자신의 권위를 더욱 높여 대내외적으로 과시를 하려는데 있다."

"폐하, 아무튼 간에 국체 보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너는 짐을 호전성이 큰 사람으로 보고 있으나 전쟁은 원치 않는다. 또 전쟁보다 외교가 더 중요함도 잘 알고 있다. 허나 양광은 짐의 복속에 그치지 않고 입조를 요구할 것이다. 만약에 입조를 하게 되면 다시 돌아올 수가 없게 된다. 그걸 안다면 쓸데없는 말은 더 이상 말라."

"폐하, 복속만 하고 입조를 미루면서 전쟁 준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짐이 몇 번을 말해야 너는 알아듣겠는가? 양광의 궁극적인 목표가 복속도 입조도 아닌 짐의 목숨과 고구려를 멸망시키려는데 있다."

국왕의 단호한 호통에 건무는 알다 모를 말을 했다.

"폐하의 말씀 신에겐 너무도 가혹하게 들리옵니다."

"가혹하게 들리다니? 너는 어떤 점을 가혹하게 여긴단 말인가?"

건무가 대답을 못하자 국왕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짐은 네가 자신만을 너무 생각하는 자로 보여 야속하다."

국왕은 건무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표하고 말을 이었다.

"짐이 양광에게 복속하고 입조하면 고구려 8백년 사직을 보존시킬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복속이란 말은 다시 하지 말라. 짐은 이왕에 멸망을 면치 못하게 된다면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죽기를 택하겠다. 다만 짐의 대에 이르러 고구려 사직이 무너지게 된다면 그보다 비참한 일은 없겠다. 그런 짐의 심경을 네가 어찌 짐작이나 할 것인가?"

"폐하, 왜 불길한 말씀만 자꾸만 하십니까?"

"짐이 오늘 널 부른 이유는 마지막으로 경고를 하고자 함이다."

"폐하, 신에게 무슨 경고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앞으로 맞을 적은 유례가 없을 만큼 강하지만 짐의 항전 의지도 그에 못지않게 확고하다. 모두가 힘을 합쳐 혼연일체로 항전에 나서기 위해 내일 제가회의를 소집해 5부의 단합을 다지는 자리로 만들려고 한다. 그런 자리에서 네가 또 화평을 주장하는 말을 꺼내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라. 짐의 말을 알아들었느냐?"

"폐하, 알겠습니다."

건무는 국왕의 엄명을 듣고 궁궐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국왕은 제가회의(諸加會議)에서 모두 발언을 했다.

"경들도 알다시피 아국은 급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소. 때문에 경들과 수국의 침공에 대비할 방법을 의논하고자 하오. 경들은 좋은 방책을 내고 서로 간에 기탄없는 토의가 이뤄지길 기대하겠소."

서부(西部) 상가인 연태조(淵太祚)가 입을 떼었다.

"폐하, 신등은 앞으로 닥칠 국난 타개에 고심 중입니다. 그러나 여타 부는 각기 주성(主城)을 방어하기조차 힘이 들 형편이라 회의감만 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정상의 어려움이 극도로 나빠져 방비할 병력과 전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데 있습니다."

"국상, 짐은 여타 부의 어려운 사정을 한번 들어보고 싶소."

"폐하, 여타 부는 전쟁에 임할 여력이 없음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국상, 적의 침공을 앞두고 그런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면 큰 일이요. 나라 전체가 똘똘 뭉쳐서 전의를 불태운다고 어려울 판인데 그처럼 위축된 지경이라면 볼 장을 다 본 것이나 다름없겠소."

"폐하, 재정이 바닥이 나고만 여타 부들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연태조는 불만이 커 작심발언을 했다. 그러자 여타 부 상가들은 모두 동조하는 태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만큼 왕실과 여타 부 간은 골이 깊고 반목을 여실히 드러내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된 원인은 왕실과 여타 부 간의 전력 격차가 너무도 벌어진 때문이었다. 국왕도 여타 부의 어려움 큼을 잘 알아서 불만이 큰 연태조를 비롯한 상가들이 무슨 말을 할지 좀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여타 부의 상가들은 큰 국난이 닥친 마당에 담합된 태도로 반감을 드러낼 기색들이었다. 차제에 왕실에 대한 요구를 하고 그걸 관철시키기 위한 배수진을 친 분위기였다.

국왕은 무거운 분위기를 의식하며 입을 떼었다.

"경들이 짐에게 건의할 사항이 있을 것임으로 귀를 기울이겠소."

연태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먼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국상, 말씀해 보시오."

"고구려의 국체는 연맹체입니다. 폐하께선 지금 연맹체가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그에 대한 답변을 듣고자 합니다."

연태조의 말이 매우 도전적이라 국왕은 음성이 굳어들었다.

"국상, 짐으로선 뜻밖의 질문을 듣는 것 같소. 고구려는 국초로부터 연맹체로 출발했고, 그걸 굳건히 지켜 지금에 이르지 않았소? 당연한 일을 가지고 국상이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이유를 모르겠소."

"폐하의 답변에 신등은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연태조의 대답에 상가들은 모두 고개들을 주억거렸다. 국왕은 상가들의 단합된 태도에 더욱 큰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짐은 경들의 불만이 그처럼 매우 큼을 알게 되었소. 이번 기회에 그 런 불만을 해소시킬 수 있게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눠 봅시다."

