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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Oct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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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건네고 싶은 말, '한 템포 쉬고'

가을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며 호사스런 일탈을 달달하게 즐기고 있던 차에 친구로부터 걸려 온 전화. 받을까 말까 살짝 고민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지라 그 호사를 방해 받고 싶지 않을 수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을 때라든지, 감정이입이 제대로 된 채 영화에 빠져 있을 때 그 어떠한 외부 자극을 차단하려는 마음이랄까 그 순간 만큼은 그녀의 전화가 그리 반갑지 않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의 청명한 하늘 아래, 싱싱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스치는 풍경에만 나의 감정을 오롯이 집중하려고 나선 길이고,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이 오기에 친구와의 전화 통화가 망설여 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길가로 이동한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녀와 만날 때나 전화 통화의 시작은 늘 가벼운 안부 인사로. 짧은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고민을 쏟아낸다. 늘 그렇듯이. 앞선 걱정이 태산처럼 그녀를 압박하고 있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난 객관적(?)으로 응대하려고 애를 쓰고. 가족간 갈등. 그녀가 나에게 털어 놓는 대부분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제 속내만 긁고 있는 모양이다. 지 속이 새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그런 그녀에게 내가 건넬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섣부르게 나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 놓는 것은 때에 따라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그로인해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다. 

사람 마음이 어떠한 곳에 꽂히면 주변에 관한 것들은 잘 인지되지 못하기에 자칫하면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당사자는 더 힘들어 하는 듯하다. 나의 경우도 예외이진 않다. 

하루 삼시 세끼 먹고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이니 되풀이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 들어 가니 사고나 눈높이도 경직되어 더 힘들게 되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도 원인도 반은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으면 고통이 반감될 수도 있는데 그게 쉽지 않은 연령으로 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수 밖에. 나를 포함해서.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를 보러 요즘 동네 산책을 일삼는다. 짧은 가을을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석양빛에 반짝이는 갈대가 바람결 따라 군무를 춘다. 제각각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내 눈엔 물결처럼 보인다. 너무 좋다. 이쁘다라는 말로 부족하다. 

갈대 스스로 흔들리진 않는다. 갈대 스스로 광채를 발하진 않는다. 곁에서 파동을 주기에 그리 보인다. 나의 친구도 그렇게 살았으면 한다. 

'갈대처럼'

좀더 유연하게 인생을 풀어 나가길.

가을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는 갈대가 올핸 유난히 철학적인 생각을 끌어낸다. 내가 이렇게 숙성되어 가고 있나 보다. 그래서 나이 먹는다는 것에 그리 서글프진 않다. 

"친구야 크게 호흡하고 잠시라도 자연을 누벼봤으면 해. 생각보다 사람에 관한 일들이 별거 아니게 느껴지더라." 

"속 달달 볶다가 세월 보내면 더 억울하잖아."

"오늘은 우리가 제일 젊고 이쁜 날이라고 하더라."

"무너질 것 같아도 아닌 경우가 더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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