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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Sep 26. 2022

남편은 결국 덜미에 잡히다

C0VID-19  확진으로 잠시 이탈되다. 그리고 성공적인 일상 복귀..

남편이 COVID-19 확진자로 판명, 격리 생활 일지     


#확진 전전일

며칠 전부터 피로가 상당히 누적된 남편의 몸 상태였다. 겨울에서 봄으로 접어든 환절기에 겪을 수 있는 컨디션 난조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했다. 3월 초입, 이르게 세상 밖으로 나온 봄 냉이를 캐볼까 해서 남편과 나는 한참 동안 어느 시골 논밭을 거닐었다. 우리가 찾아간 ‘시우리’ 들판에 퍼진 봄볕은 따스했지만 차가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시야를 가리곤 했다. 손에 들고 있던 비닐 봉지에도 바람의 충돌은 강했다. 설마했는데 예상대로 어렵게 찾은 냉이는 너무 어렸고 그래서 수확한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그곳을 떠나야 했다. 한동안 감행했던 무모한 노출로 상당한 댓가를 치루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그 전부터 감기 기운이 이미 남편의 몸 안에서 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귀가 후, 남편은 시간이 지날수록 열감, 오한, 잦은 기침과 가래의 증상이 있어 보였다. 혹시나 했다. 심증적으로 감염이라고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그날 저녁 식사도 입맛이 없는 듯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근무를 잘 하려는지 걱정되었다. 힘들어 보였다.      


#셀프 검진

출근하는 남편, 몸살감기 증상이 좀더 악화된 모양이다. 출근길에 오른 남편의 모습이 물에 흠뻑 젖은 솜뭉치 같았다. 삼일절. 남편의 근무지는 평상시보다 급증한 휴일 대면 업무 증가로 부쩍 힘들 텐데 잘 견딜 수 있으려나 염려스러웠다. 부디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길 비는 마음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오후 퇴근길에 가족 카톡방에 남편이 올린 사진 하나. 진단 키트 두 줄. 나는 그때까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채질 못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진단 검사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주변에 확진자 있었더라도 오디오 정보였을 뿐이다. 그래서 인지할 수 없었다. ‘두 줄’은 확진 가능성 높음으로 PCR 검사를 반드시 해야 함이었다. 

‘그럼 나도?’

나는 증상이 없었다. 기분 탓인지 목이 아픈 것도 같았다.      


#보건소에서 PCR 검사

오전 9시경에 검사를 하려고 선별 검사소로 갔던 남편은 두 시간 정도 지나 귀가했다. 직접 본 검사소의 현황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다소 격양된 채. 언론상 집계되는 확진자 숫자에 의구심을 가진 터라 더 놀라웠나 보다. 결과는 다음 날 문자로 통보한다고 했다. 남편은 출근하지 않았다. 만약 확진이 된다면 확진 당일부터 격리에 들어가 8일차 자정에 격리 해지가 된다고 한다. 이미 피로가 누적되어 몸 상태가 엉망인 남편을 생각하면 차라리 확진 판정 받고 일주일 푹 쉬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확진 문자 통보, 1일차

목 통증과 가래가 일반 감기 증세처럼 보였다. 열감도 남아 있었다. 인근 병원 의사와 비대면 진료(전화 통화) 후 약 처방까지 그 병원에서 처리해 주었고, 처방 약을 찾아오라는 남편의 부탁으로 지정 약국에 내가 다녀왔다. 약값은 받지 않았다. 정부 부담인 것도 그때 알았다. 집에 와서 약을 살펴보니 거담제와 인후통 다스리는 약제였다. ‘이게 치료제라고?’ 잠시 어처구니 없었다. 감기 바이러스와 뭐가 달라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질병 창궐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전세계가 공멸할 것처럼 들끓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나 따라야지. 아픈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 남편과 나도 서로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식사도 따로 하고 머물러 있는 공간도 분리해 남편은 주로 안방에서, 나는 거실과 딸방을 이용하고 있다. 마스크도 물론 착용하고 있다.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웃긴 코미디 같은 상황이 어이 없지만, 인생 여정의 한면으로 먼 훗날 꺼내어 한자락 한자락 되새기는 자리가 있다면 이또한 값진 것이다. ‘그땐 말이야~“로 시작하는 라떼 스토리가 하나 더 생기게 되니 오롯이 부정적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삶은 겪으며 극복하는 연속이므로. 일이든 사람이든 대처하는 관점에 따라 삶의 무게감이 달라지니 이것 역시 참 흥미롭다.     


#확진2일차 

열감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전날보다 표정이 밝아졌다. 입맛도 돌아온 듯한지 식사도 평상시처럼 한다. 약 먹으려면 무조건 세끼는 먹어야 하니 그럴 수 밖에. 차도가 있어 다행이었다.     


#확진3일차

안색이 점점 좋아졌다. 말도 늘었다. 남편의 격리 생활은 TV와 유튜브 시청하기, 잠자기, 가끔 전화 통화하기가 다이다. 때마침 대선 임박한 시기라 지뢰밭처럼 터지는 정치판 즐기기에 여념이 없는 남편은 그리 지루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반면에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먹는데 흥미를 잃어 가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전부터 나는 평상시 하루 세끼를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남편을 배려해 마음 쓰지 말라고 같이 식사를 하다보니 나의 소화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내게 무척 미안해한다. 왜 미안한 건지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다 이해하고 있고 기꺼이 격리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주려고 한다.      