고구려는 근래에 와서 5부 연맹체가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그 시발은 광개토왕 이후에 일어났고, 지금은 여타 부는 명목상에 지나지 않는 형편이었다. 이젠 왕실인 계루부(桂婁部)의 명칭만 남았고 여타 부의 명칭은 모두 없어졌다. 소노부(消奴部)는 서부(西部)로, 절노부(切奴部)는 북부(北部)로, 순노부(順奴部)는 동부(東部)로, 관노부(貫奴部)는 남부(南部)로 호칭이 바뀌었다. 뿐더러 상당한 자주권(自主權)을 행사했던 여타 부의 상가들은 한낱 국왕의 신하로 전락하고 말았다.

건무는 계루부의 상가 자격으로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데 얼굴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이었다. 그러나 국왕의 엄명을 받은 터라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만 하자니 속은 앙앙불락이었다.

북부의 상가인 말굴(靺堀)이 입을 열었다.

"폐하, 모든 국사는 왕실 위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연맹체가 유지되고 있다는 폐하의 말씀에 신등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에 없던 강경발언은 동부 상가인 도창(濤漲)으로 이어졌다.

"근래에 폐하께선 여타 부 상가들과 국사를 의논하신 일은 기억이 되지 않습니다. 신등은 그저 폐하의 명을 받들고 추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새삼 제가회의를 여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도창의 발언은 너무도 직설적이라 국왕은 불쾌감이 일었다.

"짐은 경들의 발언이 이젠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드오."

그 말에 국상인 연태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오늘의 회의는 곧 닥쳐올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왕실과 여타 부가 단합할 방법을 의논할 하자리로 알고 임했습니다. 또 국가 전체가 똘똘 뭉칠 계기를 만들 자리가 되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선 일방적인 요구만 하시려고 회의를 여신 건 아닐 것입니다. 여타 부의 의견을 소홀히 하신다면 신등은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겠습니다."

국왕은 상가들의 말이 전부 통렬한 비판뿐이라 얼굴이 좀 상기되었다.

"짐은 경들의 불만이 이처럼 큰 줄은 몰랐소. 오늘은 군신 간에 쌓인 불만을 전부 털어놓고 대등한 토론을 벌이도록 합시다. 앞으로 닥칠 국난을 돌파하기 위해 피차간의 불신부터 불식을 시키기로 합시다."

연태조는 국왕의 태도가 좀 꺾이는 것 같아 다시금 입을 열었다.

"폐하께선 동맹체의 결속을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신등은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여타 부는 동맹체의 결속과 신뢰감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맹체 결속과 신뢰감을 되찾기 위해 짐이 어떻게 하면 되겠소?"

"신은 불신의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건국 이후로 고구려의 동맹제는 무엇보다 으뜸으로 치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그 목적은 백성들의 단합과 동맹체 간의 연대와 결속을 다지는 바탕으로 삼는데 있습니다."

"짐도 그걸 모르지 않는데 그 말을 새삼 꺼낸 이유는 무엇이요?"

"폐하, 근래 여타 부 백성들은 동맹제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동맹제를 아예 외면하려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국왕은 뜻밖의 말에 적잖이 놀랐고 큰 우려감을 금치 못했다. 여타 부의 백성들이 동맹제를 외면한다면 연맹체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것은 여타 부 백성은 고구려 백성들이 아니란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 심각한 충격 속에 음성조차 떨렸다.

"짐은 그런 사정을 처음 알게 되었소. 그러면 여타 부 백성들이 동맹제를 외면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소."

국왕의 말에 상가들은 일제히 시선을 연태조에게 돌렸다.

"폐하, 신등은 그 원인을 천도에서 찾게 됩니다."

연태조의 대답에 국왕과 건무는 안색이 굳어들었다.

"국상, 천도 때문이라니 새삼스럽게 그게 무슨 뜻이요?"

"폐하, 전 국도인 국내성엔 역대 제왕과 신하들이 영면하고 있는 땅입니다. 그곳엔 1만 5천여 기의 분묘가 있습니다. 그처럼 많은 무덤들을 두고 천도를 한 것에 큰 의문을 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도를 한 게 어떻기에 의문을 갖는단 말씀이오?"

"신은 감히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천도는 윗대로부터 내려오는 기반과 전통을 전부 내버린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국상, 그건 너무 어폐가 심한 말이요."

"폐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신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에 관한 것이요?"

"아국의 판도가 획기적으로 확장된 시기는 광개토대왕 때입니다. 영토를 크게 넓힐 수가 있었던 것은 강한 국력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아국의 대외 교역이 크게 늘어났고 국력도 점점 강해져 영역을 계속 넓혀나갔습니다. 그런 힘이 왕실에서만 나왔겠습니까? 동맹체의 결속에서 나오게 된 것이며 연맹체는 고구려 발전의 원천입니다."

"국상의 말씀은 짐은 물론 모두가 인정을 하고 있는 바요."

"폐하께선 여타 부가 영토 확장에서 아무런 기여가 없다고 보십니까?"

