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혼 후유증
한번은 마트에 식료품을 사러 갔다가 갑자기 멍한 상태가 되어 무엇을 사러 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고 숨이 가빠지는 공황 상태를 경험했다. 이혼의 충격이 가시지 않던 때였을 것이다. 슬픔을 애도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로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기계적으로 해치우느라 바빴다. 이웃을 만나면 거짓으로 웃으며 인사하고 아이들이 어렸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많았다. 내 말을 들어주는 누구라도 곁에 있었다면 해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캔맥주만 여러 개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웃 펜션에 놀러 온 관광객들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들이 건너가서 여행객들과 함께 놀기도 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눈치에 내 곁에서 맴돈다. 어린 것들이 엄마의 기분을 살피는 것 또한 왜 그렇게 눈물 나는지. 유리잔에 캔맥주를 부었다. 거품이 부글부글 순식간에 잔 위로올라와 넘쳐흐른다. 줄곧 지켜보고 있었기라도 한 듯 냉큼 유리잔 앞으로 온 딸이 묻는다.
“엄마, 이거 뭐야?”
“응... 이거... 어...음...거품나는 보리차야.”
그 순간 맥주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판단에 나온 말치고는 유치해서 웃음이 났다. 아이가 물으면 대답해줘야 한다는 의식적인 행동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거품 나는 보리차라니? 네 살 딸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순간적으로 작용한 거였다.
“이런, 보리차가 상했네. 버려야겠다.”
싱크대 배수구에 쏟아진 맥주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거품을 뿜고는 사라져 버렸다. 슬픈데 눈물이 나오지 않은 것도 그렇고 누가 뭐라 하든 맘껏 취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슬픔보다 더 강력한 책임감 때문이겠지 싶었다. 감정의 해소도 어려운 데다 감정을 억압하면서 견디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슬픔의 크기를 줄여 나가야 할까. 며칠 전 사재기 한 120색 오일파스텔과 마카를 꺼냈다. 손에 잡히는 색으로 흰도화지를 칠했다. 무엇을 그려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칠하기만 했는데그 행위만으로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 껌딱지 딸아이도 내 옆에 와서 오일파스텔을 잡고 그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울적하면 다양한 컬러의 파스텔을 꺼내어 내 마음을 돌봤다. 참 건강하고도 다행스러운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