#확진4일차

바깥 공기에 대한 향수가 극에 다다를 때 즈음이다. 사전 투표를 하겠다고 정부에서 발행하는 확진자 외출 허가증도 받아 놓은 남편은 무척 설레여 보인다. 오후 5시 이후 투표소에 도착해야 한다며 미리 꽃단장을 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저리도 좋을까 싶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간 맞춰서 사전 투표소에 다다르니 그곳은 이미 사람들로 차량으로 혼잡한 상태였다고 한다. 나도 인근을 지나면서 직접 보긴 했으나 투표일이니 그러겠거니 했다, 너무 많은 대기자들로 투표 대기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저녁시각 찬공기가 짙어지는 외부에서 온전히 노출된 채로 두 시간을 보내는 일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분노에 가득차 귀가했다 남편이. 해가 저물어 냉기가 점점 세지는 시간에 확진자들을 밖에 그대로 방치한 채로 사전 투표를 강행하는 선관위를 향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증상이 완화되다가 다시 악화될 것 같다고. 결국 사태는 나비효과처럼 전국을 들끓게 만들었다. 대선의 판도에도 대단한 영향을 준 일이 되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위해 팥죽을 준비했다. 먹고 나서 남편의 분노는 점점 가라앉는 듯했다.     


#확진5일차

전날 허가된 외출로 증상이 나빠졌다고 한다. 사전 투표하러 갔다가 찬 기운이 점점 짙어지는 오후 시간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감염으로 인한 증상이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잠재된 위험은 자극이 다시 가해진다면 언제라도 재발될 수 있어 걱정된다. 선관위의 준비 미비로 벌어진 위험 촉발 상황이 한심스럽다. 남편은 집밥에 점점 건성이다. 그래서 밥보다 다른 것을 준비해 주려고 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똥손인 내가 잘 차려진 밥상을 준비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식사량보다 간식거리에 손이 더 가는 남편을 말리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된다. 운동량이 거의 없다. TV나 유튜브 시청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침대나 거실 쇼파에 밀착된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먹을 때에만 식탁으로 잠시 이동한다. 물론 화장실도 가고. 당뇨 질환이 있는 남편의 혈당이 염려되긴 하나 내가 일깨워 준다해도 따를 사람이 아니므로 보고만 있다. 이제 2일 남았다. 마무리되는 시간까지 자극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혈당 지수의 변화가 없었으면 한다.     

#확진6일차

시동생 부부도 동시에 양성 판정 받았다는 소식이 왔다. 정말 감염 확산세가 이 정도일 줄이야. 남편은 전날보다 컨디션이 나아 보인다. 기침도 잦아들고 가래 뱉는 횟수도 줄었다. 약한 목통증이 느껴질 뿐. 집밥이 질리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김밥을 말았다. 간이 또 과하게 되었다. 짠맛이 강하다. 그래도 불평없이 먹어준 남편에게 고맙다. 제과점에서 단팥빵을 사왔다. 단팥빵은 나와 남편에게 언제나 굿즈이다. 

치료제가 모두 소진되어 다시 처방약을 받았다. 처음엔 액상액과 알약이더니 두 번째 처방된 약은 모두 알약이다. 다시 받은 처방약을 먹고 부디 정상의 삶으로 돌아가길, 재확진이 안되길 빌어본다.     


#확진7일차

격리 해제는 24:00.

나는 외부 일정이 있어 오늘은 남편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략 7~8시간. 김밥, 토마토, 사과, 배, 통밀과자, 단팥빵을 준비했다. 격리 기간 내내 활동량이 거의 없었고 기저 질환인 당뇨를 염두해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나 잘 안된다. 심심하니 군것질 거리를 더 찾는다. 말리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생전 경험하지 못한 격리 통제를 당하고 있으니 그 시간동안 무얼해야 하는지 몰라 시간 죽이기가 전부이다. 이 또한 지나가는 개인사가 되겠지만 아마도 변화는 있을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퇴직 후의 삶을 조망하게 된다면 말이다. 건강함에도 겸손할 것이다. 시간에 대해서도 겸손해질 것이고, 삶의 방향성에 관한 정직한 고찰도 있을 것이다. 심하게 아프지 않고 격리 생활을 마치게 되어 감사하다. 종료되는 시점까지 잘 견뎌내길 바란다.       


#확진 판정 후 8일차 = 일상 회복

남편은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일상이 매너리즘에 점점 빠지게 되고 따라서 잦아드는 회의감이 강해지는 터널을 지나고 있던 남편이었다. 격리로 인한 잠시 멈춤은 삶의 변곡점이 된 듯하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산소와 물을 대하는 관점을 달리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더불어 소소한 일상이 주는 맛을 제대로 느껴보려 한다. 간과해온 허락된 삶들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한 심신으로 일상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감사하다. 그 웃음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기도한다. 건강한 웃음을 되찾은 남편이 너무 좋다. 수고한 나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나는 COVID-19가 빗겨가길 간절히 빌어본다. 빨리 벗어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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