"무슨 말씀이요? 여타 부와 힘을 합쳐 이룩한 과업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요. 때문에 광개토 대왕께선 영토가 넓어진 만큼 여타 부의 관할지를 크게 넓히고 관할권도 대폭 강화시켜 주셨던 것이요."

"폐하, 여타 부는 관할지가 는 만큼 방비해야 할 부담도 커졌습니다. 즉 땅은 늘어났으나 여타 부는 크게 잃은 게 있습니다."

"여타 부가 크게 잃은 게 있다면 그건 무엇을 말함이요?"

"여타 부는 관할지 내에 있는 철광산의 관장권을 잃지 않았습니까?"

국왕은 그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여타 부는 국초부터 각자 관할지 내의 철광산을 자체적으로 관장하며 철 채취와 개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광개토왕은 왕권을 크게 강화시키고 모든 철산지를 중앙에 예속시켜 장악해 버렸다. 철을 장악한 결과 왕실은 여타 부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힘이 생겼다.

연태조는 묵묵부답인 국왕을 향해 말을 이었다.

"폐하,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수 대왕께선 압록수를 건너 좁고 구석진 땅으로 국도를 옮기셨습니다. 굳이 그러실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가 없는 신등은 이번 기회에 폐하의 해명을 듣고자 합니다."

국왕 또한 답변이 곤란했지만 어물쩍 넘길 수는 없었다.

"짐도 그 점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뭐라 답변할 말이 없소."

"폐하, 신등은 천도가 국가 전체를 위함이 아닌 왕실을 위한 일로 여기게 됩니다. 그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을 하시옵니까?"

연태조의 거듭된 질문에 난처한 국왕은 또 입을 다물게 되었다.

"폐하, 고구려는 그때부터 백성들의 단합된 전통은 깨졌고 연맹체에 큰 균열이 생기는 악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국왕은 추궁을 당하는 사람처럼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짐은 경들의 큰 불만이 거기에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소. 그러나 천도로 인해 연맹체의 균열이 갔다는 건 너무 지나친 말이 아니겠소?"

말굴이 국왕의 말을 받아치듯 입을 열었다.

"폐하, 천도 이후로 고구려는 계루부 나라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여타 부 전체가 느끼는 박탈감입니다. 때문에 여타 부의 백성들은 동맹제 마저 외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왕도 그 말엔 반발하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고구려가 계루부의 나라가 되었다는 말은 언어도단이요!"

"폐하, 그간에 왕실은 여러 가지로 얼마나 많은 편파적인 조치를 취했습니까? 모든 이로움은 계루부로 돌아가고 여타 부엔 어려움과 박탈감만 안겨주었지 않습니까? 그로인해 여타 부가 입은 피해가 얼마나 큽니까?"

"왕실이 여타 부에 무슨 어려움을 안겨줬는지 구체적으로 대보시오."

"첫째는 계루부의 철제품 독점입니다. 여타 부는 철제품 부족으로 대외 교역을 제대로 나서질 못해 극도의 재정 궁핍에 처했고, 백성들도 생계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것은 전력의 약화로 이어져 국난을 당해도 제대로 대처할 능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신등은 폐하께서 여타 부에 협조를 구하신들 부응할 여력이 없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도창은 그 말을 받아 더욱 강경한 발언을 했다.

"폐하, 여타 부 백성들은 날로 고향을 등지는 자들이 늘어나는 형편입니다. 그들이 옮겨 가는 곳은 다름 아닌 압록수 이남의 계루부 관할지입니다. 그 이유도 곤궁한 삶을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그와 같은 사태가 계속된다면 여타 부는 전체가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여타 부로선 각자가 활로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도창의 말은 연맹체 이탈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고구려는 본래 다종족(多種族) 국가로 출발했다. 사람들의 생업도 농사, 목축, 수렵, 어업, 상업 등으로 다양했다. 또 판도의 지형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흩어지기가 쉬운 곳이라 인구의 유동성도 컸다. 그런 특성 속에 거점지마다 소규모의 지배 집단이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 소규모 집단 간의 대립과 각축을 벌이던 끝에 영향력이 큰 5개 집단이 고구려 연맹체를 발족시켰다.

연맹체는 평등과 자치가 보장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왕실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균형이 깨어져 갔다. 그건 여타 부의 위축과 세력 약화를 초래해 상가들은 국왕의 한낱 신하로 전락되어 갔다. 그와 같은 불만 속에 국왕은 큰 국난에 대처하고자 단합을 요구하고 있지만 상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도리어 그동안 자신들이 당하고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을 호기로 삼으려고 들었다.

최대 위기를 맞은 국왕은 상가들의 신랄한 비판 앞에 불쾌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반박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건무 역시 거센 역풍 앞에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억지로 참고 침묵을 지켰다. 상가들의 반발은 연맹체 이탈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여타 부 상가들은 국난을 호기로 삼으려고 했다. 때문에 배수진을 치고 공동의 요구를 관철시킬 공고한 결속력을 과시했다. 국왕은 강한 압박감을 느낀 끝에 침통한 음성이 되었다.

"수국도 이처럼 고구려의 내부 결속력이 약화된 사정을 파악한 터라 침공을 하려는 것이요. 이런 마당에 경들이 짐을 외면한다면 고구려는 멸망할 일만 남았소. 짐은 경들에게 단합과 협조를 다시 구하는 바요."

