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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Nov 27. 2023

경찰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

내가 이곳에 온 지도 2년 하고 두 달이 됐다. 보잘것, 없는 경력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을 경찰서에서 보냈다. 제복보다는 사복 입고 근무한 날이 더 많았다는 거다.

나는 2년 전 강력팀 형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지금의 근무지인 지구대로 왔다.



자유로운 강력팀에 비해 지구대 근무는 팍팍하기만 했다. 딱히 내가 유명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어느 곳을 가도 눈에 띄었다. 제복을 입고 있어 더욱 그랬다.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은 불편할 때도 있었다.

가끔은 커피 사서 마시는 것조차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돈 주고 산 건데.



그럼에도, 내가 지구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식적인 이유는 육아 때문이었다. 맞벌이 가정이다 보니 아이의 유치원 등, 하원을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기에. 그런 의미에서 지구대 생활은 육아에 최적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많은 경찰 아빠들이 육아 때문에 지구대를 택하는 건 이미 적지 않다.



지구대 선택한 이유는 이게 전부일까?



물론 비공식적인 이유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경찰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외부에서 볼 때 형사만큼 의리로 똘똘 뭉친 집단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까?



생각보다 배신과 야비함. 때론 사악함까지 있는 곳이 경찰서이다. 승진을 바라고, 승진을 위해 아부하고. 좋은 자리 원하고. 아부하고. 물론 그런 사람은 경찰서 말고도 다양한 곳에 있을 테지만. 내가 볼 때 경찰도 일반인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사실 지구대 근무가 처음은 아니었다. 신임 순경 시절 바쁘기로 유명한 지구대에서 근무했었다. 못된 선임 덕분에 생각하기 싫은 추억이 참 많았다. 일보다 조직 생활이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다시 지구대 나오기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형사 생활하던 버릇 때문인지, 지구대 생활도 그리 편하진 않았다. 이곳에서도 형사처럼 범인을 검거하곤 했다.


(솔직히 나는 지구대 경찰관치고 범인 검거 실력이 월등한 편이다)


하지만 이것도 나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나의 실적이 다른 사람의 승진에 도움 되는 것을 지켜봤다. 물론 경찰서 있을 때 이미 경험한 일이기에 그리 놀라운 건 아니었다.






밤새 주취 자와 신고 처리에 시달리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신고 없으면 좋을까? 오히려 따분하기도 했다.


결국 지구대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나는 경찰 생활 자체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염증이 심하면 암이 된다는데. 사람과 조직에서 받는 실망은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그나마 가끔 터지는 절도와 같은 중요 사건이 나의 의욕을 불태우곤 했었다.

어쩌면 아직 형사 생활이 그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욕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이 지루한 나의 경찰 생활에도 전환점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어느 지구대나 우범지역은 있다. 내가 근무한 곳에 원룸촌이 있었다. 가로등도 제대로 있지 않은 곳이었다. 남자인 나도 밤에 혼자 다니기 싫었으니까.


사건의 시작은 원룸촌에서도 가장 낡은 원룸 건물이었다.

한 여성의 집 문에 귀를 대고 엿듣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한 달 동안을, 매일 같이!


여성의 신고를 받고 CCTV를 봤다. 시커먼 스포츠머리의 비쩍 마른 남자가 좁아터진 복도를 배회했다. 그러고는 현관문마다 귀를 대고 엿듣기 시작했다.


이유가 뭘까? 도둑이었을까?


재산을 목적으로 행동하는 놈은 아니었다. 매일 밤 귀를 대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병적인 집착 증세로 보였다.


‘성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놈이구나!’


나의 의심은 병적인 범인의 모습을 보자 확신으로 바뀌었다. 특이하고 흥미로운 범인이었다. 이 범인은 지루한 나의 일상에 다시금 의욕을 불태웠다.





후배와 함께 추적 수사했다. 범인의 이동 동선을 추적해 봤다. 아파트나 상가와 다르게 빌라나 원룸은 CCTV 확인하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관리자가 현장에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범인은 반드시 검거될 놈이었는지, 드디어 꼬리가 잡혔다. 타고 다니는 차량 번호를 알아냈다. 이제 번호만 조회하면 범인의 인적 사항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범인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아내고 말았다.







     

"내가 왜 왔는지 알아요?"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나는 범인의 집을 찾아가 그에게 추궁했다. 시치미 떼는 그에게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혐의 추궁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심리 싸움이 시작된다. 나는 이미 많은 증거를 확보했다. 그래서 더욱 자신감 있게 추궁했다. 이윽고, 범인은 조금씩 조금씩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귀를 대고 들어봤어요."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나는 속 시원하게 말하지 않고, 찔끔찔끔 대답하는 그의 행동이 짜증 나기 시작했다. 범인의 마음에 더는 빠져나올 구멍이 없다는 것을 각인시켜주고 싶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나는 반말로 말했다. (범인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렸다)

"너의 진술에 따라 너는 성범죄자가 되거나, 단순 주거침입이 될 거야."


내 말을 들은 범인은 짧은 시간 동안 눈알을 굴리며 고민했다.



바로 지금이었다.



이때가 최고의 공격 타이밍이었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너 여자 성폭행하려고 엿들은 거지?!" 나는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러자 범인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왜 남의 집에 귀를 대고 있었어!" 내가 다시 질문했다.


성범죄가 아닌 건 알고 있었다. 나는 범인에게 자백받고 싶었을 뿐이다. 왜 귀를 대고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그가 고개를 숙였다. 한숨을 크게 쉬고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 우연히 성관계 소리가 들려 호기심에 그랬습니다. 성폭행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이야?"

"예. 정말입니다."

"좋아. 솔직히 말했으니 나도 믿어주지."


범인에게 모든 것을 자백받았다.



그는 그 원룸 어느 집에선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리를 들었다. 호기심은 더욱 커져 매일 밤 그 소리를 찾아다닌 것이다.

이 사건은 언론보도까지 될 정도로 나름 이슈가, 됐다. 알고 보니 전국적으로 이런 유의 범인이 꽤 많았다.


일명 ‘귀대기 사건’이라 부르곤 했다.     








범인을 검거한 지도 1년이 지났다.

나는 야간에 들개가 출몰한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들개가 사람을 위협해 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119 구조대도 함께 출동해 수색했다. 물론 들개는 이미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먼 산에서 개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소방관과 나는 서로 쳐다보며 “그만 해산할까요?” 서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도움 청하기 위해 온 사람인가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나가와 마스크를 내리고 말했다.


“경찰관님 저 기억나세요?” 나는 그녀를 자세히 보았다.


아!


1년 전 귀대기 사건! 그 사건의 피해자였구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예. 경찰관님이 잘 도와주셔서 지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 너무 감사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에 기억조차, 못했는데 나를 기억해 주다니.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일을 하다 보면 무심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 같은 직원에게, 때론 민원인에게 상처받는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힘을 내본다.

     


11년 전 중앙경찰학교에서 교육받을 때였다. 당시 담당 교수께서 교육생인 나와 동기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범인이야 경찰서를 제집처럼 드나들겠지만, 일반인은 그렇지 않아요. 평생에, 한번 갈까 말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경찰이 가능하면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는 비록 수업 시간 내내 졸았지만, 이 말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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