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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Apr 07. 2023

나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가위에 눌린 밤 

개운치 않은 꿈 속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내 귀를 자극하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나를 깨운 모양이다. 

분명 내가 지르던 울부짐이었다. 나를 끌어당기던 불명확한 대상으로부터 빠져나오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면서 내가 낸 괴이한 소리였다. 

그런데.

잠이 깬 직후였음에도 꿈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게 더 찜찜했다. 

아무래도 가위에 눌린 듯했다. 심적으로 엄청나게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울부짐을 들었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듣긴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다. 못내 서운했다. 흔들어 깨웠어야 했는데 그걸 몰랐던 무지한 남편이 순간 야속했다. 다시 그런 상황이 되면 나를 깨워 달라고 당부하고 서운함을 잠재웠다. 열 번 잘하다 한 번 잘못한 걸로 욕을 먹는 그런 남편.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시각, 지인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가 나의 심기를 계속 불편하게 했다. 시간이 꽤나 흘러 잊은 줄 알았는데 나의 수면까지 영향을 끼칠 줄 몰랐다. 

이십오 년 지기가 아프다는 전화였다. 그녀는 1년여 이상 악순환되는 중증으로 일상생활마저 힘들어했다. 

병원 입원 치료를 할 정도는 아니었더라도 병증으로 인한 심적 고통은 배가 되어버린 듯했다. 위장장애, 무기력, 불면증, 우울감이 내가 아는 그녀의 병증이다. 아픔으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채 일상을 폐쇄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도전적이고 활동적으로 삶을 살았던 그녀가 보기 좋았었는데 속절없이 무너져 버린 그녀의 삶이 그때까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위로의 말 밖에 할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


반갑게 안부를 묻는 나의 말에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어두웠다. 내심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말들을 조심스레 건네 보았다. 이미 자신의 방호벽을 단단히 쳐 놓았던지 나의 권유는 도통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치료와는 무관하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내가 아는 범위에서 제안을 해 보았지만 그녀가 쳐 놓은 벽에 부딪혀 소멸되고 말았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는 부정적이었다. 그녀가 안 되는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병증이 호전되려면 병원 치료와 병행해야 할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데 그녀는 매우 배타적이었다. 

불량한 섭생으로 인한 무력감, 제약된 활동에 따른 수면 장애, 낮 시간의 나른함, 복합적인 약 복용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들어주는 일 밖에 없었다. 불면의 밤을 3주째 공포 속에서 보냈다고 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 자신이 잘못될까 봐. 살고 싶다고 했다. 

나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장성한 두 아들은 타 지역으로 독립해서 집엔 부부만 살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아직 재직 중이므로 출근을 하게 되면 그녀를 돌보는 일은 시간적으로 제약이 있다. 

아픈 그녀 곁에서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그녀를 더 나약하게 만들었다. 섭생 장애로 자신이 먹는 것만이라도 편해질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짙은 호소, 울음 섞인 호소가 순간 나의 머릿속은 먹색이 되어버렸다.


지근거리에 살고 있더라면 자주 들여다보고 어떻게라도 도와줄 방법을 찾았겠지만 사는 지역이 다르다 보니 친한 사이라 해도 무용지물이다. 내가. 가끔 전화 통화라도 해보려 했지만 그녀가 힘들다 해서 그마저 쉽지 않았다.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는 것도 한정적이라 자주 못하고. 그러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될까 무섭다고 읍소하는 그녀의 말에 내가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속설이 그렇게 회의적일 수가 없었다. 건강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게 된 삶의 계단에 내가 서 있다. 길어지는 병자의 삶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관계망까지 결국엔 끊어져 버린다. 가족들은 지쳐가고, 주변인들은 점점 관심 밖이 되어 버리고. 

 

만약.

내가 아픈 지경에 있다면. 

과연 나는 행복한 병치레를 할 수 있을까. 나의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남의 일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출근한 남편, 직장 근처로 거처를 옮겨 독립한 아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늘 대하지만

나의 병시중을 기대할 수 없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을 믿어보는 수밖에.

아직은 아픈 곳이 없어 건강 보험료 징수에 툴툴거리지만 믿을 건 이것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홀로'에 대한 더 견고한 계획이 필요할 것 같다.


그녀의 아픔이 치유되어 계절의 아름다움을 같이 향유하고 싶다. 

나의 평생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쾌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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