국왕이 솔직한 말로 굽혀들자 연태조가 그 말을 받았다.

"폐하, 여타 부는 오직 연맹체의 복원을 요구할 뿐이지 고구려의 멸망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폐하께선 그 점은 유념해 주시옵소서."

"짐도 경들이 요구하는 바를 모르지 않소. 시정할 바가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주시오. 고쳐나갈 점은 과감히 받아들여 고치겠소."

연태조는 국왕이 양보할 태도를 확실하게 보이자 허리를 숙였다.

"폐하, 망극하옵니다."

"국상, 양광이 백만 대병을 출병시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소. 그런 마당에 맞설 능력이 없는 아국은 병력 증강이 무엇보다 급선무요."

"폐하, 그렇지만 여타 부는 병력을 증강시킬 방도가 없습니다."

"짐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소. 그동안에 계루부는 나름대로 병력 증강에 힘을 쏟은 결과 10만 병력을 보유하게 되었소. 그러나 그렇지가 못한 여타 부의 병력은 얼마나 동원할 수가 있을 지부터 알고 싶소."

"폐하, 여타 부의 전체 병력을 모두 합쳐도 5만이 못됩니다."

"그렇다면 여간 큰 일이 아니요."

국왕의 대답에 말굴이 반박하듯 입을 열었다.

"왕실은 천도한 뒤 계루부의 근거지를 남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턴 오직 남방 경략에만 치중했습니다. 농사를 지을 농토를 대폭 개간해서 여타 부 백성들까지 계루부 영역으로 옮겨가게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의 유입이 크게 늘어난 계루부는 병력 증강에도 유리해졌지만 인총마저 준 여타 부는 막심한 타격을 받고 어떻게 병력을 늘일 수가 있겠습니까?"

"짐도 그 문제를 경들과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오."

"폐하, 여타 부 백성이 계루부로 유입되는 걸 막아주십시오. 그 문제부터 해결되지 않곤 어떤 협력도 어렵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말굴은 말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까지 덧붙였다.

"왕실은 천도 이후 계속 계루부 백성들의 숫자를 늘리는 정책을 썼습니다. 그것은 여타 부 백성들의 유입을 은근히 조장하는 정책입니다. 거기다 신라와 백제를 침공해서 그쪽 백성들도 강제로 많이 끌어 왔습니다. 백제의 석두성을 쳤을 땐 장정 3천여 명을 끌고 왔고, 국경 지대에선 신라 백성 8천여 명을 강제 이주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늘린 인구는 노동력도 늘리고 병력도 증강시킬 수가 있었으나 북방의 방어를 책임진 여타 부는 인구가 줄어들고 피폐화됨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국왕도 말굴의 지적을 내심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폐하, 드릴 말씀이 또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타 부와 계루부는 재정 상태가 천양지차로 벌어질 만큼 악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사정부터 개선할 방도를 마련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악화된 재정 상태를 개선할 방법이 있다면 말해보시오."

"고구려는 대외적으로 북방 유목민과 교역을 매우 중요시해 왔습니다. 교역은 국가의 재정을 충당하는데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때론 유목민 정벌에 나서기도 했으나 그건 영토를 탐내서가 아닌 교역할 영역을 넓히는데 있었습니다. 여타 부는 그처럼 중요한 교역마저 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어서 고사 직전에 이른 상태입니다."

국왕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어 여타 부의 요구를 외면해선 안 되겠단 판단이었다. 더욱이 지금처럼 급박한 위기 상황을 맞고 보면 여타 부의요구를 받아들이고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

"짐은 경들의 요구를 전부 적극 수용하겠소."

국왕의 답변에 연태조는 요구 사항을 꺼냈다.

"폐하, 여타 부의 악화된 재정을 극복하기 위한 요구를 하겠습니다."

"국상, 어떤 요구요?"

"폐하, 여타 부에 속한 철산지의 관할권을 전처럼 되돌려 주십시오."

연태조의 말에 국왕은 표정이 굳어들었다.

"철산지 관할권이라?!"

"폐하,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있다니 그건 또 무엇이요?"

"국내성으로 환도하길 바랍니다."

"국내성으로 환도를 한다?"

국왕은 난감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산지 관할권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국내성 환도는 너무도 예상 밖이었다. 아무튼 간에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이긴 곤란했다. 아마도 실리는 철에 있고 환도는 명분으로 내세운 걸로 보았다. 배수진을 친 상가들이 등을 돌리게 할 수는 없으므로 철 쪽으로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

연태조는 침묵을 지키는 국왕의 얼굴을 지켜만 보았다. 왕실은 이런 상황에선 명분과 실리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고민이 크겠지만 결국은 여타 부의 실리 쪽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국상, 두 가지 요구 중 철산지 관할권은 받아들이겠소. 환도는 당장은 불가능하오. 시간을 갖고 검토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겠소."

국왕의 대답에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만 있었던 건무는 고통스런 인내심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국상, 폐하께선 여타 부의 요구를 다 들어주셨소. 이제부턴 상가들이 대답을 할 차례요. 무엇보다 여타 부의 병력 증강이 가장 시급하오. 그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답변을 해 보시오."

연태조는 그에 관한 답변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병력 증강에 관한 논의는 지금부터 상가들끼리 논의를 시작하겠으며 우선 장정들의 군사 훈련을 강화시키는 일부터 착수를 하겠습니다."

"군사 훈련은 당연한 일이요. 여타 부의 병력 동원이 얼마나 가능할지를 알고 싶소. 폐하께선 최소한 10만 이상을 기대하고 계시오."

연태조는 국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폐하, 여타 부도 병력 증강 논의가 전혀 없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이 개선되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또 병력 증강에 병행을 하며 또 다른 방책도 강구할 계획입니다."

"또 다른 방책을 강구하다니 그게 무엇이란 말이요?"

"타 종족의 병력을 지원받을 것을 추진하려는 것입니다."

"타 종족이라면 그걸 어디서 이끌어낼 수가 있단 말이요?"

"폐하, 양광은 동돌궐을 비롯해 거란과 유연에 병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도 말갈만 의지할 순 없고. 여타 유목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원을 이끌어 낼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연태조의 대답에 건무는 다분히 추궁조가 되었다.

"국상은 동돌궐이 수국의 요구대로 병력을 지원할 걸로 보시오?"

"계민 칸의 속내는 모르겠으나 동돌궐 부족장들은 고구려를 지원하는 쪽에 설 것으로 확신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제 예상일 뿐 아국은 철저한 보안 유지 속에 은밀한 접촉을 해야만 합니다."

국왕도 동돌궐이 수국 편에 선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하기가 싫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고구려의 앞날은 더욱 암담해질 뿐이었다.

"국상, 여타 부는 유목민과 교역이 활발해 유대 관계가 깊소. 여타 부는 최소한 동돌궐이 양광 쪽에 서는 걸 막는데 힘을 썼으면 하오."

"폐하, 여타 부는 동돌궐과 관계가 전처럼 원활치가 못합니다."

"전과 같지가 못하면 유목민의 지원을 얻는 게 어렵지가 않겠소?"

"폐하, 그 이유는 교역이 크게 위축된 데서 찾아야 합니다. 교역이 원활하지 못하면 상호 의존도가 떨어져 관계도 소원해지게 됩니다."

"사면초가라더니 이런 지경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소."

국왕이 낙망하는 빛을 보여 연태조는 위로의 말을 했다.

"폐하, 그렇다고 해서 포기를 할 순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희망을 걸고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짐은 이제 경들밖에 믿을 데가 없소."

"폐하, 신등은 나름대로 합의를 본 게 또 있습니다."

"어떤 합의를 본 게 있소?"

"폐하, 새로운 국상을 발탁해 주실 것을 주청합니다."

연태조가 뜻밖의 말을 하자 국왕은 의아함을 넘어 아연해지고 말았다. 반면 건무는 어떤 기대감에 차 있는 표정이 되는데 국왕이 물었다.

"국상, 그 말은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이오?"

"폐하, 그렇습니다. 신은 나라를 위해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국상은 지금까지 주전파의 선두에 서 있소. 그런 국상이 직위를 내놓으면 누가 그 자리에서 수국 침공을 막을 총 지휘를 할 수가 있겠소?"

"폐하, 신은 오직 고구려 사직을 지킬 충정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닥칠 위기를 극복하려면 신보다 유능한 전략가를 국상 직에 앉혀야 하겠습니다. 상가들 또한 신의 뜻에 호응해서 합의를 봤습니다."

연태조의 대답에 국왕은 무겁게 고개만 끄덕였다. 필사적인 항전을 하자면 유능한 전략가가 군의 지휘를 맡아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상, 새 국상에 추천할 인물이 있겠소?"

"폐하, 신등은 새 국상으로 추천할 인물도 합의를 봤습니다."

"그 인물이 누구란 말이요?"

"폐하, 새 국상은 첫째 전쟁 수행을 잘 해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짐도 공감이요."

"두 번째는 여타 유목민과 관계를 다질 외교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 점도 두 말할 나위가 없겠소."

"폐하, 신등은 그 두 가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낼 수가 있는 자를 새 국상으로 추천을 하고자 토론을 해서 건의를 드리려고 합니다."

"국상, 어떤 건의인지 말씀해 보시오."

"새 국상은 전시 중 군국기무를 총괄할 수가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지녀야 한다는 데 상다들은 전부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국상, 군국기무를 총괄할 권한을 실질적으로 지녀야 한고 했소?"

국왕은 반문하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군국기무(軍國機務)의 총괄은 국왕의 고유 권한인데 그걸 넘기라는 말인가? 불쾌감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면서 갈수록 태산이란 생각만 들었다.

"국상, 그런 중책을 맡길만한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이오?"

국왕의 질문에 연태조는 좀 망설이다 대답을 했다.

"폐하, 신등은 먼저 폐하의 동의가 있으셔야만 밝히겠습니다."

연태조의 음성엔 상당한 압박감마져 느낄 지경이었다. 이때 건무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큰 흥미를 느끼며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부 대인의 말씀은 나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오."

국왕은 그런 말을 하는 건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국상 직을 원하는 건무는 또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 신이 국상직을 맡아서 사직을 구해보겠습니다."

국왕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않는데 건무는 연태조를 향해 물었다.

"서부대인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내가 적임자가 아니겠소?"

연태조는 그 말에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전하께선 지금까지 화평을 주장해 오셨지 않습니까?"

"국상, 나는 더 이상 화평에 연연해하지 않소. 적과 맞설 생각이요."

"전하, 상가들이 천거할 자는 따로 정한 바가 있습니다."

건무는 그 말을 듣고 버럭 소릴 질렀다.

"국상, 무슨 소리요? 국상 임명은 폐하의 고유 권한이고, 나는 계루부 상가로 자격이 충분하오. 나보다 더한 적임자가 대체 누구란 말이요?"

국왕은 건무가 외치는 말을 못들은 체 연태조에게 말했다.

"국상은 천거할 인물을 말하시오."

"폐하, 신등은 새 국상이 왕실과 여타 부에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자가 맡을 것을 원합니다. 그런 인물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중립을 지킬 수가 있는 자라?"

국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데 건무는 또다시 발끈했다.

"국상, 폐하께 감히 말도 안 될 요구를 어찌할 수가 있겠소? 나는 여타 부 상가들의 기고만장한 태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겠소."

국왕은 그러는 건무에게 손을 내저어 막았다. 이젠 누가 봐도 칼자루를 쥔 쪽은 상가들이었다. 상가들은 자신들의 위상을 회복시킬 기회로 삼으려하듯 더욱 강하고 단합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폐하, 신은 분통이 터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건무의 반발은 더욱 격했지만 국왕은 또 엄하게 눌렀다.

"짐은 여타 부 상가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국왕은 건무를 눌러놓고 연태조에게 말했다.

"국상, 천거할 인물을 어서 말하시오."

"폐하, 신등은 대형 을지문덕을 천거합니다."

"을지문덕을?"

국왕이 중얼거리는데 건무가 버력 소리를 질렀다.

"국상 직은 아무나 앉는 자리로 여기면 안 되오!"

"전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연태조도 강하게 반문했다.

"국상 직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요. 을지문덕이 아무리 유능한들 일개 대형에 지나지 않는 자가 어찌 군국기무를 장악한단 말이요?"

"전하, 사태의 심각성을 아신다면 그런 말씀을 하실 순 없겠습니다."

연태조는 대답하고 건무에게 딱한 시선을 보냈다.

"국상, 말을 삼가시오. 나라가 아무리 초유의 비상사태를 맞았다고 해도 을지문덕을 막중한 국상 직을 맡을 만한 깜냥으로 본단 말이요? 그것은 수국에 나라를 그대로 들어 받치자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짓이요."

건무의 말을 연태조도 맞받아쳤다.

"이 나라엔 을지문덕만큼 유능한 전략가를 더 찾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유능한들 귀화인 후손 따윌 국상에 앉힌 전례가 없소."

국왕은 그런 말을 하는 건무에게 호통을 쳤다.

"건무, 국가의 존망이 달린 마당에 무슨 전례를 따지는가?"

건무는 그 말에 찔끔하며 연태조에게 크게 눈을 흘겼다.

을지문덕의 조부는 서역(西域)의 을지족(乙支族) 출신인데 고구려 용병에 투신해 귀화를 했다. 그로부터 3대에 걸쳐 군문에 들고 많은 군공을 세운 집안이었다. 특히 을지문덕은 병서와 천문에 능통한 지장(智將)으로 문무겸전의 정평이 났다. 때문에 국왕은 그에게 문덕이란 이름까지 지어 주었던 것이었다.

국왕은 연태조가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힐 때 문득 건무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건무는 국상 직을 맡게 되면 전쟁을 수행하기보다 수국과 화평 쪽으로 기울 것 같았다.

건무는 이번엔 호소를 하듯 입을 열었다.

"폐하, 신도 을지문덕의 유능함은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국상감은 못 됩니다. 전군을 지휘하게 될 경우 명령이 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국왕은 건무의 속셈을 잘 아는 터라 더욱 못 들은 척했다.

"국상, 짐은 경들의 뜻을 좀 더 들어보기로 하겠소."

"폐하, 고구려는 수국의 대 병력을 막기엔 태부족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선 유목민으로부터 병력을 지원받을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을지문덕은 바로 그 일에 적임자가 되겠습니다."

남부(南部) 상가인 주내(宙奈)가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폐하, 신등이 모은 중의를 가납해 주십시오. 우린 병력만이 아니고 군마도 태부족입니다. 군마를 구하자면 유목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을지문덕은 그 문제도 잘 해결해 낼 수가 있겠습니다."

남부는 여타 부 중 세력이 가장 약해 왕실에 예속된 상태나 다름이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주내가 여타 부 상가들 편에 선 것은 국왕과 건무에겐 내심 큰 충격을 준 일이었다.

주내의 간곡한 청을 도창이 거들었다.

"폐하, 수국은 유례가 없는 대병력을 끌고 올 것을 호언하고 있습니다. 종래와 같은 대처론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선 이번 기회에 능력 위주의 파격적인 인사 발탁을 하셔야 백성들의 호응도 받습니다."

말굴은 이어 또 다른 문제를 거론했다.

"폐하, 현재 고구려 상비군의 실태는 절반 이상이 타국의 용병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앞으로 유목민 병력을 지원받게 되면 인적 구성은 더욱 다양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혼성 병력을 효과적으로 통솔해 낼 수가 있는 지휘력을 발휘할 자도 을지문덕 이외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국왕도 수긍이 가듯 고개를 끄덕이자 연태조는 한 마디를 보탰다.

"폐하, 또 다른 문제도 생각하소서. 신라와 백제는 아국의 배후에서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양국은 이미 수국의 향도 역할을 자처하는 태도를 보여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인데 그런 배후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할 수가 있는 자는 을지문덕 뿐이라는 점도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국왕은 상가들의 주장이 아니어도 을지문덕은 유능한 전략가로 뛰어난 외교력까지 갖추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건무의 말처럼 고구려 병력 전체를 제대로 통솔하고 지휘를 잘 해낼 수가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절실한 일은 국력의 통합이었다. 그건 계루부만 앞장을 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을지문덕이 국상 직을 맡으면 여타 부 상가들은 물론 백성들 전체를 통합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가 있어 적임자로 생각되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는 말도 있듯 지금은 고구려의 운명을 을지문덕 손에 맡겨볼 수밖에 없었다.

"짐은 이 자리에서 을지문덕을 국상 직에 임명한다."

다음 날 을지문덕은 국왕의 부름을 받고 궁궐로 들어갔다.

"폐하, 불초한 신이 분에 넘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놀라울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국상, 짐이 그대를 보자고 한 건 그런 인사를 받고자 함이 아니다. 그대의 식견과 신념을 한번 들어보고 싶기 때문에 부른 것이다."

"폐하, 신은 하문하심에 소신껏 답변을 해 올리겠습니다."

"짐은 그대로부터 수국 침공을 막을 어떤 방책이 있는지 듣고 싶다."

국왕이 다짜고짜 묻는 질문에 을지문덕은 큰 호흡부터 했다.

"폐하, 신은 수국이 침공한다고 해도 일방적인 우세를 보일 것으론 보지를 않습니다. 전쟁의 승패에 관한 예측은 어렵지만 아국이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얼마쯤이라도 전세는 가변성을 띠게 될 것입니다."

"양광의 병력 출동 시기를 언제쯤으로 보는가?"

"폐하, 신은 아무리 빨라도 내년 초쯤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예측을 하는가?"

"폐하, 양광도 이번 침공을 자신의 앞날을 거는 중대한 시금석으로 삼을 것으로 봅니다. 그만큼 중대성이 큰 침공을 위한 준비를 보통으로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양광은 백만 대병을 동원하겠다는 호언장담을 하는것 허세만 봐선 안 될 것입니다. 때문에 그만한 대병력을 동원하기 위해선 최소한 1년 이상은 걸려야 할 것으로 신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짐도 최소한 1년이란 대비할 시간을 벌 수가 있겠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국상은 어떻게 세울지를 듣겠다."

"폐하, 양광이 아무리 많은 병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전력은 그리 강한 군대로 보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수국의 정규군은 여러 군벌들의 병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그 숫자도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때문에 양광이 동원할 병력은 대부분 훈련이 안 된 농민들로 급조된 부대들을 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 겁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거기다 수국 군벌의 정규군은 이익을 쫓는 무리로 소문이 났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그런 약점을 지닌 병력은 싸움터에서도 이익을 취하는 일에만 급급해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익이 없을 땐 적극 움직이려는 하지 않습니다."

국왕은 을지문덕의 말을 듣고 조금쯤 마음이 놓였다. 하급 군관 시절부터 중원 땅에 여러 번 투입된 전력이 있는 을지문덕은 중원 쪽 사정에도 밝고 유용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강점이었다.

"짐은 신라와 백제 쪽도 신경이 크게 쓰인다. 그에 대한 의견은?"

"폐하, 백제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신라가 좀 걱정이 됩니다."

"짐도 신라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폐하, 백제와 신라가 수국에 호응을 못하게 막는 방법은 서로가 대립할 형세로 만드는 데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신은 양쪽을 다 견제하고자왜국을 끌어들일 방도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짐은 국상에게 선견지명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동안에 신라와 백제를 견제할 정책을 많이 건의했고 수립을 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때문에 짐은 국상에게 거는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겠다."

지난 해 을지문덕은 남방의 중요 거점인 칠중성과 마흘성의 개축 공사를 건의했었다. 국왕은 그걸 받아들여 시행을 했고 주둔 병력도 크게 늘려 방어체계를 든든히 다져 놓게 만들었다.

"폐하, 신은 신라를 자극하지 않게 백제와 동맹을 추진하렵니다."

"백제와 동맹을? 그게 가능한 일일까?"

"폐하, 신은 그 일을 하기 전에 폐하의 의향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짐의 어떤 의향을 듣고자 함인가?"

"한수유역의 회복은 백제의 숙원입니다."

"그렇겠지."

"폐하, 고구려는 백제가 그 숙원을 푸는데 적극 협조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폐하께선 어찌 생각을 하시옵니까?"

"짐도 동맹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는가?"

"폐하의 뜻이 그러시면 신은 윤허를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겠습니다. 백제와 동맹을 성사시키는 일을 적극 뒷받침해 주시길 청하옵니다."

"짐은 적극 밀겠으니 국상도 적극 추진하라."

"폐하, 황공하옵니다."

"짐은 또 따른 문제는 무엇보다 동돌궐의 향배로 생각한다."

"폐하, 동돌궐은 어쩔 수 없이 수국의 요구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어떤 향배를 보일지는 신도 미지수입니다. 즉 아국이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국왕의 반문에 을지문덕이 대답했다.

"폐하, 동돌궐은 고구려의 멸망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걸 기반으로 전선에서 아국과 동돌궐 군이 적대행위를 않는 방법을 모색하렵니다."

을지문덕의 대답에 국왕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른 문제를 꺼냈다.

"짐은 국상과 은밀한 의논을 할 게 있다. 국상은 앞으로 왕실과 여타 부 사이에 서게 된다. 또 짐과 건무 사이에도 서게 될 형세이다. 그러므로 짐과 국상 간엔 무엇보다 서로의 믿음이 중요하겠다."

"폐하, 신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을지문덕은 대답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짐은 국상에게 군국기무의 권한을 부여하겠다. 국상은 그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를 할 것인지 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다."

"폐하, 신은 전투를 수행할 전선에서만 국한될 일로 생각합니다."

"알겠다. 그런데 건무의 위상을 놓고 생각을 해야만 할 일이 있겠다. 그 이유는 건무가 국상 밑으로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왕의 말에 을지문덕은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폐하, 신도 그 점을 놓고 고심을 한 게 있습니다."

"어떤 점인가?"

"폐하, 군사 지휘권을 전하와 신이 나눠 행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군사 지휘권을 나눠서 행사를 한다? 어떻게?"

국왕은 반문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 해결 방도는 전 국토를 두 지역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국토를 두 지역으로 나눈다?"

"전하와 신은 지휘할 지역을 나누는 데서 해결을 찾고자 합니다."

"어떻게 말인가?"

"양광은 많은 배도 건조를 했기 때문에 대병력을 싣고 바다를 건너와서 장안성 직공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을 하게 됩니다."

"짐도 그 점을 크게 우려하는 바이다."

"그럴 땐 계루부 병력은 압록수 이남과 국도 방어에만 집중하는 역할을 맡고 그 지휘를 전하께서 수행하게 하시면, 신은 요동 땅을 맡아 여타 부의 병력과 유목민의 병력을 맡아 지휘를 했으면 합니다."

"그런 역할 분담을 나누는 것도 좋겠군?"

국왕은 대답을 하고 을지문덕에 대한 믿음도 더 커지게 되었다.

"좋다. 그런 역할 분담은 짐과 국상만 알고 공표는 하지 말자!"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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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 고려(高麗) 1.

1.고구려 조상은 부여(夫餘)에서 나왔다. 부여 왕이 일찍이 하백(河伯)의 딸을 얻어서 방안에 가둬두었다. 그러나 태양빛이 마냥 그녀를 따라 다니더니 이 태양 기운이 감동되어 태기가 있기 시작하여 커다란 알[卵] 한 개를 낳았다. 이 알을 깨치고 한 남자가 나왔는데 이름을 주몽(朱蒙)이라 했다. 부여 조정(朝廷)의 신하들은 이 주몽이 사람이 낳은 게 아니라고 해서 모두 죽이기를 청했으나 왕은 듣지를 않았다. 주몽은 차츰 자라 왕이 사냥을 나갈 때 따라가면 언제나 짐승을 많이 잡았다. 그래서 신라들은 또 죽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주몽의 어머니가 알고 주몽에게 말했다. 때문에 주몽은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달아나다가 큰 물을 만났는데 물이 깊어 건너갈 수가 없었다. 주몽은 말했다. "나는 하백의 외손(外孫)이요, 태양의 아들이다. 이제 어려운 일을 만나 도망하는데 쫓아오는 군사가 급히 따라오니 어떻게 건너간단 말이냐!" 말을 마치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수없이 물위로 뛰어올라 금시에 다리를 만들어 주몽은 건널 수가 있었다. 주몽이 물을 건너자 물고들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서 따라오던 군사들은 건널 수가 없어 돌아가고 말았다.

주몽은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로 하고 고(高)를 성(性)을 삼았다. 주몽이 죽자 아들 여달(閭達)이 왕위를 이었고, 그 손자 막래(莫來) 때에 이르러선 국사를 일으켜 부여를 삼켰고, 그 자손 위宮(位宮)에 이르러선 위나라 정시(正始)[북위(北魏) 선무제(宣武帝) 拓跋格) 때 연호(年號)로 서기 504-508년)] 년 중에 서안평(西安平)을 침입해 들어 왔다. 이에 무구검이 이를 막아서 깨쳤다. 위궁의 현손(玄孫)의 아들은 소열제(昭列帝)인데 모용씨(慕容氏)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때 모용씨는 드디어 그 도읍에 들어가서 궁실을 불태우고 크게 약탈해 가지고 돌아갔다. 소열제의 후손들은 백제에게 죽었고, 그 증손 연(璉)이 후위(後魏)와 사신(使臣)을 통했다. 연의 6대손 탕(湯)은 주나라에 있어서 사신을 보내 조공하자 무제(武帝)는 탕을 배하여 상개부요동군공요동왕(上開府遼東郡公遼東王)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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